올 연말 국내 대기업 사장단 및 임원 인사의 방향은 세대교체와 감축으로 모아지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현실과는 반대로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드디어 지난 12월 23일 기준으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지난 23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인구 5122만1286명의 딱 20%를 넘어섰다.
65세 노령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인데, 우리나라는 2017년 노령인구 14.02%를 넘어서 고령사회에 들어선 지 7년 여 만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인구구조상 우리나라 인구 중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노인인구라는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부분 기업들은 국민 나이별 비중과는 반대로 세대교체를 급격하게 진행시켜, 사회구조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과연 젊은피가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에 대해 회의적이 시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3일 포스코그룹은 장인화 회장 체제에서의 첫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그룹사 7명의 사장단을 교체했는데, 70년대 생 신임 사장이 탄생하는 등 전체적으로 젊어졌다. 여기에 임원 중 1963년을 기준으로 지난해 기준으로 환갑을 넘긴 임원은 대부분 짐을 쌌다.
지난 11월 말에 있었던 롯데그룹은 대표이사 21명이 교체됐는데 이는 전체 계열사 대표이사의 36%에 해당된다. 그리고 임원은 22%를 해고했는데, 상당수 60년대 생이 짐을 싼 것으로 알려졌다.
세대교체의 바람은 비교적 고령 임원이 많은 건설업계에도 불었다. 일단 건설사 사장단이 전체적으로 젊어졌다.
현재 대형 건설사 가운데 50년대생은 모두 나갔다. 최고령은 60년생으로 삼성물산의 오세철 사장과 롯데건설의 박현철 부회장 딱 두명이고, 이번에 교체된 포스코이앤씨 정희민 대표는 1964년생, 업계 3위인 대우건설의 김보현 사장은 1966년생, DL이앤씨 박상신 사장 1962년생으로 비교적 고참 측에 속한다.
70년대 생 대표도 등장했다. GS건설의 허윤홍 사장은 1979년생이지만 재벌 4세대인 오너 일가라는 측면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현대건설 신임 대표인 이한우 부사장은 1970년생으로 전임 윤영준 사장보다 13살 어리다. 전통의 건설사인만큼 1960년대생 임원이 대부분인 가운데 파격적인 사장단 인사라고 할 수 있다.
현대건설은 이미 그룹에서 내려온 실세로 거론되는 CFO인 김도형 전무가 1973년생인데 이 눈높이로 회사 지배세력을 갖추는 분위기다. 정의선 그룹 회장의 나이는 1970년생이다.
지난 임원 인사에서는 예상대로 60년대생 임원이 상당수 짐을 쌌다.
지난 대우건설의 임원인사에서는 정원주 회장의 나이가 1968년생이라면서 1968년 기준으로 나이를 끊어 내보냈다는 말도 돌았다.
현재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20%지만, 환갑 기준인 60세 인구는 28%다. 국민 3.6명 당 1명은 환갑을 넘긴 사람이란 의미다.
60년대생 전체로 기준을 확대해 55세 이상까지 포함하면 3명당 1명 꼴에 해당된다.
이 많은 인구를 기업과 사회의 중심에서 배제시킨다는 것이 과연 국가적으로나 산업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우스개말로 기업에서 인원을 줄일 경우 우선 권씨와 고씨를 내보내는 권고사직을 하고, 다음으로 구씨와 조씨를 내보내는 구조조정을 한 다음 대규모로 내보낼 경우는 정씨와 이씨를 내보내는 정리해고를 한다는 말이 있다.
성씨 통계상 권고사직으로 2,3%, 구조조정으로 2.5%, 정리해고로 20%정도 되니까 이 여섯개의 성씨를 내보내면 25%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나이 순으로 내보내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이 든 임직원의 장점에 대한 조사 자료들은 얼마든지 있다. 2030년이 넘어가면 세계 인구 중 55세 이상의 인구가 20%를 넘어선다는 조사결과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고령화사회 속에서의 기업 경쟁력 확보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회계·경영컨설팅 그룹인 KPMG는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노동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경쟁력을 높일 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KPMG는 조사 결과에 대해 “고령층 근로자들이 많아질수록 그리고 그들이 속한 다세대 팀들이 회사의 수익을 높이고, 혁신을 이끌며, 널리 퍼진 직장 내의 번아웃 문제에 대처하는 데 유익하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인재를 찾는 사업주들은 더 많은 경험을 지닌 새로운 근로자들과 오랫동안 함께한 근로자들을 통합하고 참여시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 따르면 고령 근로자 비율이 높은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이직률이 4% 낮다고 한다.
코벤(The Coven)의 공동 창립자 베다니 아이버슨(Bethany Iverson)은 연령이 많은 근로자가 ‘결정화된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을 갖추고 있다고 언급했다. 결정화된 지능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지식을 체계화하는 능력이 향상되고, 좋은 조언을 해주고 피드백을 나누는 능력을 말한다.
컬럼비아대학의 에이지 붐 아카데미 린다 프라이드(Linda Fried) 박사는 고령 근로자들이 더 많은 ‘이타적인 동기(prosocial motivations)’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공감 능력과 남을 돕고자 하는 의지를 말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후대를 위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고 말했다. 기업은 연령이 많은 직원의 개선하려는 의지와 실수를 방지하려는 노력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령자가 있는 조직이 세대 간의 협력도 이끌어내기 쉽다는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미국노인협회(AARP)의 연구에 따르면 연령대가 다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팀이 연령대가 비슷한 팀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2020년 영국 롱제비티 센터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25년 이상의 연령 차이를 보이는 팀들이 관리자의 기대를 달성하거나 뛰어넘는 경우는 73%에 달하는 반면, 10년 미만의 연령 차이를 보이는 팀은 3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들 숙달되고 성숙되고 충성심 있는 고령 인재들을 상대로 몇 살이란 기준을 들이밀어 짐을 싸게 하는 대신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인사는 진급과 퇴직만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막다른 선택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나이를 기준으로 하는 인사는 과감히 버리고, 나이를 떠나서 임직원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토대로 적재적소 하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고문이나 코칭, 멘토링 또는 파트타임 등 역할을 제공하는 가운데, 임원에서 직원으로 직급을 내려앉을 수도 있고, 직급을 없앨 수도 있다. 그들을 위한 별도의 운영체계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그동안 공을 들인 인재들을 활용할 지, 그리고 그들의 능력으로 회사의 이익을 늘릴 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오너가 70년생이니까 60년대생은 내보낸다든지, 오너가 68년생이니까 67년생까지 내보낸다든지 하는 황당무계한 짓거리로 기업 경쟁력을 떨어트려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머지않아 소비자인 국민의 50%가 60대가 될 날이 오게 된다. 그들을 활용하지 않고, 적으로 돌리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단순히 나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주먹구구 경영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살 수 있다.
이기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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