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 참가해 티샷을 날리고 있는 박혜준 선수

요즘 한국 여자골프의 글로벌 위상이 점차 약화하고 있어 매우 아쉽다. 과거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전 국민이 금모으기에 나설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 US여자오픈에서 보인 투혼에 국민 전체가 힘을 얻었던 것이 마치 어제일 같은데 격세지감이다.

특히 태국 추아시리폰과의 연장전 18번홀에서 헤저드 가장자리에 빠진 공을 신발을 벗고 들어가 샷을 해 그린에 올린 장면은 세계 골프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4위로 평가 받고 있다.

올해 5월 미국 골프 전문 매체인 골프다이제스트가 그동안 여자골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20가지를 설문조사로 선정했는데, 1위 1950년 LPGA 창설, 2위 1972년 성평등교육법안인 ‘타이틀 9’ 제정, 3위 2003년 아니카 소렌스탐의 PGA콜로니얼 대회 출전, 5위 1990년 솔하임컵 창설이니까 실질적으로는 4위인 박세리의 US여자오픈 투혼 우승이 LPGA 역사에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3위 소렌스탐의 PGA 출전은 예선탈락 해 출전 그 자체에 의미를 뒀다.

박세리의 그 우승을 계기로 박인비, 고진영으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를 호령해왔는데 이제 10위 이내에 김효주가 9위로 유일하게 올라있고, 유해란이 13위, 최혜진이 17위, 한때 세계1위를 오랫동안 지켰던 고진영이 19위다. 고진영의 세계 랭킹 1위 163주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제 한국 여자골프가 새로운 도약의 원동력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됐는다 달리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골프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는 진통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이 그동안은 골프 성적만을 향해 달렸다면, 이제 골프 선진국답게 성숙한 골프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힘을 모아야 재도약 하는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2022년 6월 16일 DB그룹 한국여자오픈 대회 첫날 벌어진 윤이나의 ‘오구 플레이’는 우리나라 골프 역사에서 잊기 어려운 오점으로 남는다.

레인보우힐스CC 15번홀은 가파른 오르막 코스이고, 홀 오른쪽은 나무숲이 돌출돼 나와있는데 장타자들은 숲을 넘기는 샷을 하는 경우가 많다. 윤이나도 장타자이기 때문에 숲을 넘기려고 시도했지만 나무숲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공을 찾다가 남의 공을 가지고 경기를 진행했는데, 그 상태로 4일동안 경기를 마쳤다. 명백한 양심불량이다.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캐디의 신고가 두려워 한달이 지나서 자진신고를 했고, 결국 3년간 출전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나중에 징계기간은 1년6개월로 줄어들었다.

윤이나는 그 후 미국 Q스쿨을 통해 LPGA로 전향했지만, 현재 세계 랭킹 80위로 내년 풀시드를 받는데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밀렸다. 윤이나는 오는 10월 9일 뷰익 상하이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 말레이시아, 일본으로 이어지는 아시안스윙에서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내년 풀시드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윤이나의 머리 속에는 자신의 ‘오구 플레이’가 남아있을 것이고 그 기억이 뿌려야 할 샷을 잡아당기지 않을까?

지난주 9월 18일부터 21일까지 인천 베어스베스트 골프CC에서 열린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2라운드 4번 홀에서는 신다인의 ‘오소 플레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신다인의 티샷이 잔디가 거의 없는 흙바닥 페어웨이에 떨어졌는데, 당시 ‘볼 닦기’ 규정에 따라 신다인이 볼을 닦은 후 원래 위치가 아닌 잔디 위에 공을 내려놓았던 것이다. 프로골퍼로서 공을 닦은 후 위치를 변경할 수 있는 ’프리퍼드 라이’ 규정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다는 측면에서 의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본 동반자 박혜준이 지적을 했고 결국 신다인은 2벌타를 받았다. 신다인은 이날 공동 3위로 출발했지만 이 후 샷이 흔들리면서 6오버파 78타를 쳐 41위까지 밀렸다. 최종 6오버파로 33위로 대회를 마쳤다.

문제는 오소 플레이를 지적한 박혜준에게 비난의 화살이 빗발쳤다. 박혜준이 신다인의 오소 플레이를 지적하는 장면이 방송에 반복적으로 나가면서 SNS에는 “동료를 고발했다”, “같이 치기 불편하겠다”는 악플이 쏟아졌다.

당장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후반 첫홀에서 보기를 범했다. 박혜준은 3라운드까지 1위를 달렸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3오버파를 기록해 3위로 마쳤다.

갈수록 심해지는 비난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을까? 이번 주 블루헤런 골프CC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박혜준은 3라운드까지 공동 27위에 머물러 있다. 첫날 3언더파로 공동 2위를 달리다가 두번째 날은 이븐파로 상위권에 머물렀지만, 어제 3라운드에서 7오버파를 쳐서 현재 중간합계 4오버파로 공동 27위에 머물렀다.

오소 플레이 당사자인 신다인은 2라운드까지 8오버파를 기록해 컷 탈락했다. 두 선수 모두 아직도 오소 플레이에 대한 악몽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인데, 선수 자신들보다 SNS를 통한 악플이 선수들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아닌 지 매우 우려가 된다.

골프는 심판이 없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거기에 상금은 최고 수준이다. 자신이 선수이자 심판이고 각자의 양심을 믿을 수밖에 없다. 잘못된 양심에 침묵하고 눈감아주기를 해줄 경우 그 선수는 더 큰 사고를 저지르고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박혜준의 ‘오소 플레이’ 지적은 골프 팬들로 하여금 골프를 믿고 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준 매우 고마운 지적이라고 할 수 있고, 신다인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선수나 팬들 모두 이해해야 한다. 그런 지적과 이해가 우리나라 골프 문화를 끌어올려 명실공히 선진 골프문화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렇게 탄탄한 기반이 만들어진 후에 재도약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오늘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박혜준이 어제의 7오버파라는 악몽과 악플을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내서 한국 여자골프의 양심 있는 저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앞으로 우리나라 골프가 다시 도약을 하고 성숙된다면 그것은 박혜준 덕분일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