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당시 퓰리처상을 받은 탄 닉 웃의 사진. 사진=AP/연합뉴스

베트남 전쟁은 그때까지 가장 철저하게 취재된 전쟁이었다. 많은 신문기자와 방송기자, 사진기자, 그리고 프리랜서들이 사이공에 모여서 취재 경쟁을 벌였다. 베트남 전쟁은 퓰리처상(償)의 영예를 안긴 두 장의 사진을 남겼다.

하나는 1968년 북베트남의 구정 대공세 때 사이공 경찰국장인 로안 장군이 베트콩 암살자를 권총으로 처형하는 장면을 담은 AP의 에디 애담스의 사진이다. 사이공이 함락된 후 미국으로 탈출한 로안은 처형자이고 살인자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가 처형한 베트콩은 악명 높은 암살자로, 그 날도 남베트남군 장교 가족을 살해하고 도주 중 잡혔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로안 장군과 사이공 정부가 마치 나치주의자 같은 인상을 주어서 반전 운동에 불을 붙였다.

사진을 찍은 애담스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그 후 가책에 시달렸다. 1998년 초, 애담스는 로안이 버지니아에서 암 투병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용서를 구했다. 병석의 로안은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답했고 그 해 연말 사망했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하며 번민하고 살았던 애담스도 2004년에 사망했다.

베트남 전쟁의 비극성을 잘 보여준 또 다른 사진은 네이팜 폭격으로 화상을 입고 벌거벗은 채 달려오는 소녀를 찍은 AP의 사진이다.

1972년 북베트남군의 춘계 대공세 때 사이공으로 통하는 안록 부근에서 남베트남 공군기가 좌표를 잘못 잡아서 민간인 지역에 네이팜을 투하했다. 다수의 민간인이 죽고 화상을 입었는데, 어린이들의 희생이 많았다. 이 때 붙 붙은 옷을 벗어버리고 벗은 채로 울면서 큰 길을 달려 나오는 소녀를 찍은 AP의 사진은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고 TV 메인 뉴스에 톱으로 나왔다.

이 사진을 찍은 AP의 베트남인 사진기자 닉 웃은 퓰리처상을 받고 유명인사가 됐다. 그런데, 엊그제 넷플릭스에 올라온 도큐먼트 <The Stringer>(프리랜서 기자를 의미)에서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닉 웃(Nick Ut)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는 탐사 보도 결과를 내보냈다. 도큐먼트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프리랜서 사진사로 남베트남군을 취재하던 응우엔 응헤(Nguyễn Thành Nghệ)라는 것이다.

이 도큐먼트도 프리랜서 제작자가 만든 것을 넷플릭스가 사서 올린 것인데, 제작자는 당시 AP 사이공 지국의 사진 에디터인 칼 로빈슨으로부터 자신이 죽기 전에 50년 전에 일어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했다. 로빈슨은 그때 달려오는 소녀 일행을 찍은 응우엔 응헤는 사진 필름을 AP에 넘기고 20달러를 받았으며, 당시 AP의 사진영상 부장인 호스트 파스는 사진을 본사에 넘기면서 AP 소속 사진사 닉 웃의 이름을 올려서 그렇게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AP 사이공 지국은 응헤가 찍은 사진을 한 장 인화해서 응헤에게 주었는데, 그의 부인이 참혹하다고 해서 찢어 버렸기 때문에 응헤는 자신이 찍었다는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기 전에 닉 웃과 응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은 미국으로 가는 수송기를 탈 수 있었다. 당시 9살로 화상을 입었던 소녀 판 킴 푸크(Phan Thị Kim Phúc)도 병원에서 회복해서 역시 미국으로 가는 수송기를 탈 수 있었다. 미국에 정착한 닉 웃은 퓰리처 상을 타고 책을 내고 유명해졌으나 응헤와 그의 가족은 가슴 속에 한을 품고 살아왔다. 그러다가 이제 얼마 살 날이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칼 로빈슨이 이 문제를 들고 나와서 프리랜서 제작자가 취재에 들어간 것이다.

도큐 제작자는 당시 현장을 찍은 모든 사진과 영상을 수집해서 전문기관에 분석을 맡겼다. 그 결론은 명료했다. 당시 닉 웃은 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으며, 응혜가 사진을 찍을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사진은 닉 웃이 갖고 있던 라이카 카메라가 아닌 응헤가 갖고 있던 50미리 렌즈가 달린 펜택스 카메라로 찍었음을 밝혀냈다. 그야말로 21세기의 3차원 디지털 기술이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여기에 대해 AP는 종전의 입장을 지키고 있으면서도 논란이 있음을 인정했다. 반면에 보도사진 국제연맹은 이 사진의 인격 저작권이 닉 웃에 있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 사람은 50년 동안 자신이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을 자기가 찍었다고 말하지 못했고, 또 한 사람은 50년 동안 자기가 찍지 않은 사진으로 퓰리처 상을 타고 유명인사로 살았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레거시 미디어의 한계이다. 이런 사안 같으면 NBC 같은 네트워크 TV의 탐사보도가 파헤쳤어야 하지만 그런 레거시 미디어는 이제 돈도 없고 역량도 없다. 더구나 베트남 전쟁 당시에 AP는 물론이고 네트워크 TV도 프리랜서의 사진을 적당히 이용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한 진실을 파헤칠 수 없었다. 여하튼,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임을 보여주었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