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진흑탕 싸움 정리되나…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다지만

-송영숙 회장 사퇴와 함께, 최대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전면에
-임종윤 이사, 개인회사 코리그룹에 북경한미 일감 몰아줘…감사 진행

김지윤 기자 승인 2024.07.08 14:56 | 최종 수정 2024.07.09 17:09 의견 0
한미약품그룸 본사 사옥

8일 한미약품그룹 송영숙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발표하면서 한미약품 그룹의 모녀 대 형제 간의 경영권 다툼이 정리되는 수순을 밟는 듯 하다.

지난 5일 그룹 최대주주인 한양정밀 신동국 회장이 종전 아들형제인 임종윤·종훈 형제 편을 들었던 데서 입장을 바꿔, 송영숙·임주현 모녀 편을 들기로 하면서 경영권 판세변화가 있은 지 3일 만에 고 임성기 회장 오너일가 대부분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겸 최대주주와 현재 한미약품 대표인 박재현 사장 중심의 전문경영인체제로 들어가게 됐다.

송영숙 회장은 8일 입장문을 내고 "늘 한미를 돕겠다고 하셨던 신 회장의 대승적 결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신 회장과의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 및 주식매매 계약 체결을 계기로 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한미는 신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한미그룹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송영숙 회장은 한미약품그룹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이번 발표 후 회장에서 내려와 명예회장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의 사내이사는 계속 유지할 계획이다.

앞서 한미그룹 창업주 일가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모녀 경영진은 최근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인 신 회장과 모녀의 주식 444만4187주(지분 6.5%)를 1644억원에 매도하고 공동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식매매계약 및 의결권 공동 행사 약정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 계약으로 모녀의 특수관계인 지분 보유비율이 48.19%가 되며 전체 의결권의 과반에 이르는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신동국 회장의 지분은 종전 12.43%에서 18.93%로 크게 늘었다.

송 회장은 "한미 지분을 해외 펀드에 매각해 한미의 정체성을 잃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판단과, 한미의 다음 세대 경영은 전문 경영인이 맡고 대주주들은 이사회를 통해 이를 지원하는 선진화된 지배구조로 가야 한다는 판단을 최근 신 회장이 내린 후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으로 안다"며 "신 회장과 대주주 가족이 힘을 합쳐 더욱 발전된 한미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녀 대 형제의 대결구도로 망가진 한미약품그룹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현장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해 경영을 시급히 안정시키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대주주는 사외이사와 함께 참여형 이사회를 구성해 회사 경영을 지원하고 감독하는 한편, 회사의 투명성을 보다 높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단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신 회장이 장·차남의 편에서 노선을 바꿔 모녀의 편에 선 것은 그동안 장·차남의 경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것이 원인으로 해석된다. 고 임성기 전 회장의 고향 및 고등학교 후배로서 15년 간 대주주였지만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위한 중심을 잡는데만 집중해온 신 회장 입장에서는 장·차남이 경영권을 맡은 이후 약화되는 회사 이미지에 따라 떨어지는 주가에 불만을 품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약품그룹 안팎에서는 임종윤·종훈 형제는 개인적으로 벌여놓은 사업들이 10여개 있는데, 이들 사업 사정이 악화돼서 상당수 부채를 안고있는 상황에서 상속세를 부담하기 위해서는 한미약품을 매각해서 해결하려 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위해 형제들의 편을 들어줬는데, 자칫 회사가 형제들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는 편에 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종윤 이사 측은 송 회장·신 회장의 계약 발표 방법과 그 파장에 대해 법적 대응을 시사하면서도 신 회장과 대화해보겠다는 입장을 보여와, 양측이 어떤 결론을 도출해낼지 주목된다.

하지만, 한미약품그룹은 이미 임종윤 이사에 대한 내부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이익 편취 부분을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나서면서, 장·차남의 세력을 저지시키는 데 본격 나선 모양새다.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감사위원회 요청에 따라 북경한미의 내부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경한미가 임종윤 이사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홍콩의 코리그룹에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자금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감사는 북경한미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의약품을 코리그룹의 자회사 북경룬메이캉(北京潤美康)에 넘겨 유통하는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에 따른 것이다. 북경한미의 지원을 통해 벌어 들인 코리그룹 수익을 이용해 또 다른 투자 기업인 코스닥 상장사 디엑스앤브이엑스(DXVX)에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북경한미의 지난해 매출이 3976억 원이고, 룬메이캉과 북경한미간 거래가 지난해 2142억 원(연결기준)에 달한 점 등을 고려하면 룬메이캉 매출의 대부분은 북경한미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당초 고 임 회장의 장·차남이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경영권을 확보해 회사를 매각한 후 상속세를 해결하고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기업들을 살리려다보니 무리하게 지분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회사가 멍들었다”면서 “향후 전문경영인 중심의 경영시스템이 확보되면 그동안의 문제점들을 빠르게 해결하고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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