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상. 아리스토텔레스의 법률적 정의에 대한 해석에 따라 법치의 개념이 달라진다.

진정한 법치는 하늘의 도리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법 위에 군림하는 자가 없는 게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 철학과 정치학의 뿌리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정의의 한 부분은 자연적인 정의이며 또 다른 한 부분은 법률적인 정의이다. 자연적인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같은 힘(dynamis)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힘은 그렇게 합의하는지 여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법률적인 정의는 애초에 이러한 방식으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규정되든지 간에 아무 차이가 없었던 것이나 일단 그 규칙을 규정했을 때에는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적 정의의 부분 중 자연적인 정의와 법률적인 정의 둘을 나눈다. 현대 법철학에서 자연법과 실증법의 구별과 내용적으로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구분은 상대주의가 법률적인 정의만을 인정함으로써 정의의 상대주의를 용인하는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적 정의는 장소와 상관없이 동일한 힘을 가지고 있다. 법률적 정의는 이렇게 정할 수도 있었고 저렇게 정할 수도 있었던, 제정에 있어서 폭을 가지고 있던 정의이다. 그러나 일단 정해지면 규제력을 갖기 시작하는 정의이다

정의와 관련한 상대주의 논변은 도시마다 정의를 규정하는 법률이 다르다는 관찰에서 성립한다. 만약 도시마다 다를 수 없고 동일한 자연적 정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법률적인 정의만을 인정한다면 정의는 도시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 법철학에서 보이는 자연법은 인류 보편의 정의를 설정하는 것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에 해당한다. 실증법은 각 지역이나 체제마다 다른 법 체계를 뜻하므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에 해당한다.

정의로운 국가는 '법의 지배'를 실현하고, 붕의한 국가 즉 정의롭지 않은 국가는 '법에 의한 지배'를 추구한다. 정의롭지 않은 국가는 법 위에 군림하는 사람,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만드는 데 그게 바로 사회주의 국가, 공산주의 국가, 독재 국가이다.

동양에서 얘기하면 법의 지배는 하늘의 도리를 실현하는 것이며, 법에 의한 지배는 하늘의 도리가 아니라 인간 관계에 의한 지배를 말하지 않을까 싶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법 파기환송심을 담당하는 서울 고법 재판부가 18일로 예정됐던 재판을 사실상 무기 연기하면서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고 말했다. 헌법 84조는 내란 등을 제외하면 대통령 재직 중 형사상 소추(訴追)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진행 중인 형사재판이 여기에 포함되는지 아닌지를 두고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의 지배’인지 ‘법에 의한 지배’인지, 그것에 따라 정의로운 나라인지 정의롭지 못한 나라인지를 고려하면 사실 답은 나와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법치국가라는 개념 요건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일까?

코라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