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담론>의 허구6 – 진실은 창조된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적 소설 ‘1984’에 등장하는 ‘진실부’가 연상되는 부분?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6.12 20:58 | 최종 수정 2024.06.13 18:46 의견 0

사실(事實)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을 말합니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환상이나 허구의 반대편에 섭니다. 진실(眞實)은 ‘거짓이 없는 사실’을 말하므로 사실보다 더 범위가 좁습니다. 진실(truth)의 반대말은 거짓입니다.

자연과학에서 진실로 인정받으려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이 대표적입니다. 2024년 논란이 된 ‘초전도체 LK-99’도 엄격한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사회과학에서도 진실로 인정받으려면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만 실험의 대상이 사람이다 보니 다소 허술(?)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더 커지면서 부의 불평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왜 불평등이 생기고 왜 소수가 지배하는 경향이 생기는지에 관한 피게티의 설명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불평등을 해소할 치료법으로 그가 내놓은 방안은 순진하고 심지어 공상적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피게티는 국내에서도 한때 인기가 대단했으나, 데이터 오류와 ‘미래에 관한 순진한 주장’으로 인해 요즘은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신영복은 진실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요? 신영복이 <담론>에 다음처럼 썼습니다.

“세계 인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강녀(孟姜女) 전설을 소개했습니다. 맹강녀는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동원되어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아갑니다. 겨울옷 한 벌을 지어서 먼 길을 찾아왔지만, 남편은 이미 죽어 시체마저 찾을 길 없습니다. 당시에는 시체를 성채 속에 함께 쌓아 버렸다고 합니다. 맹강녀는 성채 앞에 옷을 바치고 사흘 밤낮을 통곡했습니다.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尸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옷을 입혀서 곱게 장례 지낸 다음 맹강녀는 노령두에 올라 바다에 투신합니다. 맹강녀의 전설이 사실 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쪽이 진실한가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설 쪽이 훨씬 더 진실합니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고 조각을 모으면 진실이 된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레고 조각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신영복은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입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뤄야 합니다....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입니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신영복은 사실과 진실이란 단어를 묘하게 비트는데, 특히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는 표현이 왠지 섬뜩합니다. 이건 공부를 통해 세상을 '묘하게, 진짜와 다르게 비틀라'는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창피한 내용은 빼고 무용담이나 미담을 담아 넣고, 연구 논문을 쓰는 사람은 데이터 조작을 해도 좋고... 민주당을 대표하는 인사들은 자신의 범죄나 사실 조작도 아니라고 우기는 데 신영복이 살아있다면 그게 ‘진실의 창조’라고 했을까요? (이 대목에서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적 소설 <1984>에 나오는 '진실부' 즉 '진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대목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를 보면 ‘진실 조작’이 선전선동을 통해서 일상처럼 일어납니다. 중국에서 3월 5일은 "레이펑에게 배우는 날(Learn from Lei Feng Day)"로 지정돼 있습니다. 레이펑(雷锋, 1940~~1962)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로 마오쩌둥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후난성 창사 출신입니다. 그는 1957년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들어 중국 각지의 농장이나 공장에서 작업했고, 1960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가 1962년 랴오닝성 푸순에서 트럭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마오쩌둥은 그를 ‘이상적 군인상’으로 떠받들고 1963년 3월 5일에는 직접 향뇌봉동지학습(向雷鋒同志学習, 레이펑 동지에게 배우라) 운동을 지시합니다. 이 말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잊게 하고, 문화대혁명에 참여하는 홍위병이 떠받들어야 할 슬로건이 되었습니다. 전형적인 우상 만들기이자 진실의 조작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시절 소련이나 북한에서도 이런 일이 다반사로 발견됩니다.

지금은 ‘탈진실(Post Truth)’ 시대로 불립니다. 탈진실 현상은 사실 추구와 합리성이 무시되고, 조작된 거짓 정보가 사실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대체하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신영복의 ‘진실’에 대한 인식은 마치 ‘탈진실의 옹호’처럼 느껴지는데, 신영복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처럼 ‘엉터리 진실의 색안경’으로 보고 판단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민주당의 주류 세력은 운동권 출신과 좌파 이념에 치우친 사람들인데, 1980~9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4050세대이자 남성이었습니다. <민주당 혁신안 자료(2023년 8월 발간)>에 따르면 2023년 6월30일 기준 민주당의 권리당원은 245만 명인데, 남성이 53.2%이고 50대(29.6%)와 40대(22%)가 합쳐서 절반을 넘었습니다. 이들은 1980~90년대에 운동권 이념과 전교조 주장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좋아져도 ‘세상은 X 같아’라면서 ‘사회적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유시민과 조국 같은 사람은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인데도 ‘자신의 동지’라고 여깁니다. 아마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말로만 세상을 설명하던 신영복 같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람이 보통 30대를 지나면 자신의 이념이나 사상을 바꾸지 않으니까요. 지금 40~50대의 비뚤린 세상 인식이 참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스럽게 합니다.)

코라시아(필명),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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