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의대생 증원 관련 다양한 설문조사가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점 해결과는 거리가 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질문이 본질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전자담배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에 60%가 "예"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람들에게 "공공장소에서 전자담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면 70%가 "아니오"라고 답합니다.
논리적으로는 같은 의견을 묻는 질문인데 10%포인트나 차이가 나는 이상한 현상.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 업계를 수십 년간 괴롭혀온 '금지-허용 비대칭성'입니다.
1986년 밝혀진 이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정치 여론조사, 정책 조사, 기업 설문에서 결과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1986년 독일 연구진의 놀라운 발견
독일 만하임 대학교의 히플러(Hippler)와 슈바르츠(Schwarz)는 미국에서 발견된 이상한 현상을 독일에서도 검증해보기로 했습니다. 미국의 여론조사에서 "금지해야 하는가"와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논리적으로 동일한 질문이 서로 다른 결과를 보인다는 보고 때문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독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동일한 정책 이슈에 대해 절반에게는 "금지" 형태로, 나머지 절반에게는 "허용" 형태로 질문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책에 대해 "금지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27.7%였는데, 논리적으로 같은 의견이어야 할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0%였습니다. 무려 22.3%포인트의 차이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현상이 언어나 문화에 따른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는 점도 확인되었습니다. 미국과 독일에서 모두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으며, 이는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 특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금지’와 ‘허용’의 숨겨진 강도 차이
연구진은 이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이 각 표현을 얼마나 강하게 인식하는지 측정했습니다. 11점 척도를 사용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금지해야 한다"는 표현은 매우 강한 반대 의견으로 인식되어 10.5점을 받았습니다. 반면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상대적으로 약한 9.2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허용해야 한다"는 강한 찬성 의견으로 2.1점을 받았지만, "금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3.1점으로 더 약한 찬성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는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금지’나 ‘허용’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더 강하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인식하는 반면, ‘금지하지 않음’이나 ‘허용하지 않음’같은 부정형 표현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어학적 관점에서도 이는 설명됩니다. ‘금지하다’나 ‘허용하다’는 적극적인 행위동사인 반면, ‘금지하지 않다’나 ‘허용하지 않다’는 소극적인 현상 유지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무관심한 응답자들이 만드는 왜곡
그렇다면 누가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연구진은 응답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분석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해당 이슈에 대해 확실한 찬성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질문 형태와 상관없이 일관된 답변을 했습니다. "금지해야 한다"에는 "아니오", "허용해야 한다"에는 "예"라고 답하며 논리적 일관성을 보였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확실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역시 "금지해야 한다"에는 "예", "허용해야 한다"에는 "아니오"라고 일관되게 답했습니다.
문제는 세 번째 그룹, 즉 해당 이슈에 무관심하거나 뚜렷한 의견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금지해야 한다"와 "허용해야 한다" 모두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었습니다. 무관심한 응답자들은 어떤 적극적인 조치든 반대하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금지’든 ‘허용’이든 모두 부담스러운 변화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런 현상은 실제 정치와 정책 분야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치인들이 정책 여론조사를 할 때 질문 형태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세금을 도입해야 한다"와 "새로운 세금 도입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적으로 같은 질문이지만, 후자가 더 높은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론 보도에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납니다. 같은 정책에 대해서도 ‘금지’ 프레임으로 보도하느냐 ‘허용’ 프레임으로 보도하느냐에 따라 여론 형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곡을 방지하는 세 가지 방법
그렇다면 이런 왜곡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까요? 연구진들이 제시한 해결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중간 응답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찬성’, ‘반대’만 있는 이분법적 선택 대신 ‘관심 없음’, ‘상관없음’, ‘현 상태 유지’ 같은 중립적 옵션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5점이나 7점 척도를 사용하면 무관심한 응답자들이 자신의 입장을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금지 형태와 허용 형태의 질문을 모두 사용하고 그 결과의 평균값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자담배 금지" 질문에서 60% 찬성, "전자담배 허용 반대" 질문에서 70% 찬성이 나왔다면, 평균 65%를 실제 반대 의견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질문 형식에 의한 편향을 일부 상쇄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응답자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맥락을 사전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해당 이슈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하면 무관심을 줄일 수 있고, 질문의 의미와 응답 옵션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하면 응답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도전
온라인 설문조사가 급증하는 디지털 시대에는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응답자들이 질문을 충분히 숙고하지 않고 빠르게 답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는 화면 크기 제약으로 인해 질문 맥락이나 설명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워, 무관심한 응답자들의 성급한 판단이 결과를 더욱 왜곡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독립신문
<참고문헌>
Hippler, H.-J., & Schwarz, N. (1986). Not forbidding isn't allowing: The cognitive basis of the forbid-allow asymmetry. The Public Opinion Quarterly, 50(1), 87-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