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잉사태 본질은 당장의 ‘돈’에 눈먼 경영자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2.31 15:15 의견 0
보잉사 제조 항공기 모습. 보잉사 항공기는 이번 무안공항의 제주항공 대참사 항공기인 737-800 제조회사로, 항공사고의 대명사로 떠올라, 기피 대상 1호 항공기 제작사가 됐다.

미국 산업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보잉(Boeing)이 이제 미국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면서 세계 항공산업의 가장 불안한 암세포가 됐다. 지난 29일 우리나라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사고 중 최대 인명피해를 낸 비행기가 바로 보잉737-800기종인데, 올해 전 세계에서 일어난 항공사고 대부분이 보잉사 비행기다.

우리나라 제주항공의 무안비행장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에도 랜딩기어 작동 불능으로 동체착륙을 한 사례가 있었다. 이 비행기 역시 같은 기종이었다.

지난 28일(현지시간) KLM네덜란드항공의 KL1204편이 노르웨이 오슬로를 출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던 중 조종사가 유압장치 고장을 인지하고 토르프 산데피요르 공항으로 우회해 동체착륙을 한 것이다. 다행히 동체착륙에 성공해 탑승자 182명 모두 무사했다. 이 외에도 그동안 보잉 항공기의 사고와 고장이 끊이지 않아 보잉 항공기 기피현상까지 일어나면서 비행기 타기 겁나는 세상을 만들어놨다.

실추된 위상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30일(현지시간) 주가는 전날에 비해 4.17% 하락한 176.55달러였다. KLM네덜란드항공 동체착륙 사고에 이어 우리나라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대참사로 인한 급락으로 보인다. 보잉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9.9% 떨어졌다. 2024년 미국 주식시장이 뜨거웠던 것과 완전히 반대로 갔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보잉에 대한 슬로건은 If it’s not Boeing, I’m not going(보잉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였지만, 지금 고객들은 보잉을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슬로건이 If it’s Boeing, I’m not going(보잉이면 가지 않겠다)로 바뀌었다고 한다.

최상의 안전으로 100여 년간 하늘을 지배해왔던 보잉의 처지가 왜 이렇게까지 추락했을까?

올해로 108년 역사를 가진 보잉은 완벽한 기술과 안전의 상징이었다. 수천미터 상공을 날아가는 항공기를 타는 승객 입장에서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항공기의 생명은 승객의 안전을 확보하는 기술력이다.

그러나 이제 보잉은 안전을 담보해야 할 기술력에 금이 가면서 신뢰를 잃었고, 가시밭길을 가야할 처지에 놓였다.

보잉이 망가지기 시작한 시점은 많은 전문가들이 1996년 미국 내 경쟁사인 맥도널더글러스사 인수 시점이라고 한다. 보잉은 당시 맥도널더글러스 출신인 해리 스톤사이퍼를 영입했는데, 그는 구조조정의 대가였다. 비용절감으로 단기적인 이익을 내는 성과를 보였는데, 그 과정에서 대규모 고참 엔지니어를 해고하고 사업부를 대폭 줄이는 대신 모두 아웃소싱으로 돌려 원가를 절감했다.

해리 스톤사이퍼는 지금은 사라진 기업이 된 에디슨이 창업한 GE의 잭 웰치 회장 밑에서 재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잭 웰치 역시 구조조정의 대가였는데,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많이 냈지만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결국 GE를 해체시킨 장본인이다.

해리 스톤사이퍼의 구조조정에 힘입어 보잉은 맥도널더글러스와 합병한 다음해인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1년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해리 스톤사이퍼는 2005년까지 CEO를 맡았다.

