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TSMC의 3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 증권시장도 들썩이면서 다우지수는 최고치를 갱신했다.
삼성전자의 3분기 어닝쇼크와는 너무 대비되는 실적이어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상당히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이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너무 커진 TSMC와 AI 칩 독점적 공급자인 엔비디아 간 관계의 균열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지난 밤 TSMC가 발표한 3분기 실적은 매출 235억400만달러(약 32조1580억원), 영업이익 111억6200만달러(약 15조2730억원)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6.5%, 영업이익은 58.2% 증가했다. 모두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이다. TSMC의 매출 총이익률도 57.8%에 달해, 이전에 목표로 한 55.5%를 상회했다. 주가도 9.79% 상승했다.
지난 8일 발표한 3분기 삼성전자의 잠정실적과 완전히 대비된다.
삼성전자 올해 3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79조원에 영업이익 9조1000억원이다. 전 분기 대비로 따지면 매출은 7%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13% 줄어들었고, 특히 시장전망치보다 크게 떨어져 시장에서는 어닝쇼크로 받아들였다.
특히 삼성전자 매출 중 약 22조 원, 영업이익 중 5조원 정도가 반도체 부문 실적인데, TSMC와 비교해보면 너무도 초라한 실적을 보인 것이어서 실제 삼성전자 위기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도 늘어나 세계 시장 64%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고, 삼성전자는 기존 11%에서 10%선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으로 밀리고 있다.
이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와의 경쟁구도가 아닌 TSMC와 엔비디아 간에 누가 패권을 쥐느냐에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AI 반도체 칩인 GPU의 90% 이상을 공급하는 엔비디아와, 엔비디아에 들어가는 GPU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TSMC 간에 누가 더 시장 지배력이 센 지에 대한 관심이다.
표면적으로는 양 사간의 힘겨루기 모습이 아닌, 그동안 공급 차질을 보인 차세대 GPU인 블랙웰의 기술적 결함에 대한 책임 공방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주도권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TSMC는 최근 양산에 들어간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TSMC가 만든 테스트 제품에서 결함이 발견돼 출시가 수개월 늦춰졌는데, 양사가 책임을 전가하며 언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디인포메이션은 “엔비디아는 TSMC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고려하면서, 게임용 칩(GPU)을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AI 시장의 패권을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설계하는 엔비디아와 엔비디아의 설계대로 반도체를 제작하는 TSMC 간 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 지를 두고 시장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이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TSMC를 떠난 엔비디아는 있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엔비디아의 대체재는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지만, 기술력에서나 수율 측면에서 TSMC를 대체할 선수는 현재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AI칩을 대신할 기업들로, 현재 AMD가 공급을 개시한 것을 비롯해서 구글, 아마존을 비롯한 여러 클라우드 업체들이 이미 자체 생산체계를 갖춘 것으로 알려진 반면, TSMC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와 인텔의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젠슨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9월 언론과의 간담회에서 만일 TSMC에 문제가 생길 경우 대안이 있냐는 질문에, 대안이 있기는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별다른 대안이 없음을 시사했다. 여기에서 TSMC의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과 대만 간의 돌발변수를 말하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성장 배경을 봐도 엔비디아는 TSMC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대만출신의 미국 반도체 전문가인 모리스창(장중머우)이 TSMC를 창업한 후 자리를 잡았을 때인 1993년 엔비디아를 창업한 젠슨황의 게임용 그래픽카드(GPU) 제조를 받아 만들어 준 회사가 TSMC였다.
당시 설립 초기인 엔비디아의 주문을 받아주는 파운드리 기업은 없었던 상황에서 TSMC가 완성도 높은 GPU를 생산해주면서 엔비디아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엔비디아의 AI칩을 대신할 대체재는 이미 많이 개발된 것과는 달리 TSMC의 제품을 대체할 업체가 없다보니 가격 결정의 칼자루를 TSMC가 쥐고 있을 정도다.
TSMC는 공정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가격을 크게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처음 개발했지만, 수율 문제로 판매를 못하고 있는 3나노 공정에서 가격을 20% 올렸으며, 내년 본격 양산할 2나노 공정은 또 배 이상으로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적으로 독점적 위치에 있다보니 3나노와 2나노 매출이 전체 매출의 20%를 넘는다. 7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 매출이 전체의 69%를 차지한다.
주요 고객은 애플·엔비디아·퀄컴·AMD·미디어텍 등 미국과 대만의 칩 설계 업체들이 TSMC 최신 3~4나노 공정을 이용하고 있다. 파운드리 경쟁자인 인텔마저도 AI PC용 칩인 ‘루나레이크’ 생산을 위해 자사 파운드리 대신 TSMC 파운드리를 이용할 정도다.
중국과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벗어나기 위해 해외 공장 확장과 설비 증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3곳에 650억달러(약 89조원)를 투자했고, 지난 8월에는 독일 드레스덴에 109억달러(약 14조9300억원)를 투입해 유럽 첫 공장을 착공했다. 일본에도 생산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TSMC의 거침없는 성장 속도에 삼성전자가 더욱 위축되는 모습으로 대비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잠재력으로 볼 때 TSMC를 넘어설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HBM과 3나노 등에서 수율이 떨어지면서 급작스럽게 위기가 온 것인데, 삼성전자의 확장성 있는 역량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기술력을 회복하고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면서 “삼성전자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임직원이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노조는 파업을 이어가는 등 내부적 장애요소도 문제로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지윤 기자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