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는 방시형 하이브 이사회 의장. 사진=서울대학교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 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제 묘비에는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이 말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2019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축사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한마디로 세상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항해 분노하고 상식이 구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후배들에게 자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시혁은 그 축사를 한 지 약 1년 8개월 만인 2020년 10월 자신이 대주주인 하이브를 상장했고, 상장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상 사기적부정거래 혐의로 증권선물위원회에 의해 지난 16일 검찰에 고발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 가지고 장난치면 패가 망신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이후라서, 제 1호 패가망신 사례가 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번에 고발된 방 의장의 사기적부정거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본인이 분노의 대상으로 지적한 불합리와 부조리에 해당된다.
우선 일반 투자자들의 눈물을 쏙 뺀 사례로서, 신규상장(IPO) 시 대주주의 주식을 일정기간 매각할 수 없는 대주주지분 보호예수의무를 편법적으로 피해가면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긴 것이다. 상장 이전에 본인 주식의 상당부분을 사모펀드(PEF)로 미리 옮겨놓아, 상장 후 이 지분을 시장에서 대거 매각해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이다. 하이브 주식은 공모가 13만5000원이었는데, 상장 당일 35만원까지 치솟았지만 일주일 후 15만원대로 폭락했다. 방시혁이 본인 지분을 옮겨놓은 PEF는 상장 첫날부터 매각을 시작해 나흘간 전체 지분의 5%를 매각하면서 주가를 폭락시켜 개미투자자들을 울렸다. 결과적으로 개미들의 피, 땀, 눈물에 더해 희망까지 빼앗아가 자신의 욕심을 채운 것이다.
여기에 하이브 동업자들을 포함 비상장주식을 가진 주변 사람들에게 “하이브는 절대 상장할 계획이 없다”면서 그래도 매각할 수 있는 PEF를 소개해주겠다고 하고는 방 의장 본인이 개입된 PEF에게 매각하도록 해 대부분의 초기 동업자들이 주식을 넘겼는데, 그 주식을 1년도 안돼 상장한 것이다.
방 의장은 이 기획PEF와 주식 매각으로 얻은 이익의 30%를 가져간다는 비밀 협약까지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방 의장이 취한 이득이 총 4000억원에 달한다는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의 추정이다.
일반 개미투자자들의 주머니와, 주변 자본 참여 동업자들과 지인들의 주머니까지 싹싹 긁어간 것이다.
방 의장은 서울대학교에서 축사를 통해 후배들에게 불합리와 부조리에 분노하며 싸운다고 말 하는 그 순간에 이런 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고, 상장을 준비하면서 동업자들에게는 상장 계획이 없다고 하면서, 동업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그의 상식에 개미투자자들의 눈물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거름에 불과했던 것이다.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하나 둘 군대 제대를 통해 다시 뭉칠 것이 기대되는 BTS(방탄소년단)과 하이브 주가도 오리무중이 됐다. 자본시장법 위반의 경우 현재의 범죄금액으로는 무기징역까지 나올 수 있다.
방시혁 의장의 편법 주식 장난질 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같은 날 증선위는 메리츠화재 사장급을 지낸 모 씨와 상무급 1명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2022년 11월 메리츠금융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합병한다는 계획을 미리 알고(미공개 정보 취득) 메리츠금융 주식을 대거 매수해 수억원의 차익을 남긴 혐의다.
신풍제약 창업주 2세인 장원준 전 대표는 2021년 개발 중이던 코로나19 치료제의 2상 시험에서 유효성이 떨어지자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던 송암사가 가지고 있는 신풍제약 주식을 대량으로 처분해 369억원의 손실을 회피했다. 그만큼 개미투자자들의 호주머니가 털렸다. 이 당시 신풍제약 주식 블록딜 주관사도 메리츠증권이었다. 신풍제약은 현재 수사중에 있다.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간 기업의 악재성 미공개 정보이용 혐의자 29명 중 13명이 대주주였다. 임원이 10명, 직원 1명, 1차정보수령자 24명 등으로 부당이득 규모는 대주주 275억원을 포함해 총 494억9000만원이라고 밝혔다.
물론 빙산의 일각일 테지만, 기업과 운명을 함께 해야 하는 대주주 개입 상황이 심각하다. 이래가지고서야 코리아프리미엄이 생길 수가 있겠나. 그리고 그동안 감독기관은 뭘 하고 있었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전 일본 서일본신문에는 눈길을 끄는 사고(社告)가 났다. 내용은 “본 신문사의 광고직원이 고객이 보낸 공시광고 내용을 미리 접하고 주식투자를 해, 그 직원을 해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체 감사에 걸려 해당 직원을 해고하고, 독자들과 주식투자자를 비롯한 일본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한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 걸리면 패가 망신시킨다”고 대통령이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우리나라 유가증권 시장은 너무나 썩었다.
이재명 정부가 이러한 깊고 오랜 썩은 상처에 대한 대 수술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얼마나 큰 성과를 얻을 지는 미지수다. 정부 감독기관의 기강이 바로서야 하는데, 그동안의 모습을 보면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 감사기관에 대한 감사부터 대대적으로 하고, 그 다음에 검증된 사람들이 메스를 들고 시장의 문제점을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하지 않을까?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