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불법 판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동안 상호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엄청난 투자를 약속한 우리나라에게도 비상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 주지사가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트럼프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1심에서 원고 승소판결이 난 데 이어 빠르면 이달 안에 나올 항소심에서도 상호관세 위법판결이 유력하다. 대법원에서까지 위법 판결이 나올 경우 상호관세는 즉시 폐지된다.
트럼프가 내세운 상호관세의 근거는 IEEPA(비상경제권한법)인데 일반적으로 미국은 모든 세금 결정권은 의회에 있지만, 이 법을 근거로 비상시국의 경우 우선적으로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응급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다.
지난 4월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몇몇 주가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위헌이라고 소송을 걸면서 시작된 이번 재판은 지난 5월 28일 미 연방국제통상법원(USCIT)이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바 있고, 현재 트럼프 측에서 항소와 함께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내놓은 것을 항소법원이 인용하면서 상호관세가 아직은 유지되고 있지만 빠르면 이번 달 내로 항소심이 나올 예정이어서 결과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분위기로 보면 항소심에서도 트럼프 측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법관 9명 중 6명이 공화당 측 보수진영이어서 겉으로만 보면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보수 판사들의 성향이 법조문 중심으로 판결하는 경향이 높고, 현재 공화당 내에서도 상호관세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의원들이 많아 대법원 역시 상호관세 폐기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 법원이 트럼프의 상호관세 폭탄을 불법으로 보는 근거는 IEEPA에서 정한 대통령의 권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의 현재 상황이 비상사태라고 할 수 있느냐인데, 현재 트럼프가 비상상황이라고 우기는 근거인 무역적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오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다음으로 IEEPA 어디에도 관세라는 표현이 없고 다만 “중대한 위험시 수입규제 가능’이란 문구가 있는데 이것이 관세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법리적 판단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수입규제 가능의 범주에 관세가 들어간다는 입장인데, 과연 대법원에서 트럼프 측의 주장을 들어주느냐에 최종 판결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 판결이 속도를 내면서 트럼프에게 불리한 여론이 전개되자, 급기야 트럼프가 지난 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법원이 우리의 관세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대공황이 올 것"이라며 사법부를 압박한데 이어, 11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도 연방순회항소법원에 제출한 서한을 통해 “상호관세 관련 정부가 패소할 경우 1929년식 결과를 초래해 국민들이 집을 잃고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공적 의료보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트럼프와 정부가 법원에 총공세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트럼프의 입장이 급박해졌다.
법원을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와 법무부의 태도에 대해 여론도 트럼프 측이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 맨해튼연구소의 제시카 리들 선임 연구원은 "연방예산이 7조달러(약 9690조원)이고 연간 재정적자가 2조 달러(약 2768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관세 수입은 '게임 체인저'가 되긴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미 재무부에 따르면 2025년 회계연도가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7월까지 10개월간 미국 관세수입은 1520억달러(약 210조원)로 현재의 무역적자 규모에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미국의 상호관세가 법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제지될 경우 상호관세를 앞세워 각국 정부와 협상을 벌여온 미국의 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상호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EU등의 입장이 난처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호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3500억달러에 더해 1000억달러의 에너지 수입을 약속한 바 있고, 일본은 5500억달러에다 추가로 에너지 수입을, EU는 6000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만일 미 대법원에서까지 상호관세 폐기가 결정될 경우 상호관세는 그날 부로 폐지가 되는데, 이들 투자약속까지 폐기시킬 수는 없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법원에서 패해 상호관세가 폐기될 경우, 대안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한 품목별관세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피터 나나바로 백악관 고문은 “연방법원에서 IEEPA에 따른 상호관세 취소 판결이 나온다 해도 다른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칫 상호관세보다 더 센 품목별 관세 폭탄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는 50%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된 상황이고, 지금은 범위를 넓혀 이들 소재가 들어간 제품에까지 확대 적용할 예정으로 돼있다.
조만간 나올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200%를 넘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고, 비슷한 시점에 나올 의약바이오에 대한 품목별 관세는 250%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상호관세가 없어지는 대신 품목별로 관세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여전히 3500억달러의 미국 투자와, 1000억달러의 에너지 수입은 유지되는 상황에서 관세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현재까지 협상을 마무리 하지 않은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비교적 강성 반미 정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선 대신, 서둘러 협상을 진행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EU, 일본, 동남아 국가 등 우방국들이 호구가 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다시 시작이 될 조짐이 생기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그동안 기울인 노력이 자칫 물거품이 될 까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