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들어 민생회복 소비쿠폰 얘산을 13조원 지출했다. 내년에는 지역사랑상품권 등 민생 관련 예산이 올해 17조6000억원보다 49% 늘어난 26조2000억원 편성됐다. 퍼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DB
옛말에도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고 했다. 양잿물은 가성소다이다. 부식성이 강한 독극물로 많이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먹겠다는 것은 공짜에 대한 인간의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준다.
톨스토이의 러시아 민화집에 '인간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바흠이란 이름의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 그는 많은 땅을 갖고 싶었으나 늘 부족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바시키르’라는 마을에 가면 1000루블을 내고 출발해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서 자기 땅이라고 표시만 하면 그 땅 모두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마을로 갔다. 단 조건은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한 장소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땅도 가질 수 없고 1000루블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흠은 촌장에게 100루블을 내고 아침 일찍이 서둘러 떠났고, 눈 앞의 비옥한 경작지에 이끌려 출발지에서 자꾸만 멀리 갔다. 욕심을 억누르며 옆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이미 출발지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다. 농부는 해가 지기 전에 출발지로 도착하기 위해 기를 쓰고 내달리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고 만다. 그가 마지막으로 묻힌 무덤은 한 평도 되지 않은 작은 땅이었다.
공짜는 사람을 망치고, 나라를 망친다. 시식 코너의 음식도 더 많은 소비자를 유혹하려는 미끼이고, 화장품을 사면 받을 수 있는 공짜 마사지도 사실 화장품 가격에 포함돼 있다. '술을 마시면 주는 공짜 점심'도 결국 술값에 포함된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 중 하나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가난한 사람의 진짜 문제에 대해 이렇게 갈파했다.
“돈을 주는 것보다 일할 기회를 주는 게 돕는 것이다. 일은 하기 싫고 놀고 먹으려고 하는 사람한테 밥 굶는다고 매달 10만원 20만원 줘봐! 그건 그 사람한테 독약 주는 거다 이 말이지. 일할 기회를 줘서 그 사람이 열심히 돈을 벌어 집을 사면 그걸 본 사람들도 ‘나도 저래 하면 집을 살 수 있겠네”라고 희망을 갖는 거지. 이게 도와주는 거야."
그런데 대한민국 이재명 정부는 국민에게 '(이건희 회장 표현에 따르면) 독약'을 마구 주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인 2026년도 예산안은 명실상부 ‘슈퍼예산’이다. 무려 24조 원의 ‘이재명표 지역사랑상품권’, 200만 원을 넘는 ‘생계급여 인상’ 등등... 표면적으로 서민 지원을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는 세금을 공짜로 뿌리는 정치적 지지를 겨냥한 퍼주기식의 전형적인 포퓰리즘인 퍼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AI(인공지능)만 28차례 언급하면서, “정부의 내년 예산안은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 첫 번째 예산안”이라며 “내년 AI 분야 예산으로 올해보다 3배가량 많은 10조1000억원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내년 예산이 역대 최대 폭(54조7000억원)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 “‘AI 대전환’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르다. 내년 AI 예산 규모가 올해에만 13조원에 달했던 민생 회복 소비 쿠폰 재원 등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보다 더 적다. 그나마 AI 사업들이 수십 개로 쪼개져 실질 효과는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예산을 보면 이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등의 발행을 지원하는 ‘민생·사회연대경제’ 예산으로도 올해(17조6000억원)보다 49%나 늘어난 26조2000억원이 내년에 편성됐다. 이는 AI 예산의 2.5배에 달한다.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주장해온 기본소득을 일부 지역에서 추진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 전국에 서울대 10개를 만들겠다며 추진 중인 ‘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 사업’ 등이 포함된 ‘지방 거점 성장’ 예산으로도 올해(19조원)보다 54% 증가한 29조2000억원이 편성됐다. AI 예산의 3배에 가깝다. AI를 앞세우면서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을 대거 편성한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어디에 얼만큼 뿌리느냐’보다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 것이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공짜돈이 아니라 일자리가 필요한 것. 복지가 아무리 필수불가결하더라도 생산 없이 분배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국 미래를 잠식하는 달콤한 독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국민 삶을 진정 책임지려면, 당장의 반짝 인기보다 재정 건전성과 성장의 기반을 지키는 용기가 우선이라는 점,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이다.
기업 경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국부를 창출한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진정한 도움의 의미를 되새길 때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