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사장


"부동산과 정치(2023, 오월의봄)"라는 동명의 김수현 세종대 교수님(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책이 있다. 해당 책은 저자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재직시 경험했던 부동산 가격의 폭등사태에 대해 원인과 회한 등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다.

최근의 부동산 가격 폭등과 비견해 보면 참고할 수도 있겠다 싶어 해당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급적 원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고, 일부분만 발췌하다 보니 저자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우려가 있다. 가능하면 위 책을 정독하길 권장한다.

원래 주택은 생활필수품이면서 투자 수단이라는 양면성이 있었는데, 2000년대부터 주택의 금융화 현상이 확산되면서 상품 성격이 더 강화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제때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부동산 과잉 수요를 유발하는 금융화 현상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275p

그런 점에서 부동산 문제의 핵심 요인과 부차 요인을 혼동하면 안된다. 핵심은 넘치는 돈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이며, 공급, 세제, 그리고 청약제도 등 한국적인 제도들은 부차적인 요인이다. /276p

부동산은 수요는 빠르게 변하는데 반해, 공급은 더디기만 하다. 이 때문에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부동산 시장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적어도 책임있는 전문가, 언론, 정당이라면, 공급 부족 공포론을 조장하는 데 동참해서는 안된다. 공포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책임있는 사람들이라면 사회 전체가 공급을 늘리고 있으므로 공포심을 갖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다르게 말해야 한다. /280

부동산 경기에 따라 당연히 부동산 세금, 금융 대출, 청약제도 등을 강화 또는 완화해야 한다. 다만 보유세를 경기에 따라 바꾸는 것은 집값 안정이나 부양효과도 없이 세금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다. 대신 취득세는 경기에 따라 강온으로 바꿀 수 있다./281

부동산은 일단 상승 사이클이든, 하강 사이클이든 흐름에 들어가면 좀체 방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른바 대세 상승과 하락 과정을 우리는 몇 차례나 경험했고 이는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장 안정에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부동산 문제는 정치적 현안이 되고 만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 전문가, 시민단체까지 가세해서 확실한 처방이 있는데도 정부가 안 하고 있다고 질타하는 대열에 서게 된다. 단골메뉴는 보유세다. 원가공개나 반값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재건축 규제를 모두 풀어서 원하는 곳에 집이 공급되게 하라거나, 수백만채를 공급하겠다는 물량 경쟁도 격화된다.

그러나 이런 포퓰리즘들은 그 당시는 현란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본질은 해결하지 못한다.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시장에도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특히 소수의 수혜 계층을 과대 포장해서 마치 전 국민에게 혜택이 갈 것처럼 현혹할 뿐이다. 그럼에도 부동산 이상주의자, 선동주의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283p

집값이 올라 민심이 흉흉해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얘기들이 있다. "이것만 하면 될 텐데, 그걸 안 해서 집값을 못잡는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시장에 그냥 맡겨두면' '보유세만 제대로 올리면' '반값 아파트만 많이 공급하면' 하는 식이다. 원가 공개만 해도 집값을 낮출 거라는 얘기도 있다. 인터넷 댓글 같은 데서는더 극단적인 해법들이 난무한다. "한 채 이상 집을 못 갖게 하라' "다주택자는 양도세 100%를 매겨야 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절대로 집값을 한 방에 잡거나 올릴 수 있는 비책은 없다. /256p

집값 급등기에는 모든 분야에서 수십 번의 대책을 내놓지만 효과는 더디고 온갖 회피수단만 기승을 부릴 뿐이다. 넘치는 돈들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는 도무지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급락기에는 종전 수요 규제를 모두 폐지해도 하락을 멈추지 않는다./257p

이미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동향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주택이 점점 더 투자 상품화되는 주택금융화 경향과 전 세계적인 유동성 상황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리 주택문제가 갖는 보편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285p

우리 정부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집값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해왔고, 가격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무리한 시장개입도 주저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는 민심을 달래는 차원에서, 또 시장과의 심리전 차원에서 집값, 특히 강남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약속이나 호언장담은 여지없이 헛말이 되고 만다. 전 세계 선진국중에서 정부 수반이 집값을 잡겠다고 얘기하거나 집값을 못잡았다고 사과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285-286p

정부는 정확한 시장 상황이나 정책 계획을 밝히는 등 필요한 일만 하게 하자. 시장에는 시장의 일이 있듯이, 정부는 자신들의 몫을 하면 된다. 형평성 있는 세제와 개발이익환수 체제만 작동한다면, 굳이 강남 아파트값에 전전긍긍하며 심리전을 펼 필요는 없다. 여기다 좋은 주택이 빨리 공급될 수 있도록 택지 공급과 도시계획 인센티브 관리만 하면 된다. 주거복지를 튼튼히 구축해서 주거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다./287p

아무튼 김수현 교수님이 분석한 문재인 정부시기 집값 상승요인으로는 세계적인 주택의 금융화와 동조화, 저금리와 코로나19로 인한 과잉유동성과 양적완화 등이 주된 원인이었고, 이에 대한 정책실패 요인으로 DSR의 조기시행과 부동산대출 규제를 강게 시행하지 못한점, 전세대출 등 유동성 통제를 하지 못한 점, 공급불안 심리를 조기에 진정시키지 못한 점, 정책리더십이 포퓰리즘에 흔들린 점 등을 들고 있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서울시의 잠실, 삼성, 대치, 청담으로 상징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및 재지정 소동을 기점으로 금리인하 기대감, 확장재정 기조, 서울과 수도권의 입주물량 급감,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 풍선효과 등으로 집값이 상승하였고, 초강력 대출 규제와 투기적 수요차단, 공급확대 강조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가격 상승 원인이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다른 측면이 있으나 10.15대책을 통하여 문재인 정부 당시 시행하지 못했던 부동산담보대출 한도 제한, DSR 시행, 전세대출 제한 등 초강력 유동성 통제와 재개발.재건축 완화, 도심지 주택공급과 공공주택 공급확대 등의 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부동산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에 따른 부작용이 따라 올 수 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 정부는 서민을 위한 공공주택의 안정적인 공급과 주거복지에 힘을 쏟고, 부동산 시장의 안정대책은 광역지방정부에 이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위 내용은 "부동산과 정치(김수현, 2023.9, 오월의 봄)"에서 내용을 발췌하여 작성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태도시공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