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9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강남 중심의 집값 상승을 우려하면서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강남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인원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해 황당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한편 이해가 간다는 얘기도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값을 주도하는 곳이 바로 서울 강남이기 때문인데, 오죽하면 강남불패란 말이 나왔을까.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세 차례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값이 서울 한강벨트를 타고 상승세를 이어가는 근원지는 바로 강남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24일 이 총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 다른 지역 학생들의 기회를 줄이고 있다"면서 ”'과감한 해결책'으로 강남처럼 부유한 지역 출신 학생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상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부자들은 6살때부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 대학 진학을 준비시키고 여성 근로자들은 자녀 교육 때문에 집에 머물기로 결정하는 점을 문제시하면서 지나치게 치열한 경쟁이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아들인 임동현 군이 수능에서 한문제만을 틀려 서울대 경제학부 수시모집에 합격한 시실이 입시 관련 핫뉴스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 아들이 공부도 최고로 잘한다고 하니 당연히 관심이 가는 상황이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서울 강남이 등장한다.

임동현 군은 서울 강남구의 휘문중학교와 휘문고를 졸업했다. 어머니 이부진 사장은 아들을 강남에 있는 휘문중고교를 보내기 위해 2018년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주소지를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강남구 대치동으로 옮겼다. 결국 임동현 군은 휘문중에 이어 강남에서도 가장 센 자율형사립고인 휘문고등학교에 들어가 좋은 성적을 냈다.

이부진 사장의 맹모삼천지교 정신이 통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휘문고는 졸업생이 400여 명인데 매년 서울대학교 합격생을 40명 안팎으로 낸다. 지난 2025학년도에는 42명을 합격시켰다. 2023년 50명, 2024년 36명이었고, 지난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자는 총 167명이었다. 재수생도 포함한 숫자이지만 졸업생의 40% 이상이 SKY에 들어간다는 통계다. 강남 학군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부진 사장은 최근 주소지를 다시 용산구 이태원동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다.

입시전쟁에서 강남의 열기는 수도권에서도 월등하다. 일반적으로 서울대학교 입학생 3명 가운데 2명은 수도권 학생들이고 서울대 입학생 가운데 12% 정도가 서울 강남 출신이란 통계가 있다. 서울 강남 소재 고등학생이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생 가운데 3% 정도라고 하니까 비율적으로 평균보다 약 4배 더 많은 숫자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역균형을 포함한 다양한 수시전형 방식 이외에 성적 위주로 뽑는 정시에서는 강남3구의 비중이 훨씬 늘어난다. 2024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25.6%가 강남3구 출신 학생이었다. 수도권으로 확대하면 79%로 10명 중 8명이 수도권 학생이 된다.

다양한 방식의 과외와 고급형 학원 등 돈을 들인 만큼 성과를 거둔 결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지방은 지방을 배려하는 수시전형 외에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SKY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할 정도로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4학년도 서울대학교 합격자 수를 보면 서울이 1344명, 경기도가 919명인데 반해 강원도 51명, 경상북도 94명, 전라북도 60명 수준이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입학정원이 3472명이었으니까 서울하고 경기도를 합한 2263명이 전체의 65.2%를 차지한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강남 아파트 59㎡가 50억원 넘어가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황당하지만 오죽했으면 이창용 총재가 명문대학교 입학생을 지역별 할당제를 해야 강남 집값이 잡힐 것이라고 했을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아들이 공부를 덜 해도 폼나게 살 수 있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수능에서 한 문제만을 틀리고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합격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결국 아들 서울대학교 입학을 위해 강남으로 주소를 옮기는 등 일반 엄마들처럼 맹모삼천 한 현실은 이 시대의 되짚어봐야 할 자화상인 것 같아 입맛이 쓰기도 한 대목이다.

과거 고등학교를 시험으로 들어가고 대학교 본고사가 있던 시절에는 지방에 명문 고등학교들이 있었다. 부산의 경남고와 부산고, 경북의 경북고, 경남의 진주고, 전남의 광주일고와 광주고, 전북의 전주고, 충청도의 대전고, 강원도의 춘천제일고 등 지역별 도시별 명문고등학교가 있어서 지방에서도 서울대학교를 비롯해서 서울 명문대학교에 많이 들어갔다.

당시에는 서울이 명문대학교 외에는 지역 대학교를 오히려 선호했다. 그래서 지역별로 명문대학이 있었고 지역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인재를 배출했다.

그러던 것이 서울 쏠림 현상이 급속도로 벌어지면서 인서울 그다음 지방대 순서가 돼버렸다. 지방 학생들이 인서울 유학을 올경우 학자금을 제외해도 한달에 최소 200만원 정도의 생활비와 용돈이 들어간다. 일년이면 학자금 외에 2400만원이 추가되는데, 서민 가정에서 쉽지 않은 비용이다.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이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서울대학교를 전국에 10개 만든다는 허무맹랑한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 오너도 아들 서울대학교 보내겠다고 강남구 대치동으로 주소를 이전할 정도인데 돈 없는 서민들 마음은 어떻겠는가?

부동산정책과 입시대책이 맞물린 것 같아서 더 답답한 세태를 느낀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