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혁명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18 10:19 의견 0


19세기말까지 유럽국가들은 세입의 대부분을 군대, 경찰, 행정일반, 기초 사회간접자본 등 국가핵심기능을 위해 지출했고, 사회복지나 교육부문에는 최소한의 예산만 지출했다.

평등의 실현을 위한 조건이자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서 교육지출이 지닌 막대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서구의 교육제도는 엘리트 중심의 극도로 계층화된 체제로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받는 사람은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했다.

교육지출은 국민소득의 0.5~1%에 그치는 수준이었으나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교육투자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했고, 유럽의 국가들도 서서히 확대해 나갔다

미국은 20세기 중반인 1950년대에 청소년(12~17세)의 중등학교 취학률이 거의 80%에 육박했다. 같은 시기 영국과 프랑스는 20~30%, 독일과 스웨덴도 40%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우 1950년대에 중등학교 취학률이 60%에 이르고 1970년대에는 80%를 넘어선다.

19세기말 유럽의 각국정부는 교육이 단지 평등과 개인적 해방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부강의 열쇠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19세기말부터 1940년까지 화학, 철강, 전기,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서 확산된 2차 산업혁명은 훨씬 숙련된 기술을 요구했다. 제1차 산업혁명기에 특히 섬유산업과 석탄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숙련 노동력을 고용해도 단순교육과 관리를 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2차산업혁명기에는 최소한의 기술과 디지털 능력을 갖춰 제조 공정을 이해할 수 있고, 설비 매뉴얼 이해능력 등을 갖춘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 지가 관건이었다. 바로 이 교육 덕분에 미국,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본이 신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20세기 중반 미국과 나머지 서구세계 간에 나타난 현저한 노동생산성 격차는 주로 교육분야에서 미국이 점한 우위에서 비롯된 것이다(이상, 평등의 짧은 역사, Une brève histoire de l'égalité,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 2024, p169~172 참조)

물론 성별, 소득별, 국가별로 교육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대학 진학에 있어서는 소득별로 차이가 많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교육은 항상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실질적인 평등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인 도구였다.

우리나라는 제헌헌법 제31조에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규정되어 있고, 1950년 6월부터 초등의무교육을 시행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일시 중단되었다가 1952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였다. 1960년에 초등학교 취학률이 95%를 넘어섰고, 중등교육은 1970년대 50%, 1980년대 9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서구의 산업발전과 다르게 1960~1970년대 섬유, 석탄산업을 비롯한 1차 산업과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 삼성전자의 가전으로 상징되는 2차 산업이 병행 발전하였고, 오늘날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밑바탕에는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적자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의 부모님은 최종학력이 국민학교 졸업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머니는 중퇴자다. 부모님은 당신들이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셨다고 한탄하면서 자식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까지 보내겠다고 다짐하셨고, 덕분에 우리 3남매는 모두 대학까지 마칠수 있었다.

아버지는 1차산업에 종사하면서 익힌 기술을 토대로 일을 하셨고,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부터는 살림이 나아지는 걸 확연히 느낄 수있었다. 어쨌든 나의 부모님은 초등의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셨겠지만 자식에 대한 교육열만큼은 대단하셨던 것 같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권력자들의 이런 저런 공과에도 불구하고 초등교육 의무화를 통한 보편교육이 있었기에 산업화를 이룰수 있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유럽과 미국 등 서구에서는 보편적 초등의무교육 시행까지 1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정부수립후 불과 5년만에 초등의무교육 정책을 시행한 것과 그 후 이어진 우리 부모세대의 교육열은 가히 '교육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초등, 중등 의무교육을 통한 '교육혁명'이 가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면, 소득에 따른 대학 등 고등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은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기회경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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