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0.75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저수준이고 현재 89개 시.군.구가 행정안전부로부터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2021.10)되었다. 도시의 인구 감소요인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크게 기존 산업의 쇠퇴로 인한 인구유출과 출생률이 감소해서 축소도시화하는 경우가 있다.

인구수는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총 가구수는 오히려 한동안 계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을 지연효과lag effect라고 한다. 이는 인구의 변화가 가구 수의 변화로 즉각 이어지지 않고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구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구수가 증가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가구 분화'household fission 현상 때문이다. 기존의 대가족 또는 핵가족 형태가 해체되면서 가구원 수가 적은 새로운 가구로 나뉘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미혼, 비혼, 만혼, 이혼, 사별 등으로 인해 혼자 사는 1인 가구 증가가 그 예이다. 인구수가 먼저 정점을 찍고 감소하기 시작해도, 1인가구 증가 등 가구 분화의 추세가 강하게 지속되기 때문에 총 가구수는 한동안 더 증가하게 된다.

주택의 수요는 인구수 보다는 가구수에 영향을 받는다. 주택 시장의 집은 '인구'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로 거주하고 수요가 발생하므로, 가구수가 늘어나는 기간 동안에는 주택 수요가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이것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지연되는 주요 이유이다.

궁극적으로는 가구 분화가 한계에 다다르고 인구 감소 속도가 가팔라지면, 결국 가구수도 감소세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구수가 증가하는 지연효과는 부동산 시장에 매우 복잡하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연효과로 인해 가구수가 증가하는 시기에는 인구수가 줄어도 가구수가 늘어나면, 주택을 필요로 하는 단위가 증가하게 된다. 집은 인구 단위가 아닌 가구 단위로 소비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주택에 대한 총 수요가 크게 감소하지 않고 유지되거나 오히려 증가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인구 감소로 인한 장기적인 집값 하락 압력을 상당 기간 동안 상쇄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금까지는 많은 나라에서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구수는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빈집이나 버려진 집이 과도하게 생겨나지는 않았다. 이같은 지연효과lag effect는 인구 감소가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부터 상당 지역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축소되는 세계, Alan Mallach, 2024, 사이, 176p).

하지만 가구수가 느리긴 해도 지속적으로 증가한 덕에 빈집 증가세가 억제됐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을 훨씬 넘어설 정도의 과도한 신규 주택 건설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됐다. 가구수는 감소가 시작되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감소세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미리 변화의 토대를 마련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가 훨씬 더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축소되는 세계, Alan Mallach, 2024, 사이, 176p).

가구 분화의 핵심인 1인 가구와 2인 가구의 증가는 주택 시장의 트렌드를 1~2인 가구 증가로 인해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주택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과거 3~4인 가구 중심의 전용 84㎡의 국민평형 선호가 약해지고, 소형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의 경쟁률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청년층, 노년층 등의 1인 가구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거나 불안정하여 자가보다는 임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임대차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특히 소형 주택의 월세 가격 불안정성이 높아질 수 있다. 직주근접을 중시하는 청년층과 생활 편의성을 중시하는 노년층 1인 가구의 영향으로 도심 및 역세권 집중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지역별 양극화가 더욱 심해져, 수도권이나 대도시 도심 지역의 부동산 가치는 견고하게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반면, 지방 외곽 지역은 침체가 가속화된다.

장기적으로 가구 분화의 속도가 둔화되고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지는 시점이 오면 가구수 역시 정점을 찍고 감소하게 되며 주택 수요의 총량이 명백하게 감소하면서 다음과 같은 장기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가구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주택 수요의 기반 자체가 약해져 장기적인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과거 대가족 중심의 대형 평형은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어 빈집 문제가 심화되고, 재고 주택의 가치가 빠르게 하락할 위험이 있다. 인프라, 일자리, 교통이 우수한 핵심 입지의 희소성은 더욱 커져 가치 방어가 가능하지만, 비핵심 지역은 수요 기반 자체가 붕괴되며 급격한 침체를 겪을 수 있다.

다음 표는 서울시의 최근 10년간의 인구 변화와 가구수 변화를 정리한 표이다(서울 열린데이터 광장).

위 표를 이용하여 AI에게 서울시 가구수가 줄어드는 시점을 예측해 달라고 하니 다음과 같은 답을 했다. 물론 가구수 증가 항목은 넣지 않고 돌려보았다.

『제공된 데이터(2015년 ~ 2024년)내에서는 가구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점을 찍고 하락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2024년 이후로 예상된다. 다만, 2020년 가구수 증가가 85,901로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인 후, 2021년부터는 증가 폭이 2024년 17,843명까지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추세대로라면 2025년 또는 그 직후에 가구수 증가세가 멈추고 하락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할 수 있다.』

물론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가구추계(시도편) : 2022~2052년(통계청 2024.12.12. 보도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의 총 가구 수는 2038년에 정점(427만 6천 가구 추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가구 수가 증가에서 하락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그 다음 해인 2039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 2022~2052년(2024.12.12 보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장래인구는 2020년(51,829,136명)을 고점으로 감소 추세로 전환하였고, 일반가구 최고 정점은 2041년에 2,437만 2천 가구로 예상되며 2042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요약하자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구수가 증가하는 지연효과는 단기적으로 주택 시장의 붕괴를 막고 소형 주택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지만, 가구수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게 되면 주택가격의 하락압력도 커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호지역과 비선호지역의 주택가격 차이는 더 커질 우려가 있게 된다.

AI의 분석대로라면 2026년부터, 통계청 자료에 의하더라도 2039년이면 서울의 가구수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린벨트를 풀고 서울근교의 논과 밭을 갈아엎고 신규주택을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맞는 지 의문이다.

지금 주택시장의 가격 급등은 심리적 요인에 의한 초과 가수요가 그 원인이다. 주택공급론자들의 주장처럼 공급부족은 서울의 절대적 주택량 보다는 국지적인 선호지역의 공급부족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국지적인 초과 가수요는 기존주택의 유동화를 통한 단기적 주택공급으로 대처하면 된다.

인구감소로 인한 축소시대에 진입한 지금 그나마 남아있는 지연효과가 다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물론 서울의 집값이 싸진다면 다시 서울의 인구와 가구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재원을 균형 발전에 투입하여 국토의 균형적 축소를 도모해야 한다.

이젠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방어 보다는 지방의 집값 붕괴에 대비하고, 선호지역의 집값 방어 보다는 비선호지역의 집값 붕괴에 대비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 서울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이 역대급으로 축소되고 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