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그룹 역량 AI∙반도체에 모아라”…100조 투자 발표

-지난달 28~29일 경영전략회의에서 최 회장 ‘AI밸류체인 리더십’ 강조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반도체위원회 신설, 곽노정 위원장 선임

김지윤 기자 승인 2024.07.01 07:41 | 최종 수정 2024.07.02 11:04 의견 0
지난달 28~29일 진행된 SK그룹 경영전략회의에 미국 출장 중인 최태원 회장이 화상으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SK그룹

SK그룹이 지난주 이틀간 진행된 그룹 경영전략회의 결과는 예상대로 AI(인공지능)와 반도체 중심의 그룹 사업역량 집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I(인공지능) 밸류체인'에 5년간 100조원 가량을 투자하는 것인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한 AI 반도체 등 그룹이 가진 AI 경쟁력을 극대화해 AI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것이 핵심 과제로 모아졌다.

현재 그룹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방어적인 수단인 구조조정보다는 오히려 기회를 잡기 위한 새로운 밸류체인을 구축해 미래 성장동력을 선점해 나가겠다는 ‘공격이 최대의 방어다’라는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SK그룹은 지난 28~29일 경기도 이천 SKMS연구소에서 최태원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이상 화상 참석),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20여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영전략회의'를 열어 이 같은 전략 방향에 뜻을 모았다고 1일 밝혔다.

화상통화를 통해 회의에 참여한 최태원 회장은 "지금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할 정도로 AI 관련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며 "그룹 보유 역량을 활용해 AI 서비스부터 인프라까지 'AI 밸류체인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SK 경영진은 이번 회의에서 수익성 개선과 사업구조 최적화, 시너지 제고 등으로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하고, AI·반도체 등 미래 성장 분야 투자와 주주환원 등에 활용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 개선을 통해 3년 내 30조원의 FCF(잉여현금흐름)를 만들어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한다는 목표도 포함됐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은 AI 밸류체인에 집중 투자된다. △HBM을 필두로 한 AI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개인형 AI 비서(PAA) 등이 앞으로 그룹이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나갈 AI 밸류체인이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향후 5년 간 총 103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HBM 등 AI 관련 사업 분야에만 약 80%인 82조원을 쏟아붓는다.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는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5년간 3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AI 밸류체인 관련에만 100조원에 육박한 자금이 투자되는 셈이다.

조직개편 측면에서는 오늘 1일부로 수펙스추구협의회에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고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그룹의 AI와 반도체 밸류체인 관련 기능을 그룹차원에서 콘트롤타워를 만들어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향후 SK그룹의 역량이 집중될 반도체위원회를 맡게 될 곽노정 신임 위원장에게 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곽 위원장은 1965년 생으로, 고려대학교 재료공학과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1994년 현대전자산업(SK하이닉스 전신) 공정기술실로 입사한 이후 30여 년간 줄곳 SK그룹에서 한 길을 걸어온 SK맨이다. 2022년 3월부터 SK하이닉스 안전개발제조 총괄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곽 위원장은 근래 D램 시장의 어려움을 HBM으로 극복해내면서 경영 역량을 입증했다. 다운턴(하강 국면) 상황에서 기술력과 경영 효율성 등을 앞세워 체질 개선을 이루고 수요 부진 제품 감산,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 등으로 시장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2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반도체 업황 악화에 SK하이닉스는 HBM 등 적극적인 AI용 메모리 수요 대응과 비용 절감 노력으로 지난해 4분기 업계 최초로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5개 분기 만에 다운턴을 극복했다. 올해 1분기에는 2조8천86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깜짝 실적'을 기록했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올 2분기의 SK하이닉스 영업이익 컨센서스는 4조9100억원으로 전년 동기의 -2조8821억원 대비 7조원 넘게 이익을 늘렸다. 같은 기간 매출도 115% 증가한 15조7572억원으로 추정했다.

수펙스추구협의회에는 현재 최창원 의장이 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전략·글로벌위원회를 비롯해 환경사업(위원장 장용호), ICT(유영상), 인재육성(박상규), 커뮤니케이션(이형희), SV(지동섭), 거버넌스(정재헌) 등 7개 위원회로 구성돼 있으나, 이번 반도체위원회 신설로 모두 8개로 늘어나게 됐다.

반도체위원회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스퀘어,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등이 참여한다. 소재(SKC), 웨이퍼(SK실트론), 특수가스(SK머티리얼즈) 등 반도체 하드웨어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AI와 HBM 중심의 반도체에 역량을 모으겠다는 SK그룹의 전략은 이미 최 회장의 행보에서 나타났었다. 최 회장은 그룹의 위기극복을 위해 마련된 그룹 경영전략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미국행을 선택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졌었는데, 예상대로 AI와 HBM 관련 중요한 일정 때문이었다.

최 회장은 미국 출장길에서 사티아 나델라 MS(마이크로소프트) CEO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만나 현재 SK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HBM(고대역광폭메모리 반도체)와 ‘AI 비서’에 대해 이들 기업들과 향후 협력관계를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최태원 회장은 지난 4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6월 초 웨이저자 TSMC 이사회 의장(회장)과 잇따라 만나 AI와 반도체 하드웨어 파트너십을 공고히 한 바 있다. 앞서 작년 12월에는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 기술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산업계 한 전문가는 "SK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차원에서 조직 슬림화 중심의 구조조정에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반도체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반도체와 AI로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것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현재 방대하게 운영되고 있는 그룹 조직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CEO급 고위 임원 및 조직 구조조정도 심도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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