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이란 간단히 말해 남의 잔치에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한다는 뜻인 타인지연왈이왈시(他人之宴曰梨曰枾)란 말이다. 쓸데없이 남의 일에 공연히 참견(參見)을 한다는 뜻이다. 배가 나오고 감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잔치가 아닌 제사상인 것으로 보인다. 잔치 연(宴)이 아닌 제사 제(祭)를 써야하지 않을까?
제사는 지방마다 가문마다 제사음식과 제사 방식 그리고 순서도 다르다. 지역 특산물이 올라가다 보니 제주도에서는 옥돔이 올라가고, 안동이나 예천 등 경북지방에서는 문어와 간고등어가 올라간다. 전라남도에서는 참돔, 민어에 가오리나 홍어가 올라간다.
그래서 남의 제사상에 참견하는 것은 절대로 금물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을사년 신년사와 관련 백브리핑 내용은 말 그대로 오지랖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지난 2일 한국은행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읽던 중 신년사에는 없는 작심 발언을 했다. “최(상목) 대행의 재판관 임명 결정에 대해 비판을 할 때는 최 대행이 그런 결단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답도 같이 하시는 것이 좋겠다”며 국무위원들이 최 대행의 결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공격한 것에 대해 공격을 가했다.
당초 신년사 원고에 있던 “최 대행의 결정은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란 내용에 이은 즉흥적인 애드립이었다.
이 총재는 지난달 말 한덕수 권한대행에게 최 대행이 헌재 재판관 추가임명 건의를 할 때에도 함께 동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이번 최 대행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도 서로 만난 것이 알려지면서 최 대행과 공동 전선을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 총재의 행보에 대해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인 금리와 통화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기관의 책임자로서 국가 신용도가 우려가 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긍정론이 나오고 있지만, 그 반대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헌재 재판관을 추가임명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차원이 아닌, 헌재나 검찰이나 대통령 문제 등등 정치 현안은 경제와는 다른 국민 정서와 국가 철학 등 상당히 복합적인 면이 많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가신용도가 걱정이 되겠지만, 그 신용도를 최상목 대통령 대행 겸 국무총리 대행 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란, 직책만 24자를 가진 분이 있다고 지켜진다는 생각 자체가 한참 오버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고 산업현장에서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글로벌 수준의 기업들이 있고, 3만달러대 중반의 국민소득을 가진 국민들이 있다.
학계나 관료 그리고 정계에 무수히 많은 인재들이 있고, 경제전문기관에도 프리미어리그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 총재의 나 아니면 안된다는, 그리고 최 대행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적 생각과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더욱 문제다.
지난해 9월에는 10월 금통위에서의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고민하면서, 국토교통부장관, 기획재정부장관, 교육부장관 역할까지 하고 나섰다.
이 총재는 국내 경기침체를 감안할 때 금리인하를 당장이라도 단행해야 하지만, 과도한 가계부채 규모와 서울 집값 상승세를 감안하면 금리인하가 부담이 된다면서, 서울 집값 상승의 주범은 강남지역 고가아파트의 가파른 상승세 때문이라면서 명문대학교가 강남출신 학생을 줄여서 뽑아야 한다는 해괴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특정 지역 출신 학생 수가 입학 정원의 몇 퍼센트 이상 안 되게 이런 식으로만 컨트롤하면 굉장히 현실적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면서 “서울대 교수님들께서 합의하셔서 하시면 돼요”라는 웃음밖에 안나오는 발언이었다.
지난해 3월에는 ‘돌봄 비용 보고서’를 통해 돌봄비용을 낮추면서 최저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저출산을 막기 위해서는 외국인 아이돌보미에 대해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사과값 폭등에 대해서도 “OECD 국가와 비교해 농산물 물가가 유독 높다”며 “사과 수입 확대”를 주장했는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부딪히기도 했다.
사과값은 일시적인 기후 및 날씨에 따른 변동성이 있는데 수입으로 자칫 가격 폭락이 이어질 경우 사과농업이 망가질 수 있다는 송미령 농축산식품부 장관의 강한 반대로 오지랖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집값 상승에 대한 공급확대, 대출규제, 강남 소재 학생들 대학 진학 규제, 사과 수입 등등 영역을 넘는 이상주의적인 발언으로 시장은 일대 혼란을 겪었다.
정작 본연의 임무인 적기 금리정책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잇따르고 있음에도 남의 집 제사상 훈수에 열중인 모습이 앞으로도 불안해 보인다.
지난해 말 급격한 경기 침체 조짐의 배경에는 금리인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면서 경기 침체 조짐이 시작됐는데 금리인하에 대한 시기는 놓쳐놓고서는 가계부채, 집값 걱정, 대학 진학 걱정하면서 금리 뒷북인하로 경기부양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래놓고는 10월과 11월 연속으로 금리인하를 단행해 국제 사회에서 “진짜 한국 경제가 침체국면에 들어간 것 아니냐”하는 의심만 키운 장본인이 바로 이창용 총재다.
금리와 통화량을 결정하는 기본적인 요소는 물가와 고용이다. 한국은행 총재의 역할은 향후 물가와 고용의 방향에 대한 정확한 좌표를 찍고 그에 맞는 금리정책과 통화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머지 부분은 관련 부처와 전문 기관에서 하는 것이다.
최 대행과 국가 경제를 걱정하는 것은 가상하지만, 남의 집 살림살이까지 쥐고 흔드는 오지랖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들이 시원찮아 보여도 나름대로 판단력도 있고 내공도 있고 경험도 있는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협치의 시작이고 진짜 전문가의 프로정신이다.
오지랖의 치료약은 과유불급이다.
이기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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