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유럽팀이 우승컵을 들고 기념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라이더컵 홈페이지

오늘 아침 끝난 2025년 라이더컵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 갤러리들의 무매너와 트럼프의 장삿속으로 얼룩진 수준 이하의 대회였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오만함을 그대로 드러낸 대회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대회 첫날인 26일(현지시간) 트럼프는 미국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라이더컵에 직접 나타나 관람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이 골프장 위를 낮게 날자 많은 관람객들이 미국 국가를 합창하면서 트럼프의 재선을 상징하는 48을 외치기도 했다.

현재 트럼프는 47대 대통령으로서 다음 48대 대통령에 도전할 뜻을 가지고 있고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회 시작과 함께 트럼프는 자신의 손녀인 카이 트럼프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카이 트럼프는 전날 자신이 디자인해 처음 출시한 의류 브랜드 KT를 입고 나타나 결국 신제품 런칭행사를 국제적으로 겸하게 된 것이다. 130달러짜리 이 옷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라이더컵을 손녀의 신제품 셔츠를 홍보해주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역시 비즈니스맨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하다.

이번 라이더컵은 미국 관중들의 도를 지나친 무질서와 무매너로 얼룩졌다. 라이더컵은 미국과 유럽의 자존심을 걸고 2년에 한번씩 열리는 대회이기 때문에 열기가 대단한 것은 인정하지만,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직접 야유를 보내고 인신공격까지 한 것은 과거에 없던 장면이어서 미국의 문화적 수준이 트럼프 대통령 들어서 많이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게 됐다.

특히 3일 경기 중 2명이 한 조로 대결하는 처음 이틀 동안 유럽팀이 미국팀에 압도적으로 앞서자 미국 관중들은 응원 대신 욕설과 야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틀간 포섬과 포볼 경기에서 유럽은 11승 4패 1무로 11.5점을 획득한 데 반해 미국은 4.5점으로 두 팀간의 점수차는 7점까지 벌어졌다.

특히 미국의 자존심인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가 이틀 간 4경기 모두 패했고, 유럽의 대표선수인 세계랭킹 2위 로리 맥길로이는 3승1무의 성적을 내면서 미국 팬들의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다보니 미국 팬들은 유럽 선수들이 소개될 때 야유를 보내기도 하고, 그린 주변에서 유럽 선수들이 퍼팅을 할 때 시끄럽게 소음을 일으키거나 인신모독 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특히 유럽팀의 승리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로리 매길로이에 대해 욕설과 조롱이 집중됐다.

로리 매킬로이에 대해 티오프 전 선수 소개 때부터 야유를 퍼부었고, 외모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아일랜드 국적인 매킬로이를 자극하기 위해 아일랜드 민속 설화 속 캐릭터를 활용한 욕, ‘아일랜드가 영국 왕실에 무릎 꿇는다’는 내용의 정치적 욕설도 했다. 매킬로이와 아내 에리카의 ‘불화’를 언급하거나, 성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갤러리들 사이에서 음료 컵이 날아들어 응원하는 에리카의 모자 챙에 맞는 일도 벌어졌다. 매킬로이는 둘째 날 포섬 경기 중 어드레스 자세를 잡았는데도 미국 팬들의 욕설이 계속되자 뒤를 돌아보며 “XX, 닥쳐”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욕설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유럽팀은 이틀 동안 미국팀을 압도했다. 그러나 마지막날인 개인전에서는 미국팀이 죽을 힘을 다했는지 선전해 12명 전원이 출전한 경기에서 6승5무1패로 8.5점을 획득해 총 13점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15점을 얻은 유럽팀에게 2점 차이로 패했지만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한 것이다. 가장 큰 관심은 세계랭킹 1, 2위 간 대결이 펼쳐진 4번째 경기였는데 스코티 셰플러가 로리 맥길로이를 한홀 차이로 이겼다.

만일 마지막날 개인전마저 무너졌을 경우 미국 관중들은 폭도로 변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경기에 대해 영국 가디언지는 “버디, 이글이 부족했던 미국 골프가 맥길로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욕설뿐이었다”고 꼬집었다.

골프 경기 관람객을 갤러리(gallery)라고 부른다. 갤러리는 본래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골프 관람객을 갤러리라고 부르는 것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이 정숙하고 예의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래서 가장 조용한 매너를 보여야 하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골퍼들은 18홀 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의 영향을 어느 스포츠보다 더 받는다. 그래서 골프가 잘 안되는 이유는 108가지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홀의 직경이 108mm인 것과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 ‘골프 108번뇌’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갤러리마저 소란을 피우면 골퍼와 골프는 망가지게 돼있다.

그런데 PGA와 LPGA 대회를 통해 세계 골프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의 갤러리들이 왜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였을까?

트럼프의 장사꾼 정치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미국의 힘을 배경으로 억지 관세를 부과하고, 터무니없는 투자를 요구하고,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등 안하무인적인 정치 행보가 미국 국민들을 거칠고 무례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포장 뒤에서 저지르고 있는 인종차별, 국가차별, 이념차별 등에 의해 미국 국민들이 상식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가운데,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미국 갤러리들의 무례한 모습에서 트럼프의 오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그리고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파장은 엄청나다. 미국은 지금 안팎으로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이번 라이더컵에서 보여준 미국 갤러리들을 보면서 어쩌면 트럼프 5년 간 미국이 크게 망가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