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신안산선 광명 구간 현장에서 터널이 붕괴돼 2명이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중 1명이 사망했다. 터널 기둥이 이미 훼손됐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을 무리하게 투입해 일어난 전형적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진=관할소방소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의 잇따른 근로자 사망사고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지적하면서, 과연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두고 대통령이 ‘미필적 고의’라는 표현을 쓴 것이 맞는 것인지에 건설업계의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지난 4월 포스코이앤씨의 신안산선 광명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원인이 부실시공이라는 정황이 확실시 됨에도 불구하고 국토부가 원인 규명에 시간을 끌면서 봐주기 조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신의 어떤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심리상태라고 돼있다. 즉 행위자가 범죄의 발생을 적극 유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행위가 어떤 범죄를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의 영어 표기는 dolus eventualis다. 사람이 가능한 결과를 알고 행동하기로 결정한 의도를 말한다.
사냥꾼이 다른 등산객들이 지나가는 것을 봤지만 근처에 있는 사슴을 향해 총을 쐈는데 어쩌다 등산객이 맞아 사망했을 때, 사냥꾼에게 적용되는 죄목이 바로 dolus eventualis다. 우리 말로 ‘부작위 살인죄’다. 즉 직접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살인죄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승객들을 챙기지 않고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탈출해 구조돼 살아난 이준석 선장에게 적용된 죄목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해당하는 dolus eventualis였다. 이준석 선장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15년 11월 12일부터 전남 순천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은 실제 살인과 별 차이가 없는 중범죄라고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처벌은 살인죄에 준해 내려지는 것이 법조계의 관례임을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포스코이앤씨 현장의 반복되는 사망사고에 대해 “어떻게 그걸 보호장구 없이 일을 하게 합니까? 사람 목숨을 사람 목숨으로 여기지 않고, 무슨 작업도구로 여기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정한 곳에서 사고가 반복된 건 예상 가능한 것인데,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닙니까? '죽어도 할 수 없다' '죽어도 어쩔 수 없지' 이런 생각을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로 참담합니다."
법률 전문가인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미필적 고의’란 표현을 쓴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즉 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사고 방치’라고 할 수 있고, ‘근로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생산도구로 보고 죽어도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을 했다면 ‘인명 경시’로 dolus eventualis(부작위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12일 신안산선 광명 구간 현장에서 터널 붕괴사고로 근로자 1명이 사망한 사고는 대표적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사고 당시 터널 기둥이 균열 차원을 넘어서 심하게 파손돼있었다는 보고서와 사진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설마’ 하는 생각으로 공사를 강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터널이 계속 내려앉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보강작업을 나섰던 것인데 기둥이 훼손돼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현장에 근로자를 투입했던 것이다. 이 공사는 처음부터 연약지반을 보강하는 단계부터 부실이 시작돼, 대형 참사가 예고돼있었던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토교통부에서 사고원인 관련 조사를 하고 있지만, 9월까지 연기된 상황인데 국토부가 객관적인 결과를 내놓을 지 지켜봐야 할 사항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미 조사가 끝났을 시기인데 국토교통부가 포스코이앤씨 봐주기 식으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월 사고원인 등을 발표할 예정인데, 과연 대통령이 말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될 만한 결과가 나올 지 아니면 관례적으로 건설사를 봐주는 식의 모양갖추기식 조사인지 두고 볼 일이다.
이 공사를 놓고 보면, “터널 내의 기둥이 훼손돼 무너질 경우 근로자가 죽을 수 있지만 무너진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근로자를 투입했는데 사고가 발생했네”라는 생각을 포스코이앤씨가 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일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미얀마 국적의 30대 남성 근로자의 감전으로 인한 의식불명 사고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7월 28일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행한 다음날인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하게 질타를 하자,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전체 현장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점검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는데, 포스코이앤씨는 안전점검을 부실하게 한 채 국민과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약속을 어기고 몰래 공사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안전점검을 대충 했지만 사람이 죽길 바란 것은 아닌데 근로자가 감전사고를 당해 의식불명이 됐네?” 이것 역시 부작위 살인미수에 해당할 수 있다.
경남 함양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망사고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60대 근로자는 천공기 작업을 위해 이동식 크레인에 탑승하여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산업안전보건법 상 이동식 크레인에 탑승해 작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명백한 규정 위반이며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의도는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코이앤씨의 사고 일지를 보면 며칠 상간으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것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번 7월 28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6일 만인 8월 4일 사고가 발생했고, 2024년에는 8월에는 일주일 동안 3건의 사고로 4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터널이 무너지고 있는데 작업자를 투입한 신안산선 공사, 이동식 크레인에 사람이 탈 수 없는 데 태워서 작업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한 함양 고속도로 공사, 안전점검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았는데 전기점검하다가 의식불명 사고를 낸 광명 고속도로 공사, 며칠 상간으로 집중해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데 적절한 사고 예방에 나서지 않은 경영자를 포함한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 의식 등.
정부는 포스코이앤씨가 벌인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일벌백계를 해 건설 현장이 근로자의 무덤이라는 딱지와 오명을 벗어야 할 때가 됐고, 이번을 계기로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을 피해가는 준 살인 사고들이 사라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