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취업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취업정보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정년연장을 65세로 늘리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기업들은 입법과는 별도로 시니어들의 숙련 노하우 필요에 따른 추가 채용 사례가 늘고 있어 시장에서는 이미 정년 연장이나 재취업 상황이 이어지는 등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년연장으로 인해 가장 큰 부담을 지어야 할 기업들의 목소리가 별로 반영이 되지 않아 자칫 사회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지가 우려되기도 하다.

현재 퇴직자들은 현업에서 배제돼왔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정년연장 노력과 기업들의 재취업 바람이 앞으로 취업시장과 기업의 분위기를 상당히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CXO연구소의 ‘2025년 100대 기업 직원의 임원 승진 가능성 분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00대 기업 전체 직원 수는 86만1076명인데, 이 중 미등기 임원 수는 7028명으로 나타났다. 임원 1인 당 직원 수는 평균 122.5명인 셈으로 단순 비교로 대기업에서 임원 될 확율은 0.82%에 그치는 수준이다.

임원이 될 확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나머지 99%는 구조조정, 희망퇴직, 정년퇴직 등으로 한참 일할 나이에 현업에서 배제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각자 개인들도 건강나이가 한창인 상황에서 현업에서 배제되면서 중요한 자원이 낭비되는 현상이 벌어짐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임원이 될 확률은 업종 간에도 큰 차이가 있는데, 임원 1인 당 직원 수를 비교하면 증권업이 38.9명, 무역 53.7명, 보험 75.8명, 석유화학 76.1명, 식품 97.3명, 건설 98.1명 순으로 비교적 임원 승진 확률이 높은 편이다. 반면 유통업은 330.5명 당 1명 꼴로 가장 치열한 분야다. 에너지 188.2명, 조선중공업 166.2명, 자동차 147.1명, 운송 140.3명, 전자 138.6명, 금속철강 114.7명, 정보통신 102.5명 등으로 임원승진 확률이 낮은 만큼 중도 퇴직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통계에서 보듯이 그동안 우리나라 산업경쟁력을 키워왔고, 앞으로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니어들의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한 부분인 제조업 분야에서의 임원 승진 비율이 떨어지고 그만큼 현업에서 밀리는 퇴직자들이 많은 분야가 됐다.

건설현장이나 조선 등 제조 공장에서 많은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는데, 상당수 원인은 부주의 등 안전 불감증과 안전소홀 등이다.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시니어들은 현장을 한번 살펴만 봐도 위험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제조업 중심으로 안전을 비롯해 재무, 조립, 연구 등 분야에서 70대 이상의 부장들을 정년연장이나 재취업 방식으로 계속 고용을 하고 있다.

그들의 다져진 노하우를 안전은 물론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위협요인을 사전에 방지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회적인 공감대나 정치권에서의 움직임, 그리고 기업에서의 필요성 측면에서 정년연장에 대한 막연한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실질적인 사회적인 도움이 될 방안을 만들 때가 된 것이다.

이미 금융권에서는 많은 위로금과 함께 희망퇴직한 시니어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을 하는 소위 ‘베테랑 퇴직인력 재고용’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11월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5년간 퇴직한 직원을 재채용한 경우는 5000건이 넘었다. 매년 1000명가량의 퇴직자를 다시 채용하며 필요한 곳에 배치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10월까지 4대 은행에서 재채용된 숫자가 946명으로 작년(876명)을 이미 넘어설 정도로 규모가 확대되는 추세다.

금융권 일선 현장에서는 인사적체를 막고 청년과 시니어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조직 관리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윈윈’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퇴직자 재고용을 확대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들 은행에서 시니어들이 활약하는 분야는 주로 퇴직연금, 프라이빗웰스매니지먼트, 기업금융, 준법감시, 자금세탁방지, 금융사기 등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분야다.

자칫 경험 부족으로 인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만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시니어의 한수가 필요해 은행들이 서둘러 이들 희망퇴직자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희망퇴직자들은 위로금으로 수억원을 받은 상황이어서 재취업에 따른 사회적 비난도 있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이들의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시니어 채용을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권의 바람은 머지 않아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년연장 정부안이 이러한 시니어 재고용 실태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정년연장이 정년과 국민연금 지급 시기의 공백을 메우고 시니어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화합을 할 수 있는 서로의 필요를 공유하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현재 정년이 65세인데, 60세에서 정년을 5년 늘이기 위해 기업들 스스로가 적절한 대책을 만드는데 10년의 캠페인 기간을 겪었다. 현재는 70세까지 법적으로 정년을 연장시키기 위해 정부가 기업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앞으로 최소 5년 이상을 기업들이 준비하고 대안을 만들 시간을 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년연장과 관련해서 기업들이 스스로 적절한 대책을 만들기에 앞서 정부가 먼저 법안을 만들고 적용시키는 탑다운 방법을 택하고 있다. 민주노총 중심의 노조의 요구보다는 실제 이해당사자인 기업들이 적절한 대안을 내놓고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유도하는 것이 부작용을 줄이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년연장에서 또 하나의 걸림돌은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삭감 거부 요구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할 것이다. 만일 정년연장으로 인해 임금이 대폭 상승해 기업이 망하면 그 피해는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기업 나름의 자율성이 필요하다. 정년연장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 기업, 노조, 직원 모두의 입장을 맞춰야 하겠지만, 현재 죄인처럼 가장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정작 돈을 지불하는 기업의 의견이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할 것이다.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주도가 돼야 하는데 주객이 바뀔 경우 상생은 사라지고 상극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비용을 부담하는 기업이 좋은 해결책을 내놓도록 지도와 훈수에 그쳐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