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진웅이 지난 8월 15일 80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KBS 화면

배우 조진웅이 청소년 시절 저지른 범죄가 발각되면서 사실상 연예계에서 퇴출됐습니다. 조진웅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너희는 잘 살았냐?"며 반박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을 동원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만 더럽냐? 너도 더럽잖아!"라는 물타기와 비슷한 수법입니다.

조진웅의 어린 시절 잘못과 관련해 뭐라고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조진웅에게 진짜 화가 나는 것은 과거의 전력을 숨기고 온갖 '정의의 사도, 민주주의의 투사'로 자기 이미지를 포장했다는 점입니다.

조진웅은 올해 광복 80주년 8.15 행사에 나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했습니다.조진웅은 이날 힘찬 목소리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라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습니다. (고귀한 태극기 앞에 전과자인 이재명대통령과 조진웅이 함께 서 있었으니 ㅠㅠㅠ) 조진웅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영상을 공개하며 "비상계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직언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이 배우로서 김구 역할, 홍범도 역할을 하다 보니 자신이 마치 독립투사나 된 것처럼 행동했던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좌파들의 '진실은 창조된다'는 주장을 생각해볼까 합니다. '진실은 창조된다'는 건 좌파들이 매우 좋아하는 신영복이라는 인물의 주장입니다.

다음은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진실은 창조된다”라는 주장에서 연상되는 조지 오웰의 『1984』 >

사실(事實)은 ‘시간상으로나 공간상 실제로 있었던 존재 또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환상(幻想)이나 허구(虛構)의 반대편에 있는 단어입니다.

진실(眞實)은 사실 가운데 ‘거짓이 없는 사실’을 말하므로 사실보다 더 범위가 좁습니다. 진실(truth)의 반대말은 거짓(falsity, dishonesty)입니다.

자연과학에서 진실로 인정받으려면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24년 논란이 된 ‘초전도체 LK-99’도 엄격한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함으로써 진실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사회과학에서도 진실로 인정받으려면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그렇지만 실험과 관찰의 대상이 사람이다 보니 다소 허술(?)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더 커지면서 부의 불평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는 “왜 불평등이 생기고 왜 소수가 지배하는 경향이 생기는지에 관한 피게티의 설명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불평등을 해소할 치료법으로 그가 내놓은 방안(글로벌 자본세)은 순진하고 심지어 공상적이기도 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피게티는 한국에서도 한때 인기가 대단했으나, 데이터 오류와 ‘미래에 관한 순진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인해 요즘은 거의 잊힌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신영복은 진실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요? 신영복은 『담론』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세계 인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경(詩經)에 나온) 맹강녀(孟姜女) 전설을 소개했습니다. 맹강녀는 만리장성 축조에 강제 동원되어 몇 년째 소식이 없는 남편을 찾아갑니다. 겨울옷 한 벌을 지어서 먼 길을 찾아왔지만, 남편은 이미 죽어 시체마저 찾을 길 없습니다. 당시에는 시체를 성채 속에 함께 쌓아 버렸다고 합니다. 맹강녀는 성채 앞에 옷을 바치고 사흘 밤낮을 통곡했습니다. 드디어 성채가 무너지고 시골(尸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옷을 입혀서 곱게 장례 지낸 다음 맹강녀는 노룡두(老龍頭)에 올라 바다에 투신합니다. 맹강녀의 전설이 사실 일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쪽이 진실한가’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설 쪽이 훨씬 더 진실합니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레고 조각을 모으면 진실이 된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레고 조각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요?

신영복은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입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합니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진실이 사실보다 더 정직한 세계 인식입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신영복은 사실과 진실이란 단어를 묘하게 비트는데, 특히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라는 표현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이건 공부를 통해 세상을 묘하게 비틀라는 얘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은 창피한 내용은 빼고 무용담이나 미담을 담아 넣고, 연구 논문을 쓰는 사람은 데이터를 조작해도 좋고, 정치인은 거짓 공약을 마구 쏟아내도 괜찮다는 이야기일까요?

전 세계적으로 ‘도덕적 하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도덕적 하향의 문제가 심각한데, 각국에서 각종 범죄나 구설에 휘말린 정치인들이 선거에 당선됨으로 사실상 면책을 받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의혹의 대상이라는 사실 자체가 불명예였는데, 지금은 잘못한 증거가 분명한데도 오리발을 내밀기 일쑤입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고 명백한 사실을 조작이라고 우기는 세상입니다. 신영복이 살아있다면 이러한 작태를 ‘진실의 창조’라고 했을까요?...(중략)

조지 오웰의 『1984』에는 가상의 전체주의 독재국가인 오세아니아가 나옵니다. 오세아니아를 통치하는 당은 권력 유지를 위해 가상의 인물인 ‘빅 브라더’를 만듭니다. 오세아니아는 개인의 자유가 철저하게 억압되는 사회로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부(Ministry of Truth)에서 일합니다. 진실부는 정보의 유통을 담당하는 정부의 한 부서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당의 목표에 맞춰 현재에 맞지 않는 과거를 끊임없이 조작합니다. 각종 문서, 신문, 서적, 녹음, 영화 등 과거의 모든 기록을 조작하고 바꿉니다. ‘진실의 창조’에 매진하는 곳이 바로 진실부입니다. 옛소련과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은 일당 독재를 위해 끊임없이 진실을 감추고 조작했는데, 『1984』는 북한과 옛소련에서는 금서(禁書)였습니다.

21세기가 벌써 4분의 1가량 흐른 지금은 ‘탈진실(Post Truth)’ 시대로 불립니다. 탈진실 현상은 사실 추구와 합리성이 무시되고, 조작된 거짓 정보가 사실의 자리를 위협하거나 대체하는 현실을 의미합니다. 신영복의 ‘진실’에 대한 인식은 마치 ‘탈진실의 옹호’처럼 느껴지는데, 신영복의 영향을 받은 좌파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처럼 ‘엉터리 진실의 색안경’으로 보고 판단하고 이끌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아하, 온갖 정의로운 척 하던 배우 정우성도 혼외자 얘기로 관심을 끌기도 했군요 ㅎㅎㅎ)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