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담론>의 허구22–민주주의는 권력분산, 사회주의는 권력집중인데 왜 사회주의를 찬양하는지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28 12:23 | 최종 수정 2024.06.28 12:24 의견 0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특징이 권력 분산입니다. ‘권력, 명예, 돈’을 한꺼번에 몰아주지 않습니다. 돈이 많았던 기업인 정주영도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잡지 못했습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 돈을 추구하는 기업인 가운데 명예를 얻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100세를 넘어 장수하고 계시는 김형석 교수님 같은 분은 돈과 권력 대신에 명예를 얻었고,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했던 성철 스님,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도 명예를 얻었습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특징은 ‘권력 집중’입니다. 권력을 쥐면 모든 걸 얻는 구조입니다. 북한의 권력자 김정은은 북한의 최고 부자입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이라는 가장 큰 명예(?)도 김정은이 독차지합니다. 중국도 ‘권력, 부, 명예의 집중’이 이뤄집니다. 최근 미국 의회의 은닉 재산 보고서에는 중국 주석 시진핑이 가족 명의로 7억 달러를 숨겼다고 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2012년 확인해 보도한 원자바오 전 총리 가문의 재산은 27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신영복의 <담론> 가운데 ‘상품과 자본’이라는 글에서 사회주의의 ‘권력 집중’은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본론>에 입각해 ‘자본주의에서는 자본 권력이 장악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증명하는 자료나 데이터는 없습니다. 다음은 신영복의 글입니다.

“상품이 화폐로, 화폐가 자본으로 발전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입니다. 상품의 최고 형태가 화폐라고 했습니다. 화폐가 권력이듯이 자본은 더 큰 권력입니다. 자본 권력은 생산과 소비를 장악합니다. 시장을 장악하고, 국가를 장악하고, 세계질서를 장악합니다. 춘추전국시대를 법가가 통일했다고 한다면 근대사회는 자본가가 통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은 자기 증식하는 가치입니다. 자(資)는 자(滋)와 같은 뜻입니다. 불어난다는 뜻입니다. 캐피탈(capital)은 카푸트(caput)라는 소를 세는 단위 즉 ‘마리’가 어원입니다. 소도 새끼를 낳고 우유를 만듭니다. 자본은 그 자체가 증식하는 가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자본은 반드시 자본축적으로 이어집니다. 축적은 자본의 강제 법칙입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 축적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은 자본축적이라는 경제학 개념이 가시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형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 때였습니다. 무 배추밭이던 강남 일대에 엄청난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가득 들어차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개밖에 없었던 한강 교량이 열 개도 더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자동차, 도로, 수많은 상품들의 집적(集積), 이것이 자본축적입니다. 자녀를 교육시키고 치료하고 그러고도 남은 여분이 건물, 교량, 자동차, 도로 등으로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축적이었습니다. 물론 그 축적에는 해외 저축이 도입된 부분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저축이 해외로 나간 것도 있습니다....(중략)”

신영복은 감옥에서 생활하고 나온 후 본 대한민국의 발전을 ‘자본축적’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국민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경제 기적은 ‘자녀를 교육시키고 치료하고 남은 여분의 축적’이라고 폄하합니다. 정말 놀라운 이해력입니다.

신영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본축적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기계화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바로 이 기계화가 노동으로 이어집니다. ‘자본축적은 노동을 소외(alienation)시킨다.’ 이것이 자본축적에 대한 1차적인 인문학적 선언입니다. 기계 기술의 도입과 노동 생산성의 증대가 노동해 고로 이어진다는 것은 물론 자본 축적 자체의 필연적 결과는 아닙니다. <장자>의 반기계론에서 이야기했습니다. 10시간 소요되던 노동이 기계기술 도입으로 두 시간으로 줄어든다면 그만큼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8명은 해고로 나타납니다. 자본 축적 과정 자체가 사회적 경쟁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업 문제 특히 청년 실업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노동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노동이 소외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자본축적은 노동계급을 궁핍화합니다. 하지만 자본축적이 궁핍화 과정이란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자본축적 과정은 풍요의 과정으로 인식됩니다. 자본주의 전개 과정은 생산과 소비의 엄청난 증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핍화’라는 의미는 물질적 소비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지위가 종속화된다는 의미입니다. 노동의 지위가 열악해지고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노동의 소외 문제에서 언급한 것과 같습니다. (진짜 노동의 소외는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입니다. 자신이 생산한 것을 빼앗기고, 그저 급식에 의존하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라고 할 경우 그것이 특정 국가의 특정 부문의 취업 노동자를 염두에 두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노동계급 전반 즉 세계의 모든 노동계급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업과 비정규직의 양산은 물론이고 취업자의 불안, 국제경제의 수탈적 구조와 전 세계적인 빈곤층의 광범 확대와 기아 현상을 망라하는 개념입니다. 세계 인구의 33%가 빈곤 수준에 있는 오늘의 현실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자본 축적이 풍요의 과정이라는 주장이 도리어 설득력을 잃을 것입니다.”

