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에 등장하는 비행기와 같은 기종인 F-14이 항공모함에서 날개를 펴고 이륙하는 모습.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군은 큰 상처를 입었고 펜타곤은 그 교훈을 뼈아프게 새겼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항공 전력(air power)에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공산군의 미사일과 대공포화에 너무나 많은 조종사들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고공 폭격을 하는 B-52 마저 대공미사일에 피격됨에 따라 대형폭격기의 시대가 지난 것으로 보였다.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공군과 해군이 같이 쓰는 차세대 전투기 F-111 개발을 추진했으나 너무 늦게 공군에 공급돼서 베트남에선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해군은 육중한 가변익(可變翼) 전투기 F-111 인수를 거절하고 차세대 전투기 독자 개발을 추진했다. 해군 항공단장 토머스 코널리 제독이 직접 F-111을 몰고 시험 비행한 후 해군은 이 전투기를 쓸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해서 공군은 F-111을 도입하고 해군은 독자적으로 차세대 가변익 전투기 F-14 톰캣을 개발해서 1974년에 실전 배치했다. 2차 대전 중 해군 함재기 와일드캣(Wildcat, 사나운 고양이)과 헬캣(Hellcat, 무서운 고양이)을 생산한 그러먼(Grumman) 항공사가 ‘토머스 제독의 고양이’(Tomcat)를 만든 것이다.

F-14은 당시 가장 비싸고 부품 수가 많은 전투기였으며, 가장 비싸고 우수한 레이다와 미사일을 장착한 제공(制空)용 전투기였다. 소련은 공대함(空對艦) 미사일을 장착한 초음속 폭격기를 개발해서 미국 항모 함대(carrier group)를 위협했는데, F-14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전투기였다. 한편 공군은 F-4 팬텀을 대체할 전투기 개발에 나섰는데, 이렇게 해서 나온 전투기가 F-15 이글(Eagle)이다. F-15는 1976년부터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F-15는 너무 비싸서 노후 전투기 교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에 공군은 보다 가볍고 경제적인 F-16을 개발해서 1978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갔다. F-14, F-15, F-16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개발됐는데, 이는 1976년 대선이 있기 전에 개발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싱글 엔진 전투기 F-16은 가격이 저렴해서 이스라엘, 우리나라, 대만, 터키 등 많은 나라의 공군기로 공급됐다.

베트남 전쟁 막바지인 1972년에는 B-52가 북베트남 상공에서 우수수 떨어져서 미 공군 수뇌부는 경악을 했다. 그 후 공군은 초음속 폭격기, 즉 B-1 개발을 추진했고, 펜타곤은 레이다에 잡히지 않는 전투기와 장거리 순항 미사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된 지미 카터는 칼텍(Cal Tech) 총장인 해럴드 브라운(Harold Brown 1927~2019)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21세에 물리학박사를 한 천재인 브라운은 병역을 하지 않았으나 케네디-존슨 행정부에서 국방부 연구개발국장과 공군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국방장관으로서의 자격은 넘치고도 남았다. 브라운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내게 되는 윌리엄 페리를 연구개발 차관보로 영입했다. 브라운과 페리는 유인 폭격기 시대가 지났다고 보고 B-1 폭격기 개발을 취소했다. 1980년 대선을 준비하던 로널드 레이건은 B-1을 취소한 카터를 비난하고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B-1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B-1을 취소한 대신에 브라운 장관은 극비리에 스텔스 전폭기 개발을 계속 추진해서 독특한 검은 기체를 자랑하는 F-117 나이트호크는 1983년에 실전 배치됐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대대적인 군비 확장을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B-1 폭격기 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퇴역한 전함 뉴저지, 위스콘신 등을 재취역해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장착토록 했다. “왜 B-1을 다시 개발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레이건은 “나는 그게 장병들에게 공급하는 새로운 비타민인 줄 알았다”고 답해서 기자가 웃고 말았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 임기 첫해인 1981년 8월 19일, 리비아 근해 시드라 만(灣)에서 F-14 두 대가 리비아 공군의 수호이 전폭기 2대를 격추하는 실전 상황이 벌어졌다.

