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8일(현지시간) 83세 나이로 생을 마친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설립자인 에드윈 퓰러. 사진=헤리티지 재단

미국 보수 정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헤리티지 재단의 설립자인 에드윈 퓰러 미국 해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이 지난 18일(현지시간) 83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해 향후 미국 보수정권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대미 협력 파트너십에도 어떤 변화가 생길지에 국내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러 언론에서는 김승연 한화 회장과 40년 지기로서, 최근 ㈜한화의 사외이사 직을 맡아왔고, 그동안 한국을 200회 이상 방문할 정도로 친한파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의 여러 재벌기업들이 그동안 헤리티지 재단에 많은 금액을 후원해왔기 때문에 퓰러 전 회장에게 한국 기업들은 큰 고객이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김승현 회장을 비롯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그 외 재벌그룹 회장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들과 자주 만나는 등 특별히 한국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헤리티지 재단은 1973년 설립됐는데, 미국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당선을 기점으로 후임인린든 존슨 대통령 등 민주당이 장기 집권을 하면서, 보수당인 공화당이 정치권에서 뒷전으로 밀리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퓰러가 만든 싱크탱크였다.

케네디는 1963년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면서 당시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이 잔여임기를 채우고, 재선에 출마해 36대 대통령에 당선돼 1969년까지 임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1964년부터 장기간 이어지는 베트남전에 지친 미국 국민들 일부가 1968년 37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으로 돌아서면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당시 민주당 소속의 부통령인 휴버트 험프리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면서 37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에드윈 퓰러는 우여곡절 끝에 보수당인 공화당이 집권하자, 이러한 기회를 이어가기 위해 정통 보수의 정치이념을 정립하고자 1973년에 헤리티지 재단을 만들었고, 처음에 재원은 쿠어스 맥주회사의 사주인 조지프 쿠어스가 대부분 부담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설립 목적은 작은정부,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 개인의 자유 보장, 미국의 전통가치 전승, 국방강화 등 다섯 가지였다.

닉슨이 1974년 재선 1년 만에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부통령이던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손상된 닉슨 이미지로 인해 1976년 3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대선인 40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은 카터의 재선을 저지시키고 대통령에 당선돼 미국 보수정권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러한 미국 보수정권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한 가운데 싱크탱크로서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헤리티지 재단이었고,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이 헤리티지 재단을 통해 미국 핵심 인사들과 교류를 해왔던 것이다. 특히 한화의 김승연 회장은 29세인 1981년부터 그룹 회장을 맡았기 때문에, 헤리티지 재단 설립 초기 때부터 교류해온 관계로 다른 어느 기업보다 관계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퓰러 전 회장의 별세는 우리나라의 대미 네트워크 관리 차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헤리티지 재단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강력한 국방력 강화를 주장하면서, 미국이 세계 국방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게 해, 결국 소련에 대해 군사력에서 월등히 앞서면서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의 단초를 만들기도 했다.

헤리티지 재단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아래에서 소련을 이른바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궤도 탄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세우려는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 방위 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 즉 이른바 ‘스타 워즈’(Star Wars) 계획을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군사력의 우위를 점하게 했다.

이렇게 헤리티지 재단이 미국 보수의 싱크탱크로서 미국을 세계의 최 상위에 올려놓게 한 근본적인 힘은 후원을 한 기업의 입장이 아닌 미국의 힘을 키우고 미국 보수의 근본적인 가치를 확립하면서 전통적으로 미국이 추구하는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또한 헤리티지 재단이 많은 기업이나 단체들 더 나아가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들의 후원을 받아 운영이 되고 있지만, 단순히 그들 후원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보수의 다섯 가지 목표에 집중하면서 정당성을 유지해왔다.

결국 헤리티지 입장에서는 미국 보수가 건전하고 강한 힘을 가져야 그것을 기초로 해서 관련 기업들이나 나라들도 많은 기회를 얻는 후광효과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헤리티지 재단 같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국정농단사태에 휩쓸려 숨만 쉴 정도로 밀려났다가,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란 이름으로 되살아난 조직이다.

전경련 시절 재벌기업들이 돈을 모아서, 정부에 재벌기업들의 입장을 전달하고, 정부의 심부름을 하고 이익을 취하면서 정경유착의 고리 역할을 했던 매우 정치적인 단체였다. 결국 그러다가 정치적 회오리에 휩싸여 모든 정치계와 재계는 물론 국민의 신뢰를 잃은 이름만 있는 단체가 됐다.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과 미래 생존력을 갖추기 위해서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 정부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등 기업과 정부 모두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말 그대로 싱크탱크 역할을 했어야 했는데 뒷돈을 대는 대신 재벌들의 편에서 정책을 펴도록 유도했던 것이 발목을 잡고 존재의 이유가 훼손됐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는 오염됐고, 기업들의 뿌리는 허약해지게 됐다.

한경협 외에도 한국상공회의소, 경영자총협회 등등 여러 경제단체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 과거 전경련의 모습과 이름만 다른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단체들이다.

오로지 재벌 기업들 입장에서 눈앞의 이익만 대변하는 조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눈가리고 아웅식 혜택으로 이익을 보장받는 시대는 가고 있다. 세상과 함께 살수 있는 방법, 그렇게 하기 위한 준비, 어떤 힘을 키워야 하는 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생존과 성장을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고 협의하는 단체들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우리 재벌들이 오랫동안 헤리티지 재단과 인연을 맺어오면서 우리의 경제단체에는 그러한 좋은 점들을 접목시키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만 좇았는 지 안타까운 심정이 앞선다. 이제는 스스로 만든 멍에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