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라” 레인보우힐스CC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16 10:09 | 최종 수정 2024.06.26 05:21 의견 0
레인보우힐스 동코스 3번홀 일명 '한반도홀'로서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홀이다. 사진은 한국여자오픈이 열리기 얼마 전 모습. 사진=수도시민경제

페어웨이 굽이쳐 흐르고/시냇물은 바위를 어르고/산은 탑처럼 우뚝한데/벙커는 놓아주지 않으려 하네(중략) 이제 코스를 닫으려 하나/그녀는 놓아주지 않으려 하네(중략) 그 길들여지지 않을 코스를 영원히 사랑하리.

지금 한국여자오픈 프로골프 경기가 열리고 있는 충북 음성에 있는 레인보우힐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동판으로 새겨진 시의 일부다. 이 시는 이 골프장을 설계한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가 직접 지은 시로, 본인이 그동안 설계한 모든 골프장 중에 가장 마음에 든 골프장이라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를 지어 바쳤다.

레인보우힐스CC는 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한마디로 어려운 골프장이다. 당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코스운영을 한다면 웬만한 수준급 골퍼도 18홀에 5개 이상의 볼을 잃어버릴 수 있다. 지금은 사람 키만큼 자라는 롱퍼스큐를 좀 줄여놨고, 세미러프도 좀 짧게 하고, 그린도 처음보다 느리게 만들어서 그렇지 아마추어 골프에서 일상화돼있는 오케이가 없다면 쓰리퍼터 포퍼터가 다반사로 나오는 골프장이다.

공이 떨어진 곳을 캐디까지 다섯명이 분명히 보고 가서 공을 찾아도 공은 나타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공들만 나타난다. 롱퍼스큐가 아닌 세미러프도 마찬가지다. 정말 미치고 환장하는 경우가 일상적인 모습이다.

대한골프협회가 한국여자오픈 개최와 관련 발표한 코스레이팅은 79.9다. 쉽게말해 이븐파인 72타를 치는 골퍼가 여기서는 79.9 즉 7타를 더 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90대 타수를 치는 골퍼는 일반적으로 80대 타수를 치는 골퍼를 의미한다.

홀별로 비슷비슷한 홀로 구성된 보통의 골프장과는 달리 27홀 모두가 각각의 특성을 지녀서 골프를 치고 나면 18홀 모든 홀이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림처럼 생각이 나는 특이한 골프장이다.

2008년 개장했으니까 벌써 16년이 흘렀다. 16년 전 당시 이 골프장은 페어웨이 조성에 2700억원, 클럽하우스와 그늘집에 300억원이 들어 총 3000억원이 들어간 골프장이다. 단순 계산으로 한홀에 100억원씩 들어갔다. 자연 그대로를 살리면서도 공사비가 많이 들어간 이유는 전체 페어웨이에 최소 30cm 이상의 모래를 깔았기 때문이다. 그린의 모래 두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페어웨이 물이 금방 빠져서 골프장이 손상되지 않는다.

이 골프장 건설 당시 동부그룹(현재 DB그룹) 김준기 회장의 정성과 관심으로 그룹 관계자들은 초비상이 걸렸었다. 당초 일본의 설계회사에 맡겼던 설계가 마음에 들지않아 회장이 직접 미국의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에게 달려가 요청할 정도였다. 당시 70세를 바라보던 RTJ Jr가 본인은 이제 은퇴를 하고 3세가 경영하고 있다고 했지만, 김 회장은 반드시 주니어가 맡아야 한다고 우겨 맡게되면서 주니어의 마지막 유작으로도 알려진 골프장이다.

클럽하우스를 설계한 미국의 MAI(March & Associates, Inc)는 세계적인 레저부문 건물 설계회사이지만, 미국 내에서만 수주물량이 10년치 이상 쌓여있어서 미국 이외의 나라 물량은 아예 수주를 하지 않는 회사다. 이 회사에도 김 회장이 직접 방문해 설계를 강력히 요청했고, 결국 설계를 맡게 됐다. MAI의 미국 이외 나라에 설계한 첫 작품이 바로 레인보우힐스CC 클럽하우스다.

2008년 개장 당시 이 골프장의 회원가는 최고 10억원이었다. 사회적 저명인사들과 연예인 등 유명인들 상당수가 회원으로 들어왔을 정도로 골프계에서는 관심이 컸다. 세상에는 레인보우힐스CC에 가본 사람과 안가본 사람 둘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 한국여자오픈에서도 역시 코스의 어려움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골퍼가 다수 발생했다. 지난 2라운드까지 16명이 중간에 짐을 쌌다고 한다.

이 골프장은 오만함과 경솔함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디를 하려고 무리하면 보기에 더해 더블보기 트리플보기라는 몽둥이를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가는 골퍼들은 몇홀 돌면서 좌절에 빠져 "다시는 이 골프장 안오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18홀 마칠 때에는 하나같이 꼭 다시오고 싶다고 한다. 놓아주려 하지 않는 그녀의 마법에 빠진 것이다.

드라이버 보다는 아이언이, 아이언보다도 퍼터가 중요한 골프장이다. 그래서 정확한 골퍼가 훨씬 유리하고 우승 가능성도 높다. 홀이 가까울수록 어렵다. 어프로치와 퍼터가 정교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코스를 구성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레인보우힐스CC는 바로 자연이라는 것이다. 골퍼들에게 자연이 가지고 있는 힘을 가르치는 셈이다.

이 골프장 동코스 7번홀은 파 5홀로서 티박스는 이 골프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페어웨이는 티박스보다 최소 30m 이상 낮아, 자칫 공을 잃어버리기 쉬운 홀이지만, 장타자는 투온을 노려 이글을 욕심낼 만한 홀이다.

이 홀 티박스는 명당자리로도 유명하다. 이 골프장이 위치한 수레의산의 정기를 가지고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의 전형적인 명당자리라고 한다. 과거 한 기업인이 골프 라운드 중 이 곳에 술 한잔 따르고 소원을 빌어 사업이 크게 번창했다고 해 많은 골퍼들이 이 홀 티박스에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이 골프장에 갈 때는 자연을 즐기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겸손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코스를 닫으려 하나/그녀는 놓아주지 않으려 하네.

겸손을 배우고 자연을 영원히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골프장이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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