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에 참석한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지금 와서 아래와 같은 칼럼을 쓰면 조금은 화끈거리지 않은지 모르겠다.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물론 윤석열을 말하는데, 필자는 그럴 사람이 민주당에도 많다고 한다.

12월 4일자 [양상훈 칼럼] '감옥 아닌 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을 읽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신문사에는 일반 대중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가 넘쳐흐른다. 나 자신도 한때 경험해 보아서 안다. 그런데, 나 같이 은퇴한 교수이고 국회를 떠난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의 정무수석과 비서실장, 국정원장을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하고, 또 박근혜가 임명한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무리하게 수사하고 기소한 검찰총장을 바로 박근헤 대통령이 몸담았던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영입하는 게 정상이었는지 묻고 싶다. 만일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면 할 말이 없다. 윤석열을 둘러싼 개운치 않은 소문은 파다했는데, 나 같은 국외자도 접했던 소문을 신문사에 앉아 있으면서 몰랐다면 부끄럽지 않은가...

또 하나는 선출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을 별안간 대통령감으로 치켜 세우는 정당이나 언론이 도무지 세상에 어디 있는가? 20세기 미국에선 2차 대전에서 유럽 전선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가 선출직 경험이 없이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있으니, 한국의 보수 정당/세력은 윤석열이 아이젠하워 정도 되는 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윤석열은 스스로 대통령감으로 부상하지 않았다. 윤석열은 전형적인 ‘밴드웨곤 정치’로 부상한 인물이다. 그러니 만큼 ‘밴드웨곤 정치’를 조성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반성해야 하는데, 이들은 말이 없다. 윤석열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파괴한 것이 한국의 의료시스템이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지지한 정당은 어느 정당이고 어느 언론이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20여 명이 어제 윤석열의 계엄에 대해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그들은 사과를 할 만한 이유도 없고 또 그럴만한 ‘존재’ 자체가 못 된다. 작년 12월 중순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는데, 미쳐 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옮겨 보았다.

밴드웨곤 정치 (2024년 12월 15일)

‘밴드웨곤 효과(Bandwagon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어느 집단이 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시끄럽게 연주를 하면서 떠들면 그것을 보고 대중이 현혹돼서 따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현대적 의미에선 일단의 그룹이 특정한 인물이나 아젠다를 띠우면 일반인들이 그렇게 조성된 분위기에 휩쓸리는 현상을 말한다. 윤석열은 대표적으로 이 같은 밴드웨곤 효과에 힘입어 대통령 후보에 오른 경우다. 일단 보수라고 자칭하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면 일반 유권자들은 그 사람을 지지하든가 아니하든가 밖에 선택지가 없다. 그렇게 해서 윤석열이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가 되고 본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해서 대통령이 됐다.

윤석열은 검찰총장을 그만두자 대선 후보로 급작하게 부상했다. 그래도 나는 설마하니 국민의힘이 그를 대선 후보로 영입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 비서실장, 정무수석,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절의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무리하게 기소했던 사람을 어떻게 대선 후보로 영입할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국민의힘은 그를 영입해서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이런 과정은 전형적인 밴드웨곤 정치(Bandwagon politics)였다. 흔히 보수 언론이라고 부르는 매체와 경제신문, 그리고 고만고만한 마이너 언론이 밴드왜곤 행진에 앞장섰다. 대다수 언론이 그런 행진에 앞장섰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언론에 그러한 행진이 가능하도록 소재를 제공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일 먼저 윤석열의 대학원 지도교수였다는 송상현 서울대 석좌교수가 있다. 고하 송진우의 손자(송진우는 양자를 들였는데, 그 양자가 송 교수의 부친이다.)이기도 한 송상현 교수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을 구성했고 월간 조선과 월간 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을 극찬했다. (네이버 검색에 ‘송상현 윤석열’을 치면 인터뷰 기사가 줄줄히 나온다.)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대선 후보로 여론조사에 등장하자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던 김종인 박사는 ‘별의 순간’이 윤석열에 다가 왔다고 언급해서 언론에 크게 났다. 송진우의 손자인 송상현과 김병로의 손자인 김종인이 윤석열을 대선 주자로 부상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윤석열의 부친이 은퇴한 경제학 교수였다는 사실도 윤석열을 부상시키는데 역할을 했다. 윤석열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때 국민의힘 대표는 이준석이었고, 이준석은 김종인이 후견인임은 모두들 알 것이다.

무슨 근거인지 윤석열의 멘토라고 불리는 신평 변호사가 윤석열을 훌륭한 대통령감이라고 여기저기 인터뷰하고 페북에 글을 쓰자 그의 언급을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 적어 기사로 만들어 냈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신평 같은 사람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서 기사화한 기자들은 자신들에게 언론인의 자질이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이렇게 해서 윤석열이 별안간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등장했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유권자들은 정당을 보고 투표를 했다.

요새 며칠 동안 윤석열이 별안간 등장한 정치초보라서 이런 대형 사고를 쳤다는 칼럼이 지면을 장식하는데, 윤석열을 정치판에 등장시킨 장본인은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밴드웨곤이 되어서 윤석열을 별안간 대선 후보로 등장시킨 것이다. 지금 와서 윤석열이 그런 사람인줄 몰랐다고 변명을 하는데, 그런 변명은 자체가 옹색하지 않는가. 홍준표가 후보가 되면 본선에서 진다고 생각해서 윤석열을 띠웠다고도 이야기하는데, 박근혜 탄핵 후 몰락 위기에 처해 있던 정당의 대선 후보로 나와서 예상을 깨고 2위를 한 당내 정치인을 그렇게 묵살했다는 사실도 경이롭다. 무엇보다 홍준표는 30년 전 YS 정부 검사 시절 김종인을 동화은행 사건으로 직접 수사했기 때문에, 김종인-이준석은 그런 악연이 있는 사람을 대선 후보로 만들 생각이 애당초 없었다. 이제는 모두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도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서 몇 자 적어 보았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