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MBK와 고려아연 경영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이 11일 공개매수가를 기존 83만원에서 7.2% 올린 89만원으로 발표하면서 경영권 싸움은 또 한번의 연장전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이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과열에 대한 경고와 함께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 착수를 지시한 다음날인 9일 영풍·MBK가 매수가격을 추가로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치킨게임이 중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11일 최윤범 회장측이 공개매수가 인상을 발표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은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함께 자사주 매입 수량도 기존 전체 발행 주식의 약 18%에서 약 20%로 확대했다. 여기에 더해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계열사 영풍정밀 주식에 대해서도 매수가를 3만원에서 3만5000월으로 상향 조정했다.
최 회장 측이 자사주 및 영풍정밀 주식 공개매수가를 함께 올린 것은 영풍 측의 공개매수 종료일인 14일을 앞두고 공개매수 전쟁에서 승기를 되찾겠다는 의도다.
만일 주주들이 14일 공개매수 종료일까지 영풍 측 공개매수에 응할 경우 최 회장은 이 싸움에서 완전히 밀려나고, 3대 째 이어온 고려아연에 대한 경영권은 물론 영풍그룹과의 인연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11일은 영풍 측 실거래일 하루를 남겨놓은 날이면서 최 회장 측에서는 공개매수 종료일인 23일을 변경하지 않는 기한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이 날 이사회 의결을 거쳐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89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그러나 IB(투자은행) 업계에서는 최 회장 측이 무리수를 두는 것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보이고 있고, 결국 다음주 14일에 종료를 맞는 영풍 측의 공개매수 성공으로 이 싸움은 끝이 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두 가지 이유로, 최 회장 측의 우리사주 공개매수에 응할 경우와 영풍 측의 공개매수 간에 적용 세율이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과, 18일 결정이 될 최 회장에 대한 법원 가처분신청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등 불안한 점을 들고 있다.
우선 영풍 측의 공개매수에 응할 경우 법인세가 적용돼 2억원 이하는 과세표준의 10%만 물면 되고 200억원 이하까지는 20%가 적용된다. 반면 최 회장 측의 우리사주 공개매수에 응할 경우 배당소득세가 적용돼 최소 15.4%에서 최대 49.5%까지 세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최 회장 측의 공개매수에 응하기 위해 14일 종료하는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무시한 이후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최 회장의 공개매수 자체가 무산되기 때문에 다음주 월요일 종료되는 영풍 측의 공개매수에 상당수 주주들이 가담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현재 영풍 측 MBK가 최 회장 측의 공개매수를 통한 자사주 확보 및 소각은 배임의 소지가 있다면서 최 회장 측의 자사주 매입을 중단시켜 달라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해 놓은 상황이고, 그 결과가 10월 18일 나오게 돼있다.
최 회장 측 공개매수 종료일이 그 이후인 23일이어서 중간에 걸쳐있는 18일이 주주들에게나 최 회장에게 모두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주주들이 최 회장 측이 올린 89만원 매수가에 줄을 서면서 영풍 측의 14일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그리고 18일 법원의 가처분신청이 기각될 경우 등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만 최 회장 측 의도대로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이 경우 최 회장 측인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는 자금 규모는 약 3조 6852억원이 된다. 그만큼 부채가 늘어나고 자사주 매각으로 자산규모는 줄어들게 되면서 부채비율은 크게 올라가는 부담을 안아야 한다.
이런 상황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이미 나왔다.
글로벌 독립 투자리서치인 ‘스마트 카르마(Smart Carma)는 지난 5일 리포트를 통해 “최 회장이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추가로 올릴 경우 고려아연 재무구조 위험성은 커질 수 있다”면서 “공개매수 종료 후 고려아연 예상 주가는 50만원에서 60만원 사이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영풍 측의 경우 공개매수에 따라 부채가 늘어나지만 회사 자산도 함께 늘어나는 것과 달리, 최 회장 측 공개매수는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서 부채는 늘고, 반대로 자본은 줄어들면서 부채비율은 더 크게 올라가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과열매수를 자제할 것을 경고한 것인데, 현재로서는 물러서면 모든 것을 잃는 구조로 돼있어서 업계에서는 결과에 따라서 자칫 세계 1위의 비철금속 제조기업인 고려아연이 껍데기만 남는 결과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신은섭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어느 쪽으로 공개매수가 이루어지더라도 공개매수 가격과 최대 취득 예정 지분율을 감안할 때 재무부담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는 동사의 신용도의 근간인 실질적 무차입상태의 매우 우수한 재무안정성이 저하되면서 향후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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