그러나 모든 사업을 아웃소싱 하다보니 원가는 낮춰 이익은 얻었지만, 품질이 떨어지면서 항공기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에서 라이언에어의 보잉 737 MAX8이 떨어져 189명이 사망했고, 다음해인 2019년 3월에는 에티오피아에서 같은 기종이 추락해 157명이 숨졌다. 결국 2019년 4월 보잉은 기체결함을 인정하면서 운행금지로 인해 고객사들의 손실을 보전하고 항공기 인도 중단으로 2019년 보잉은 창사 이래 최대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어지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금지로 항공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보잉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코로나19가 끝나 여행수요가 늘어나면서 항공특수가 찾아왔지만, 보잉에는 사고뭉치가 찿아왔다.

특히 올해 사고가 많았다. 무안공항의 제주항공 사고, 노르웨이 KLM네덜란드항공 동체착륙 외에 수많은 사고가 일어났다.

1월에는 알래스카항공의 737 MAX 9가 운항 중 보조문이 떨어지는 사고가 나 승객들이 문이 열린채 공포에 떨며 운행을 했다.

3월에는 보잉의 범법행위 등 내부고발한 존 바넷이 권총 자살했고, 같은 3월에 호주 시드니에서 뉴질랜드로 이동하던 라탐항공 보잉 787기가 급강하해 50여 명이 부상당했다.

4월에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737-800이 이륙 후 엔진 커버가 벗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올해 5월은 사고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7일 미국 항공청이 737에 이어, 787에 대한 품질검사 기록 위조 여부에 대한 조사를 착수했다. 국내에는 해당 모델이 대한항공 14대와 에어프레미아 5대 등 19대가 운항중이다.

8일 페덱스 익스프레스의 767이 이스탄불 공항서 동체착륙을 하는 사고도 벌어졌는데 이사고 역시 앞쪽 랜딩기어가 나오지 않아 벌어진 사고였다.

다음날인 9일 세네갈에서 이륙하던 보잉737-38J 비행기 날개에 불이 붙으면서 35m높이에서 추락한 사고가 발생해 조종사와 승객 등 10명이 다쳤다.

15일 인도네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가루다 인도네시아의 747-400이 이륙 직후 엔진에서 불이 나면서 회항해 비상착륙했다.

21일 영국에서 싱가포르로 가던 싱가포르항공 소속 Boeing 777-312/ER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난기류로 요동치는 일이 일어나 3만1000ft에서 7000ft로 하강하여 1명이 사망하고 승무원 등 104명이 부상을 당했다.

26일 카타르에서 아일랜드로 가던 카타르항공 소속 보잉 787-9 드림라이너가 튀르키예 상공에서 요동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12월 8일에는 CBS에서 보잉 부품감시관으로부터 수천개의 불량부품들을 재활용하고, 부식되고 고장난 랜딩기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폭로인터뷰가 올라왔다.

밝혀진 사고만 이정도면 거의 공포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내부고발자들의 자살 또는 의심스러운 병사 등 의혹과, 추락사고로 인한 처벌을 수조원을 물고 정부와 타협해 기소유에를 받는 등, 보잉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술로 극복하기 보다는 은폐 엄폐에 혈안이 됐다.

그동안 모든 작업과정을 아웃소싱했던 것을 이제야 다시 사들이겠다고 한다. 판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되겠다고 하고, 기술력을 회복하겠다고 엔지니어 출신이면서 GE 출신이 아닌 켈리 오트버그를 영입했다. 재무라인 중심으로 구조조정과 아웃소싱으로 당장의 이익만 추구하다 수십대의 비행기가 떨어지고 나서야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잉 사태로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고 기술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140년 전통의 세계 초우량 기업인 GE를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잭 웰치가 결국 흔적도 없이 해체시켜버렸듯이 보잉 역시 GE 출신들이 비슷한 경영전략으로 비슷한 꼴로 만들어 놓은 셈이다.

우리나라도 상당수 기업들에서 재무 전문가를 CEO로 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재무 전공 CEO가 늘어난다. 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과 사람이지만, 그 이상으로 기업을 살리는 무기는 기술이고, 기술자라는 시실을 반드시 이번 보잉사태를 통해 되새김질 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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