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에서 끝나는 75년 동반경영…내분으로 위기 맞은 '영풍'

-최윤범 회장측 “교묘한 트릭으로 무장하고 추석 연휴 바로 전 금요일 일을 감행”
-장세준 부회장측 “2019년 금융권 부채 410억이 올해 6월 1조4천억원으로 늘어나”

김지윤 기자 승인 2024.09.19 17:12 | 최종 수정 2024.09.19 17:13 의견 0
서울 종로구 중심에 위치한 영풍문고, 영풍그룹의 본사가 몰려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혈연이 아닌 남남이 만나 75년 동안 협업의 모범을 보여왔던 영풍그룹이 결국 창업자(공동창업자장병희, 최기호) 집안인 장씨와 최씨 간의 극한 대립으로 갈라설 위기에 몰리면서 재계의 이슈로 번져가고 있다.

영풍그룹을 둘러싸고 두 집안인 장씨와 최씨 이외에도 10여 개의 내노라하는 기업들이 지분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경영권 분쟁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확산됐다.

발단은 올해로 창업 50년을 맞은 고려아연을 경영해온 최씨 일가가 해외영업을 전담해온 서린상사를 유상증자 하면서 현대차그룹 등 제3자를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영풍을 경영하던 장씨 일가가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지배력을 키우려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시작됐다.

서린상사 유상증자 관련 주주총회 싸움 결과, 서린상사 임원진은 모두 최씨 일가가 점령한 상황이다. 영풍그룹의 대체적인 지배구조를 보면, 지주사인 ㈜영풍을 중심으로 장씨 일가는 씨케이, 영풍문고홀딩스, 영풍개발 등을 경영하고 있고, 최씨 일가는 코리아써키트, 영풍전자, 고려아연을 경영하고 있는 형태다.

근래 영풍문고를 비롯한 장씨 일가가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한 반면, 최씨 일가가 경영하는 고려아연이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등 최씨 일가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아지면서 서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장씨 일가의 장형진 고문 등은 본인들 지분의 50%+1주를 MBK파트너스에 넘긴 데 이어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지분을 공개매수하기로 공표하면서 공식적인 지분 전쟁이 시작됐다.

현재 두 집안의 지분은 비슷한 수준이다. 장씨 집안 및 특수관계인과 MBK파트너스가 33%+1주, 최씨 집안 및 특수관계인이 33.6%로 거의 같은 수준이다.

현재의 두 집안 싸움에 앞장서고 있는 선봉장은 각각 창업자의 3세들로서 장씨 집안은 74년생의 장세준 부회장이고, 최씨 집안은 75년 생의 최윤범 회장이다.

고려아연의 최 회장 측에서는 이번 MBK의 주식공개매수 공표에 대해 “영풍의 공개매수는 기업사냥꾼 MBK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한 적대적·약탈적 M&A라고 밖에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에 영풍과 MBK 측에서는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은 지분 2.2%로 지배력 확대를 위해 지배구조를 왜곡하고 이사회 기능을 무력화시켰다”고 공격했다.

이 싸움에 고려아연 공장이 위치한 울산시장과 울산시민까지 참전하게 됐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지난 16일 입장을 내고 “사모펀드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를 멈춰 달라”며 “향후 해외 기업에 경영권이 넘어가 울산 지역 경제와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참전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울산 120만 시민이 울산의 기업인 고려아연이 중국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고려아연 주식 1주씩 갖기 운동을 펼치자고 주장했다.

영풍 장형진 고문의 지분 16.5%+1주를 인수한 MBK파트너스의 자금 중 상당수가 중국자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결국 MBK가 인수를 할 경우에는 장기적인 경영보다는 세계 1위의 아연기업을 중국에 넘겨준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여기에 내노라하는 국내 기업들도 휘말렸다. 현대차HMG글로벌 5.0%, 한화H2 5.0%, LG화학 2.0%, 한화임팩트 1.9%, 트라피구라 1.6%, ㈜한화 1.2%, 한국타이어 0.8%, 한국투자증권 0.8%, 조선내화 0.2%, 동원산업 0.04% 등의 기업들이 최씨 쪽 우호지분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추석 명절 연휴 다음날인 19일 양쪽 집안은 공식적인 전면전 선포에 나섰다. 명절 연휴 동안 나름대로 전열을 정비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최윤범 회장은 19일 '고려아연과 계열사, 협력사 임직원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에서 "공개매수를 비밀리에 준비한 뒤 교묘한 트릭 등으로 무장하고 추석 연휴 바로 전 금요일 일을 감행했다.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도록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라고 믿고 웃었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회장은 "MBK라는 거대 자본과의 싸움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고, 저들의 탐욕도 결코 쉽게 멈춰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의 공격에 대해 장세준 부회장 측의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19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2019년 고려아연의 금융권 차입 부채는 410억원으로 사실상 없었는데 올해 6월 말 현재 1조4천억원에 이른다"면서 “같은 시점 순현금 2조5천억원과 이후 유상증자·자사주 처분으로 조달한 1조3천억원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부회장은 "쉬운 말로 현금을 물 쓰듯 한 것"이라며 "예정된 투자 규모 등을 고려하면 올해 말에는 창사 이후 처음으로 순부채 포지션으로 바뀌게 된다"면서 경영악화 책임을 물고늘어졌다.

해방과 함께 북한 땅에 들어선 공산정권을 피해 황해도 봉산의 땅을 처분하고 남한으로 월남해 1949년 ‘영풍해운’을 공동창업하면서 75년 간 잡음 없이 모범적인 협력 경영 모습을 보였던 영풍이 이제 깨지기 일보 직전에 놓였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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