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부자감세를 서민증세로 메꾸나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29 09:29 의견 0

어떤 책을 읽고 전체적인 흐름은 이런거구나 하지만 이걸 독후감 형식으로 쓴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음 소개하는 책을 읽고나서 느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나고 난 후 자유주의와 파시즘의 발상지인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긴축정책의 목표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긴축정책에 대한 실증적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 얘기다. (자본질서, The capital order, 부제 :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 Clara E. Mattei, 2024)

당시 영국과 이탈리아의 정치체제가 확연히 다른데 긴축정책이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시행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전쟁중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노동조합을 통한 힘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종전후 러시아 제정을 볼셰비키혁명으로 무너뜨렸고, 자본주의 체제(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사용자와 근로자간의 임금관계)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당시 영국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으로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졌고, 이탈리아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커져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었으며, 긴축정책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도출된 산물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속에서 자본주의의 수호자(관료, 경제학자, 자산가 등 부유층)들은 긴축정책을 무기로 노동자 계급을 억압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재정, 통화, 산업의 긴축이라는 3가지 긴축수단의 상호 메카니즘을 이용하여 노동자계급을 무장해제하고 임금의 하방압력을 가했다.

재정긴축의 방법으로 복지예산 삭감, 역진적 과세(저소득층에 높은 과세)를 시행하였고, 고금리 통화긴축 정책으로 대출비용 증가로 투자감소, 고용감소, 수요억제와 임금을 낮추었고, 낮아진 임금으로 생산비를 낮추고 이로 인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긴축 방법 등을 통하여 소수인 저축자, 투자자, 자본가의 이득을 높이고, 다수자인 노동자계급에게는 저임금, 고금리, 소비수요 억제 등을 강요하였다.

영국과 이탈리의 긴축방식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재정, 통화, 산업긴축을 통해 통치자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기술관료, 경제학자, 자본가 등의 이익을 위해 다수인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는 동일하다.

이때 정부는 근면, 근검, 절약을 강조했고, 모든 불필요한 지출은 삼가해야 한다는 모토로 국민들을 긴축이라는 수단으로 통제했다.

이러한 정책들이 지금부터 100년전에 있었던 정책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긴축정책은 통치자가 국민을 계몽하고 통제하겠다는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1920년대나 지금이나 긴축의 승자는 언제나 소수의 부유층이다. 최상위층 1%는 주로 배당금, 이자 등 원래 가지고 있던 부가 부를 낳는 불로소득으로 살아간다. 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나머지 인구, 즉 저임금과 사회보장에 의존하는 하위60%는 패자가 되었다.(31p)

전문가들은 저축자, 투자자에게 보상한다는 같은 목표로 부유층 감세 방법을 고안했다. 이번에도 근거는 간단했다. 부유층은 저축성향을 타고나서 이들에게 높은 직접세를 매기면 저축과 투자가 위축된다는 논리였다.

과세 수준은 국가의 경제생활과 신규 자본 축적에 방해가 되면 안되고, 상속세와 자본세를 올리면 국가 전체에 훨씬 더 심각한 손실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다수에서 소수로 자원을 이동(또는 추출)하는 긴축을 미묘하게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215p)

재정긴축과 통화긴축은 쌍방을 강화하는 동시에 존재 목적도 같았다. 이 둘은 부유한 저축자들에게 유리한 반면, 나머지 사회구성원에겐 정부지원과 임금이 줄고 세금은 늘어 씀씀이를 줄일 수 밖에 없게 했다.(83p)

이러한 긴축정책은 그 이후 현재까지 100년동안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 등의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근본목적은 국민을 계몽하고 대중에 대한 통제수단이었다.

분명한 것은 긴축이 경제안정이 아니라 계급관계 안정에 특히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결국 역사상 긴축은 인플레이션과 예산 통제가 주목적인 적은 없었다.

총수요를 조종하는 긴축에는 항상 더 깊은 목적이 깔려 있었다. 긴축이 시행된 이후 자본가는 이윤을 눈덩이처럼 불릴 최적의 여건을 확보한 반면, 정치적으로 소외된 대다수는 이제 막 시작된 경제민주화의 포부를 모두 포기한 채 적게 벌고 적게 쓰며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310-311p)

긴축이 예나 지금이나 실업률, 착취율, 이윤율을 높이고 임금은 낮춰 자본 축적을 최적의 조건으로 회복하는 효과가 있음을 확증한다. 긴축은 다수를 가난해지게 하여 노동자를 자본가의 이익에 순응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긴축의 목표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이라기 보다 '착취율 타깃팅'이라고 보는게 옳다.(325p)

긴축은 다수의 민중을 얌전하게 길들이는데 성공한다.

놀랍게도 1920년대의 긴축정책이 100년이 지난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건전재정이라는 미명하의 긴축과 너무 닮아 소름이 돋는다.

이런 와중에 서민들의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부가가치세는 곧 올릴 예정이라는 씁쓸한 뉴스가 들려온다. 부자감세를 서민증세로 메꾸겠다는 심산이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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