리비아 정부는 시드라 만이 자신들이 영해라고 주장해 왔으나 미국은 이 수역이 영해 요건을 갖추지 못해서 공해(公海)라고 보아 왔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드라 만에서 미군 항모 2척으로 구성된 함대(艦隊) 해상 기동훈련 계획을 승인했다. 미 항모 2척과 호위 함정이 시드라 만에 진입하자 리비아는 공군기를 발진시켜서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던 중 8월 19일 해군 조기경보기가 리비아 전폭기 두 대가 미 항모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하자 항모 니미츠 함에서 F-14 두 대가 급히 발진했다. 수호이 한 대가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F-14은 회피할 수 있었고 이에 대응해서 F-14 두 대는 각기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해서 수호이 2대를 격추했다. 리바아의 미그 25기 두 대가 미군 항모 쪽으로 접근하자 다른 F-14 두 대가 출동했고 미그 25는 그들의 기지로 도망가 버렸다. 이로써 미군 F-14은 처음으로 공중전 격추를 기록했다.

시드라 만에서 F-14가 리비아 공군기 2대를 격추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미국인들은 즐거워했다. (그 날 미국 술집들은 대단한 매출을 올렸다.)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에서의 실패와 테헤란 대사관 인질을 구출하려다가 실패한 쓰라린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이 사건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1986년에 나온 <탑 건>(Top Gun)이다. 영화관 흥행에도 성공하고 주제가도 크게 히트하는 등 선풍을 일으켜서 미국인들의 뇌리에 F-14가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영화에도 잘 나왔듯이 제공(air superiority)에선 F-14을 따라 올 전투기가 없었다. 해군 함재기는 적기로부터 함대를 지켜야 하는데 F-14은 최고의 요격기(interceptor)였다. 그러나 F-14은 지상 공격 기능이 뒤떨어지고 비싸고 유지 관리가 힘든 전투기였다.

기체가 큰 가변익 전투기인 F-14은 F-15 보다 50% 이상 비싸고 부품도 F-15 보다 두 배나 많았다. F-15를 정비하는 데는 한 시간 걸리는데 F-14는 4~5시간이 걸렸다. 연료를 많이 소모해서 급유기로부터 빈번하게 급유를 받아야 했다. 전투기는 미국의 우방국이 구매해 주어야 단가가 내려가는데, 이스라엘, 사우디, 일본은 F-15를 구매했다. 비싼 F-14을 구매한 유일한 나라는 이란이었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팔레비 왕 정권은 F-14 80대를 구매해서 그러먼 항공사의 숨통을 터주었다. 79대를 인도한 시점에 호메이니 정부가 들어서자 마지막 1대는 반출을 중단했다. 이란의 이슬람 정권은 1980년대 내내 이라크와 전쟁을 했는데, 지상 전투에선 이라크가 승리했으나 공중전은 이란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라크가 갖고 있는 소련제 전투기와 프랑스제 미라지는 이란의 F-14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F-14 부품 공급이 차단되었으나 이란은 F-14을 한 대씩 해체해서 다른 기체의 부품으로 쓰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영화 <탑 건 II>에는 이란 영토 내에 격추된 톰 크루즈와 그의 동료가 격납고 속에 있는 F-14을 훔쳐서 탈출하는데, 이 F-14은 팔레비 정권이 도입한 79대 중 남아 있는 전투기였다. (아무리 영화라도 이 장면은 너무나 억지다.) 얼마 전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할 때 이스라엘 공군 F-35가 아직도 남아 있는 F-14을 폭격해서 없애 버렸다.

오래 된 F-4 팬텀과 A-4기를 퇴역시켜야 하는 해군은 너무 비싼 F-14 대신 보다 저럼하고 기능적인 전투기를 개발하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1983년부터 F/A-18 호넷(말벌)이 공급되기 시작했다. 지상공격기 A-6 인투루더(침입자), A-7 코르세어(해적)를 퇴역시킬 때가 다가오자 해군은 기존의 F/A-18의 동체를 키우고 무장을 강화한 F/A-18 수퍼 호넷을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해군은 제공(制空) 능력이 뛰어난 F-14을 개량한 수퍼 톰캣을 개발하려고 했다. 딕 체니 국방장관은 수퍼 톰캣 개발을 거부했다. F-14 수퍼 톰캣은 너무 비싸고 F/A-18 수퍼호넷(대왕 말벌)이 충분히 카버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국방장관이 각 군이 주장한 전투기 개발을 거부해 버린 드문 경우였다. 차세대 F-14 개발이 취소되자 그러먼 항공사는 문을 닫고 맥도널 더글라스와 합병해서 해군 전투기로 이름 있던 그러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F-14은 2006년 9월 해군에서 완전히 퇴역했다. 그럼에도 영화 <탑 건>으로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F-14 톰캣은 미국 곳곳에 전시되어 여전히 미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