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대행


서울 강남 개발은 1960년대부터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하면서 농촌 인구가 서울로 대거 유입되어 서울 인구의 약 76%가 강북에 집중되고, 강북 지역은 주택난, 교통난, 상하수도 등 도시 기반 시설 부족 등으로 심각한 과밀화와 도시 슬럼화 현상을 겪게 되는 등 강북지역의 과밀 해소가 필요한 가운데 추진되었다.

또한 북한과도 너무 가까워 한강 이남, 즉 강남 지역을 개발하여 수도의 기능 분산과 안보 위험을 완화하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강남에 고속터미널을 건설함으로써 강남은 명실상부한 전국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고, 강북에 밀집된 명문 고등학교들을 강남으로 이전시켜 강남으로의 인구 유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이는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강남에 '8학군'이라는 명성을 부여했고, 교육을 위한 이주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1978년 반포 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개포지구 등 대규모 주택단지가 조성되면서 새로운 중산층이 강남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이러한 강남개발은 서울의 도시 공간을 확장하고, 서울의 도시기능 분산,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을 통한 획기적인 주거환경개선, 상업.업무.문화.교육 등 다양한 기능이 복합된 경제 중심지로서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강남 개발은 강북 지역의 개발 제한과 쇠퇴를 초래하고, 강남으로의 인구 및 자원 집중이 가속화되면서 강남은 급성장한 반면, 강북은 상대적으로 낙후되는 결과를 낳았고, 막대한 부동산 투기를 야기했으며, 주택 가격의 폭등은 강남을 중심으로 심화되어 이는 자산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강남은 '부'와 '성공'의 상징이 되면서, 강남 거주 여부가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되는 현상을 초래하고, 강남과 비강남 지역 주민들 간의 사회적 위화감과 계층 갈등을 심화시키고, 과도한 교육열과 사교육 경쟁 심화로 인한 교육 불평등 문제도 야기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강남 개발은 대한민국 압축 성장의 상징이자 결과물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강남-강북 불균형 문제는 지속적인 도시 정책의 과제로 남아 있다.

혁신도시는 2003년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방침'이 발표되면서 시작되었고, 2005년에 10개 혁신도시의 입지가 최종 선정되었다. 공공기관 이전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019년에 대부분 완료되었다.

혁신도시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및 기능 집중을 완화하고, 국토의 전반적인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자 수도권에 소재한 공공기관들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이전된 공공기관들을 중심으로 지역별 성장 거점을 육성하고 거점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전국에 총 10개의 혁신도시를 조성했다.

단순히 공공기관을 이전시키는 것을 넘어, 이전된 공공기관과 지역의 대학, 연구소, 산업체, 지방자치단체가 서로 협력하여 '산·학·연·관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거점 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공공기관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동반 이주하여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 문화, 복지, 보건의료 등 수준 높은 생활 환경을 갖춘 친환경적인 도시 공간을 조성하고 우수한 교육환경을 마련하는 미래형 도시를 건설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도시 조성으로 인한 원도심 쇠퇴는 인구 유출, 상권 침체, 지역 경제 활력 저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며, 특히 중소도시에 조성된 혁신도시에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관찰되고있다.

김천시의 경우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기술,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주요 공공기관들이 이전하여 혁신도시에는 인구가 유입되고 신규 상권이 형성되었지만, 기존 김천 원도심(평화동, 남산동 등)에서는 인구 유출과 상권 침체가 가속화되었고, 젊은 층과 고소득 계층이 혁신도시로 이동하면서 원도심의 활력이 크게 저하되었고, 빈 상가와 노후 건물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주시는 한국전력공사, 한전KPS, 한국농어촌공사 등 대규모 공공기관이 이전하면서 대규모 혁신도시 조성으로 인해 나주시 전체 인구는 증가했지만, 기존 나주 원도심(특히 영산포 일대)은 급격한 쇠퇴를 겪고 있다. 혁신도시 내에 신규 상업·주거 시설이 집중되면서 원도심 상권은 큰 타격을 입었으며, 젊은 층의 이탈로 고령화가 심화되고 원도심의 역사 문화적 자산을 활용한 재생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도시가 원도심의 인구와 부동산 가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진주시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이 이전했으나 혁신도시 조성 이후 신도심과 원도심 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어 혁신도시 인근 충무공동의 인구는 크게 증가한 반면, 기존 진주 원도심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특히 초등학생 수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젊은 세대의 혁신도시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원도심의 상가 공실률이 급증하고, 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등 심각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 곳의 혁신도시를 살펴보았으나, 나머지 7곳의 혁신도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남의 개발로 강북이 상대적으로 저개발되는 부작용이 생겼듯이 혁신도시의 개발로 원도심의 쇠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위 사례들은 혁신도시가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 원도심의 인구 유출과 상권 침체라는 역효과를 초래하고, 특히, 중소도시에 조성된 혁신도시일수록 원도심의 쇠퇴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혁신도시 10개는 지방도시에 미니 강남을 개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강남개발과 혁신도시의 개발이 주거지 밀집지역을 피한 도심 외곽에 건설하게 된 주된 이유가 토지 보상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강북을 고밀화하거나 원도심을 고밀개발하는 것은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 출생률이 0.75명으로 연간 출생아수가 23만 8천명인 지금 학력고사 응시생수만 70만명을 경험한 세대 입장에서 볼 때 도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정책은 미래세대에게 슬럼화된 원도심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2060년에는 빈건물과 빈집이 넘쳐나고, 초고령화로 간병로봇과 휠체어를 탄 노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TV 다큐프로그램의 경고를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강남을 개발했다지만 결과적으로는 강남을 고급 주거지로 만들었고, 역시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혁신도시를 만들었지만 혁신도시를 고급 주거지로 만드는 지역별 불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이 다시 또 진행된다면 국토의 균형발전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혁신도시가 입주하기 시작한 2012년 수도권인구가 2,467만명으로 49.34%, 2019년에는 2,584만명으로 49.98%, 2024년에는 2,640만으로 51.59%로 혁신도시가 지정된 이후에도 수도권의 인구집중은 예외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혁신도시로 인해서 수도권집중이 완화되었다는 수치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또다른 강남과 강북을 지방소도시마다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3기 신도시가 아직 짓지도 않았는데 4기 신도시를 꺼내는 것도 너무 성급하다. 더 이상 도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신도시 개발 보다는 경제적 비용이 들더라도 원도심을 고밀화하는 압축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토의 균형발전이 이루어진다.

현정부의 공약사항인 해양수산부의 부산이전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전되는 해양수산부는 부산외곽 신도시에 둥지를 틀지 말고, 가장 낙후된 원도심지역에 임시 이주하고, 그 곳에 신청사를 지었으면 한다.

강북과 지방의 원도심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