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지난 19일 임시 금통위를 개최했지만 이후 환율은 더 올라 1480원을 넘나들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남탓으로 돌리면서 대책이 잘못돼 일어나는 일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를 연 것에 대해 시장은 그동안 정부의 환율에 대한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면서 향후 환율전선에 본격적인 이상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는 정기 금통위 일정인 23일을 불과 나흘 앞두고 더군다나 그 사이 주말이 끼어있어서 환 거래일은 고작 이틀인데 굳이 별도의 임시 금통위를 연 것에 대해 시장에서는 “얼마나 다급했으면”, “실제로 한은의 가용 외환이 바닥 난 것 아니냐”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임시 금통위 이후 환율 오히려 폭등...환율발작 시작되나
임시 금통위가 열린 것은 가깝게는 지난해 윤설열 전 대통령이 12.3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날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환율이 1400원대에 올라서자 급하게 열렸었다. 그 외 임시 금통위는 1997년 IMF 사태 이후 2001년 9월 19일 911테러사태, 2008년 10월 27일 미국발 금융위기, 2020년 3월 16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 열린 것이 전부다. 물론 1950년 6.25전쟁 때도 열렸었다.
그만큼 임시 금통위가 열렸다는 것은 정상적인 시스템 가동이 어려운 비상사태에서 열리는 것인 만큼 우리나라 현재 외환시장 상황에 대해 정부와 금융당국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번 임시 금통위가 열린 지난 19일 환율은 고작 2원 떨어진 1476.30원으로 장을 마쳤지만, 월요일인 22일 아침 보합권으로 출발한 후 오후 1시 현재 1481.30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시장에서 여러 경제주체들이 한국 외환시장에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인식하는 단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임시 금통위에서는 ‘외환지준 부리’ 제도를 내년 1월부터 6월까지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 핵심이다. 금융회사들이 달러를 한은에 지급준비금으로 맡길 경우 의무 한도를 넘긴 초과 예치 달러에 대해 미국 기준금리인 3.5~3.75%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와같은 외화 자산에 대해 한은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달러가 시급한 상황임을 보여준 것이다.
전날 기획재정부 역시 외환대책을 내놨었는데, 금융회사가 외화부채 일부를 한은에 예치해야 하는 ‘외환건전성부담금’을 내년 6월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금융회사의 외화 차입 비용이 줄어 결과적으로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외환 건전성 부담금이 면제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이후 약 5년 만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1월에만해도 1300원대에서 움직였다가, 12.3비상계엄 발생 직후 1480원까지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던 것이 올해 대통령 선거 때인 6월 다시 1330원으로 내려왔는데, 불과 2~3개월 만인 8월~9월부터 1400원대에 올라선 이후 1400원이 뉴노멀이 됐고 이제는 1480원을 넘어 연말 1500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정부, 잘못된 남탓 진단과 잘못된 처방...통화량과 금리가 문제
정부와 한은 등 금융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애를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시장에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는 정부가 고환율 현상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잘못 내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을 수정할 생각은 않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서 문제해결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통화와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의 면피주의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한 2022년 4월 이후 현재까지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를 보면 현재까지 한번도 우리 금리가 미국 금리보도 높았던 적이 없었다. 금리 차도 평균적으로 2%p 정도였고, 현재는 1.25%p 우리나라가 낮은 상황이다. 그나마 두 나라 간 갭이 가장 적은 상황이다.
역사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금리차가 3년 8개월 간 이렇게 큰 차이로 반대로 벌어진 적이 없었다. 달러 자체가 핵심 기축통화이고 안전자산인데, 금리까지 높으니 달러가 우리나라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창용 총재는 한미 금리차가 환율과 관계가 없다는 말만 늘어놨다. 상당히 잘못된 인식이다.
여기에 원화 통화량 증대 역시 원화가치를 떨어트려 환율을 올리는 요인이 됐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국의 M2(총통화량)은 4.8% 늘어난 데 비해 우리나라는 9.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총재가 취임한 후 현재까지 우리 통화량은 18% 늘어났다. 미국은 2022년과 2023년 통화량을 줄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같은 기간동안 3% 늘어난 것으로 돼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우리나라 통화량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GDP(국민소득) 대비 M2(총통화량)인 초과유동성지수(ELQ, Excess Liquidity Quotient))도 미국에 비해 심각하게 높게 나타났다. 미국은 GDP 28조달러에 통화량은 22조달러로 ELQ가 78.5%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GDP2300조원에 통화량 45조원으로 ELQ는 195.6%에 이른다. 미국이 트럼프가 달러를 엄청나게 찍어내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2배 반 이상 수준으로 찍어낸 것이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을 말한다.
적자재정에 따른 국가부채도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8.1%나 높여 잡아 국가부채를 더 키울 것으로 보인다. 약 100조원 이상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은 50%를 갓 넘어섰는데, 국가를 대신하는 공공기관 부채에다가 연금 등의 충당부채까지를 합하면 200%가 넘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부채관리 실패 + 한은 꼼수 = 더해 해법 찾기 어려워
지난해 말 기준 국가부채는 공공기관까지 합한 공공부채가 1738조원에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 1575조원, 국민연금 충당부채 267조원, 공무원 연금 충당부채 1052조원을 합하면 총 4632조원이 돼 이 기준으로 실질국가부채비율은 약 201%가 된다.
국가부채 상황이 심각한데 정부는 확장재정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내년 추경까지 합하면 내년 예산은 8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결국 환율 문제의 원인은 우리나라 화폐가치를 떨어트린 정부 당국에 있는데, 이 정부는 자신들의 금융통화 정책 방향을 수정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달러를 다루고 있는 금융기관, 수출기업, 국민연금, 외국투자 개인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우리나라 M2가 과장됐다면서 M2에서 수익증권을 제외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M2에서 수익증권이 제외된 통화량이 발표된다. 그러나 시계열 상 통화량의 증감을 살펴보려면 기존의 기준을 가지고 비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편법으로 나오는 통계를 과연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우리 외환시장에 대해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ELQ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 시장에 풀린 원화의 양이 중요하고 그것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한국은행이고 정부인데 이런 꼼수로 순간적인 비난을 벗어나려고 하니 우리 금융시장을 누가 믿고 원화에 투자를 하겠는가.
금융시장에서는 올 연말 마감환율에 관심이 많다. 과연 1480원대 이상으로 끝낼 지에 관심이 많은데, 지난해 12.3비상계엄 직후 연간 마감환율은 1472.5원이었다. 지금 상황을 볼 때 그 이하로 갈 가능성보다는 1480원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수출기업들은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원자재 및 부품 수입을 하는 중소기업들과 외화빚을 지고 있는 정부나 금융기관, 기업 등은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환율 양극효과가 시장을 덮치게 된다.
여기에 대통령실도 국민이 책임이라는 압박 대열에 나섰다. 하준경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은 21일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원화가치 하락에 베팅하는 환율 투기 움직임이 있다"면서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것은 오판이다"고 말했다. 환율 이상 현상에 대한 책임이 정부가 아닌 국민에게 있음을 비난하는 발언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보이는 모습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지금이라도 거시경제정책 차원에서의 금융정책과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이유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