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민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비교한 적이 있었다.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투표를 할 때 미국 국민들은 정치인이 저지른 잘못이나 문제점에 대해 용서는 하는데 절대 잊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부분을 이해는 해서 용서는 할 수 있지만 과연 나라와 지역을 대표할 정치인으로서 다시 뽑아줘야 하는 지를 두고 판단할 때 그의 잘못을 절대 잊지 않고 투표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인의 잘못에 대해 절대로 용서를 하지 않고 죽일놈 살릴놈 욕을 하지만, 투표 때가 되면 모두 잊고 다시 그 사람을 뽑아준다면서 한국인은 용서는 하지 않는 대신 잘 잊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러한 비슷한 비교를 한 정신의학자가 있다. 미국 정신의학계의 유명한 뉴욕주립대 의과대학 종신교수를 지낸 사스(Thomas Szasz) 교수로 정신의학과 교수이면서도 ‘정신질환’이란 것이 병이라는 것을 부정한 인물이다.

그는 정신질환 자체를 부정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잘못 표현한 것이며 권위자들이 특정 권력행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경멸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여러 저서를 통해 “정신의학은 사이비과학이며 다양한 정신 건강법을 통해 국가의 지원을 받아 현대의 세속적 국가 종교가 됐다. 합리적이며 체계적이며 따라서 과학적이라는 명목으로 위장하는 매우 정교한 사회통제 시스템으로서 정신의학은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이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피임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자살에 대한 권리 역시 있다면서 2012년 9월 92세 나이에 자살을 해 세상에 자살에 대한 권리를 전파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스는 글을 통해서 “멍청한 사람은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순진무구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어버리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지 않으면서, 그 상처의 체험에서 깨달음을 얻어 다시는 같은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신을 돌본다”는 말을 남겼다.

의학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이 말이 더 유명한 내용으로서 흔히 정치인들에 대한 잘못과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을 국가별로 구분할 때 인용되기도 한다.

앞에서 한 정치인이 언급한 내용 역시 이 말에 기초했다고 볼 수 있다. 사스의 정의에 따르면 미국인은 현명한 측에 속하는데 한국인은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용서는 하지 않지만 잊어버리는 경우는 특이한 경우인 것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가 특이한 구조가 된 것일까?

어느 나라나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다. 어느 사회나 우리가 있고 너희가 있다. 그래서 항상 다툰다. 옳아도 너희는 틀린 것이고, 틀려도 우리는 옳은 것이라고 우기면서 싸운다.

팸덤 정치를 위해 막말도 해대고 억지도 부린다. 그래도 우리편이 한 것은 모두 넘어가고 이해해주고 오히려 장려한다. 그 과정에서 민생을 포함해 정작 정치가 가져야 하는 공정과 사회정의는 무덤 속에 묻히고 만다.

아무리 막말을 하고,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또 뽑아주니 뭐든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 것이다. 공천권을 가진 권력자의 종 노릇만 열심히 해서 공천만 받으면 용서는 하지 않지만 바로 잊어먹고 특이한 유권자들이 알아서 뽑아주니 말이다.

이재명 정부 첫 국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그러한 정치인들의 묻지마 공격과 근거없는 폭로 그리고 막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과연 저런 사람들을 도대체 누가 뽑아준거야?”란 말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그것을 즐기고 조장하고 막장드라마를 막장드라마로 막는 장면이 수없이 펼쳐진다.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임박했다. 정치권은 이미 내년 지방선거 모드에 돌입한 분위기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 등 치열한 수도권 선거판도를 의식해 국정감사에서 현직 시장 도지사에게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

주로 야당 시장을 대상으로 여당이 내란 동조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서울 집값 상승 책임을 묻는 식이다. 다분히 선거용이고 선거가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 먹잇감으로 물꼬를 튼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인상을 찌푸리지만, 선거 때만 되면 우리편이냐 너희편이냐만 따진다.

사스 교수는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병이 아닌데, 사회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병자로 몰아붙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을 것 같다.

상대편을 정신질환자로 몰면 우리 편은 어떠한 짓을 해도 정당화되는 것이니 이들에게는 당연히 정신질환을 병이라고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중도에 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여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 정치성향이 30%는 진보, 30%는 보수이고 상당수인 40%는 중도성향으로 알려졌다. 각각 30%씩의 진보와 보수성이 짙은 사람들 외에 40%는 그래도 중립적으로 양쪽을 살피는 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든 야든 국가와 지역을 이끌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이정도의 양식과 지식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가지고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저급 정치의 모습을 이제 그만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런 식이면 우리 국민 모두가 정신병이 아닌 ‘정치병’에 감염돼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그 옛날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망가져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됐을까. 정치는 사상이고 이념이고 결국 민생이다. 두목 지킴이 산적 싸움은 언제든 한 순간에 존재를 잃는다. 윤석열 정권이 그것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어서 또 다음정권이 더 세게 달리고 있다.

이제는 좀 성숙해져야 하는데 아직도 내편 네편만 따진다. 그러면서 상대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인다. 그래서 아직 우리나라가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이 정치를 싫어한다는 통계자로도 나오고 있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운명이 끝나면 안되지 않겠는가. 결국 국민의 책임이다.

아직도 나라의 운명과는 관심없이 이념만 내세울 것인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