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조엘 모키르, 필리프 아기옹, 피터 하위트. 사진=노벨위원회

2025년 노벨경제학상은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80여년전 강조한 슘페터의 제자들에게 돌아가, 경제 성장의 중심에 기업이 있고, 그 기업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사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한편으로 우리나라에 과연 혁신과 기업가정신이 살아있는 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슘페터나 이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명의 경제학자들은 혁신의 전제로 창조적 파괴를 들었다. 기존의 질서나 틀을 깰 때 새로운 혁신의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선(善)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특히 근래 세상을 바꾼 AI(인공지능)이야말로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대표적인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한 3명의 경제학자 중 프랑스 출신 아기옹 교수와 캐나다 출신 하윗 교수는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1992년 ‘창조적 파괴’ 성장 모형을 함께 제시했는데 창조적 파괴 성장모형은 새로운 혁신이 낡은 기술과 기업을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경제가 끊임없이 재편되고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론이다.

이들은 기업들이 생산 공정을 개선하고 더 나은 품질의 신제품을 위해 투자하는 방식, 기존 최상위 제품 보유 기업들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과정을 수학적으로 규명해냈다.

네덜란드 출신인 모키어 교수 역시 기술 진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전제 조건을 파악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노벨위원회는 이번 수상자 선정 이유를 “경제 성장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준 연구로서 창조적 파괴의 메커니즘을 유지하지 않으면 다시 정체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서 “이들 경제학자들이 그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이들 경제학자들의 스승인 슘페터는 1883년에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1929년 세계 대공황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1950년에 사망할 때까지 세계 경제학계에 혁신과 기업가정신이라는 DNA를 심은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였다.

같은 해 태어난 케인즈와 쌍벽을 이루면서 양대 산맥을 형성했는데, 케인즈가 시장을 조정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데 반해 슘페터는 시장의 흐름에 맡기되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혁신을 통해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케인즈는 시장의 원리에 맡길 경우 완전고용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철저히 개입해서 시장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슘페터는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내버려 둬야 새로운 혁신의 싹이 생겨나 시장을 살리고 성장을 이어간다고 강조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슘페터는 전통적인 경제학파인 고전학파의 시조인 아담스미스의 시장원리 중심의 원칙에 가깝다고 보면, 케인즈는 공공이 시장에 개입해 관리하는 공공정책 중심의 이론을 확립하면서 1920년대부터 말부터 경제학계를 주름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케인즈학파다.

그러나 1970년대 두 번에 걸친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케인즈학파의 논리와는 다른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면서 케인즈의 이론이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자 1950년대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시카고학파의 이론이 힘을 얻게 됐다.

시카고학파는 고전경제학의 맥을 잇는다고 해서 신고전학파라고도 부르는데, 시장의 원리를 중시하는 경제학파다. 1980년대 레이건의 경제정책의 배경에는 바로 시카고학파의 논리가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의 원리를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슘페터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슘페터는 시장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해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으려면 기업들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창조적 파괴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슘페터가 강조한 기업가정신 역시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경영을 의미한다.

1980년대 이후 노벨경제학상은 주로 밀턴 프리드먼을 시작으로 시카고학파가 휩쓸고 있는데, 이번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3명의 경제학자는 시카고학파는 아니지만 시장주의자들이라는 측면에서 케인즈학파라기 보다는 시카고학파 쪽에 가깝다. 슘페터가 하버드대학교 교수를 지냈기 때문에 시카고학파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시카고학파의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혁신’ 개념을 가지고 해소했다고도 할 수 있다.

슘페터가 처음 개념을 내놓은 ‘기업가정신’은 기존의 생산과 판매방식을 고수하지 말고 신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생산방법을 도입해서 신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원료나 부품이 개발되면서 노동생산성도 올라가고 조직도 새롭게 바뀐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의 창업주들은 분명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통해 기존 시장질서를 무너트리면서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건 창업주들은 분명 기업가정신으로 새로운 종자를 밭에 뿌렸고 그것을 혁신적 방법으로 일구면서 오늘날의 대한민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3세, 4세 시대로 넘어오면서 그러한 기업가정신이 숨쉬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재벌 후예들이 도전과 혁신보다는 안주하고 겉으로 멋있는 사업에만 매달린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는 이제 혁신은 사라지고 집 지키기에만 급급한 기업문화가 형성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산업은 과거 GE나 보잉 등 글로벌 기업들은 힘을 잃었지만 그 자리를 벤처로 시작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등이 대신하면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부도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거부하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장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벤처 등 기술 중심의 기업 육성에 역량을 모아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협력하던 중소 벤처 기업들이 기술은 뺏기고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사라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런 산업생태계에서 혁신의 DNA는 뿌리를 내릴 수 없다.

대한민국에 ‘슘페터의 유령’이 절실해졌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