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복무규정에 '복종'이 있고, 복종을 어겼을 경우 징계도 따른다. 문제는 복종 위반에 따른 징계를 6급 이하만 받았다는 것이 밝혀져 파장이 일고 있다.
어느 사회에나 명령과 복종은 있다. 특히 군대 같은 위계가 서야 하는 조직에서의 명령과 복종은 그 조직의 근간이 될 수도 있다.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명령과 복종은 무조건적이고,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일수록 복종과 명령은 합리적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에 ‘복종’이란 용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법에 정해놓고 복종을 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해 징계를 한다는 조항이 있다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조직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복종 관련 징계를 하위직 공무원만 받고 고위직 공무원은 징계받은 사례가 없다니 공무원사회가 얼마나 권위적인지 알만하다.
지난 16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상식 의원이 인사혁신처 자료를 근거로 밝힌 중앙부처 공무원의 ‘복종의 의무’ 위반 징계현황을 보면, 지난 4년 간 징계사례는 총 66건이 있었다. 복종을 안 해서 징계를 받은 것도 이상한데, 징계 대상이 모두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이었고 5급 이상 고위직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더 어이가 없다.
2021년 23건, 2022년 19건, 2023년 14건, 2024년 10건으로 4년 간 총 66건 징계사례 모두가 6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이었다.
공무원 복종 의무의 근거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및 ‘지방공무원법’ 제48조에 근거한 것으로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상급자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규정 때문이다.
물론 위법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국가공무원법 제57조도 있고, 적법한 명령에만 복종의 의무가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그러나 공무원 복무규정을 공무원법에 ‘복종’이라는 용어를 넣어서 복종을 하지 않은 경우 징계를 하는 것은 공무원사회가 얼마나 낙후된 조직인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에 더해 징계는 하위직에게만 하겠다는 것 역시 철저한 계급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공무원사회를 흔히 복지부동 조직이라고 한다. 시키는 것만 하고 자율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은 금기시돼있다. 즉 명령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원사회에 “괜히 시키지도 않은 일 했다가 무슨 날벼락이 떨어지려고”란 말은 어떻게 보면 공무원 수칙 1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공무원사회에 혁신은 고사하고 개선도 없고 변화도 없는 것이 아닐까? 국민들이 세금을 고박꼬박 내는 것은 자리지킴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좋은 공공서비스를 받기 위한 것인데 이들의 본분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라니 말이 안 나온다.
복종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명령에 따르는 것’으로 돼있다. 복종이 조직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유용할 수 있겠으나 매우 위험한 사회적 독소라는 것 역시 알 필요가 있다.
복종이 사회적으로 얼마니 위험한지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
1963년 미국 예일대학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교수는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실험을 통해 밝혔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40쌍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각각 선생과 학생으로 역할을 주고 선생은 문제를 내고 학생은 답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 답이 틀렸을 경우 전기충격으로 벌을 주는 실험이었다.
예를 들어 선생이 ‘파란 하늘’이라고 학생에게 얘기해준 다음 학생에게 “파란 다음에는 어떤 단어가 올까” 물으면서 하늘, 바다, 집 등의 예문을 주는 방식이다.
학생이 틀리면 실험자가 학생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데 답이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 강도를 높여 최종 450볼트까지 올린다. 이 과정에서 선생과 학생은 벽을 사이에 두고 격리시켰는데, 전기충격을 받는 학생의 비명소리와 벽을 두드리는 것을 통해 고통이 선생에게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선생은 학생이 진짜 전기충격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험자는 학생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처럼만 하고 학생은 충격을 받은 것처럼 고통을 연기하는 방식을 취했다.
실험 결과, 모든 선생 역할자가 30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허용했고, 65%는 최고 충격 한도인 450볼트까지 허용했다. 450볼트는 사망을 할 수 있는 강도로서 선생 65%는 학생이 죽더라도 벌을 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 선생들은 학생이 죽을 정도로 고통을 받는 것을 알고도 전기충격을 계속 준 이유에 대해 밀그램 교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선생들이 자기합리화를 시킨 이유인데, 첫째 자신은 실험 주관자가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단순 복종이라는 방어적 태도였다.
두번째는 학생 스스로 틀린 데 대한 대가로 학생이 가치 없는 사람이라 충격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고, 세번째는 이 실험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사사로운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사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첫번째 ‘복종’ 뒤에 숨은 책임회피에 파생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복종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준 실험이다.
밀그램은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생존하기 위해 진화 과정에서 습득된 본성”이라면서 “인간은 개성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단순히 권력자의 대리인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나치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6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했다. 당시 학살에 관여한 관료들은 전쟁 후 재판에서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명령에 복종하는 순간에는 죄의식도 인간성도 배제된다고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증명해낸 것이다.
공무원사회에 그런 ‘복종’이 복무규정으로 자리잡고 있으니 국민이 행복할 리 만무다. 뒤늦게 인사혁신처가 명령 복종 조항의 ‘복종’을 ‘준수’로 순화시키고, 위법 등 부당한 지시에 대해 이의제기가 가능한 절차를 마련하는 법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고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아닐까 싶다.
당장 ‘공무원은 상관의 지시를 어기더라도 국민의 민원에 따라야 한다’는 복무규정이 법에 명시돼야 하지 않을까?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