“근대사회가 자기 정당성을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Big 5’입니다. 근대사회는 사회의 공적(公敵) 다섯 가지를 해결했다는 것이지요. 빈곤, 질병, 무지, 부패, 오염을 해결했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런가? 이 다섯 가지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반론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히 분석하지는 않습니다. Big 5의 현 주소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은근슬쩍 자세한 분석을 피합니다,,,(중략) ‘Big 5’의 환상을 청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는 일입니다. 근대사회가 ‘Big 5’를 해결했다는 주장은 그것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상품화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시작일 뿐입니다.”

신영복이 말하는 ‘노동의 소외’와 ‘국제경제의 수탈적 구조’는 좌파 사회주의 지식인들의 단골 메뉴입니다. 마르크스에서 시작된 그러한 좌파의 주장이 무려 150여 년이 지나도록 발전이 없다는 겁니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의 끝없는 반복입니다.

좌파 지식인이라는 엉터리 지식인들의 문장은 대개 비슷합니다. 유시민, 장하준, 신영복의 문장은 대부분 이러한 결론을 도출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문제가 많다. 바꿔야 한다. 그러나 미래가 뭔지는 모르겠다.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다’가 그것입니다. 국내 좌파 신문들의 칼럼이나 사설도 대부분 이렇게 끝납니다. 주의력을 가지고 살펴보시면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신영복도 다음처럼 말합니다. “이처럼 (미국을 필두로 하는) 패권적 질서에 대한 회의는 공론화되고 있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급격한 파탄을 저지하기 위한 연착률과 민주화의 논의가 절실한 것이 현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리를 끊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문학적 성찰이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구조를 조감할 수 있는 드높은 관점을 열어 줄 것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아무런 해결책도 못하고 그저 상대방 비난만 일삼는 ’비난 특기의 좌파 정당, 좌파 지식인‘과 비슷한 시각으로 글을 끝맺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 발전에 진정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사실과 진실에 의해 발전합니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스웨덴 보건학자이자 통계학자인 한스 로슬링과 그의 아들 올라 로슬링, 며느리 안나 로슬링이 책의 저자입니다. 이들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무지에 싸운다’는 모토로 2005년 갭마인더재단을 설립해 통계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스 로슬링은 2017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들과 며느리인 올라와 안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공중보건의로서 아프리카 극빈층 지역에서 일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발전, 농업, 가난, 건강 사이의 연관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정확한 인식이 올바른 도움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한국을 포함해 14개국 1만2,000명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실시한 뒤 이 거대한 오해를 10개의 본능으로 체계화했다. 2013년부터 테스트를 시작해 매년 데이터를 추가하고 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은 올바른 결정으로 이어진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바쁜 현대인은 그 흐름을 따라잡을 시간이 부족하다. 잘못된 통계에 사람들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신영복은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빈곤의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10살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한 명씩 아 사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매일 10만 명의 인구가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존하는 빈곤층이 2천만 명에 달합니다. 빈곤 수준을 어떻게 설정하는가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생존 수단으로 낮게 잡는다고 하더라도 빈곤이 해결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미국 통계는 도저히 신뢰할 수 없습니다.)

과연 신영복의 주장처럼 그럴까요? <팩트풀니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언론인, 정치인, 활동가, 교사, 연구원 모두 일상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 그 사람들은 ‘그들과 우리’,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잘 살고 못 살고’, ‘북부와 남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등등으로 구분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게 아니다. ‘가난한 개발도상국’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세계 75% 이상의 사람이 중간소득 국가에 산다. 양극단에 빈곤한 나라, 부유한 나라가 있지만 대부분은 가운데 몰려 있다. 하루 2달러 이하의 나라에 사는 인구비율은 9%다. (물론 9%도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중간층에 사는 50억 인구가 샴푸 오토바이 생리대 스마트폰 등을 소비한다.

소득수준에 따라 4단계로 나누는 게 필요하다. 2달러 이하, 2-8달러, 8-32달러, 32달러 이상(365x32=11,680달러... 대략 1만2천 달러 이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특히 ‘물 – 이동수단 – 요리방법 – 식사 – 침실’로 소득수준을 구분할 수 있다.

1단계 – 양동이, 맨발에 걷기, 모닥불, 거무스름한 죽, 땅바닥

2단계 –우물 양동이, 자전거, 가스레인지, 전기, 매트리스

3단계 – 수도, 오토바이 자동차, 가스레인지에 냉장고, 출퇴근, 침대

4단계 – 싱크대, 자동차, 오븐 냉장고, 골라서 식사, 침실

이렇게 볼 때 세상은 과거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다. 그게 팩트이다.’

<팩트풀니스>의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어느 수준입니까? 그리고 이걸 만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신영복의 주장은 그저 거짓된 사실, 그릇된 신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 세계를 좀먹는 좌파 지식인들의 모습과 뇌구조가 대부분 신영복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신영복을 그리도 존경한다고 말하는 가 봅니다.

코라시아,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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