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진정한 밸류업을 원한다면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10.01 10:26 의견 0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한국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만들어서 저평가된 한국 주식의 가치를 올리겠다는 정성을 들이고 있지만, 외국인들을 비롯해 시장의 지지를 받는데 한계를 보이면서, 증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밸류업 지수 선정 종목에 있어서 기존의 지수들과 차별점이 없고, 진정한 밸류와는 거리가 먼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이에 앞서 기업들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편법 이합집산이 불신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실적이 좋은 기업을 나쁜 기업과 합해서 좋은 기업의 주주가치를 떨어트리고,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기업에 이익이 많이 나는 사업을 밀어주면서 오너의 배당금을 챙겨주고, 심지어는 오너의 승계 과정에서 오너 지분이 높은 기업을 만들어 지주사 지분을 사들여 편법적인 방식으로 승계를 하는 등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로는 밸류업을 노릴 수 없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사건이 약 10년 전인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의 지분가치 산정을 둘러싼 논란이다. 내재가치가 높지만 주가가 낮은 삼성물산과 내재가치에 비해 고평가 된 제일모직 간의 합병비율에 있어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면서 삼성물산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 당시 삼성물산 지분 확보로 그룹 지배권을 확보한 이재용 삼성 회장에 대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2심 첫 공판이 지난 9월 3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렸다.

1심에서는 무죄로 판명났지만, 검찰이 항소하면서 이제 2심이 시작된 것이다. 대법원까지 갈려면 앞으로 또 10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중대한 사건이다.

약 7개월 전에 선고한 1심 재판부는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다”며 “합병의 주목적이 이 회장의 승계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또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1심 무죄 결과와는 다른 국내외 판결들이 나오면서 2심에서는 이 회장이 피해가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8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헤지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에게 손해배상으로 234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합병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함으로써 엘리엇과 메이슨이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연금 역시 합병에 개입해 1647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관련해 행정소송 1심 재판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일부 회계처리’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정상적인 회계처리’로 판단하면서 2심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이와 같은 기업 쪼개기 합하기 상장폐지하기 등등 불법 편법적인 수단이 동원돼 오너의 배를 불리고 주주가치를 떨어트리는 사례가 속출하는 대한민국 주식을 놓고 밸류업을 주장해봐야 별 효과가 없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건설 관련 기업 중 정의선 회장의 지분이 높은 현대엔지니어링에 수익성 높은 일감 몰아주기, 두산그룹 오너일가의 지배력이 높은 두산로보틱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 내서 로보틱스에 붙이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한화에너지가 그룹 지주사격인 ㈜한화 주식을 매수해서 상속세 없이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하도록 하기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주주가치 훼손에 밸류 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이재용 회장에 대한 2심은 상당기간 진행되면서, 삼성을 비롯해서 산업계에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막는다면서 기업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얘기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주들의 소리나 글로벌 전문기관들의 지적을 무시한 결과 오늘날 글로벌 증권시장에서 외면받는 한국 증권시장이 된 점을 이제는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편법적인 행태를 보이는 기업들에 더해, 횡령 부당대출 등 수사를 받고있는 우리은행까지 밸류업 지수에 포함시켜놓고는 어떻게 밸류업을 기대했는 지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번 밸류업 지수 발표를 보고 스위스 UBS는 “할 말을 잃었다”고 어이없어했고, 홍콩계 CLSA는 “밸류 업 아닌 밸류 다운?”이란 제목을 보고서를 냈겠는가.

우리나라는 이제 386세대도 지났고, 586세대도 지나갔다. 지금은 MZ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미 이들의 생각이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과연 그들에게 지금까지 보여준 편법과 불법이 통할까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들 MZ세대는 꼰대세대에 비해 글로벌 마인드가 강하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않는 편법은 당연히 배척당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뀐 만큼 생각과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제 그것이 지속가능경영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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