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불법 부정거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어지는 이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서,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첫날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오랜만에 볕이 들었다. 코스피가 3년 5개월만에 2900선을 돌파해, 3000을 코앞에 뒀다. 이재명 대통령이 장담한 5000까지 갈 지에도 관심이 쏠리게 됐다.
근래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뜨거워진 이유는 외국인들의 귀환이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9개월 동안 줄기차게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돈을 빼가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6월 들어서 하루에 1조원어치씩 순매수 하면서 주가지수를 가파르게 올리고 있다.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열려있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 전망치를 3100으로 발표했다.
외국인들이 그동안 한국 증권시장을 떠난 배경은 시장이 공정하지 못하고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주주 맘대로 기업 쪼개기나 떼었다 붙였다 하는 물타기를 해서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고, 느닷없이 기습증자를 해서 주가를 떨어트리는 등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주주 모시느라 일반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줬기 때문일 것이다.
배당에도 인색해, 우리나라는 2% 대 초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지정학적인 리스크가 있는 대만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2배 가량인 4% 이상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프로그램’은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프로그램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해간 시점은 바로 지난해 9월 밸류업 지수 기업 발표 시점부터였다. 당시 이복현 금감원장이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두고 외신들은 일제히 코리아 밸류업 아니고 밸류 스테이 또는 밸류다운이란 표현을 썼고, 심지어 밸류킬이라는 제목을 달기도 했다.
외신들이 당시 불신한 이유는 2024년 9월 24일 발표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종목 100개에 대한 선정 배경이 엉터리였다는 것이었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바로 다음날 “(거래소가 발표한) 종목 100개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며 “밸류업 지수가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거래소가 빨리 깨닫길 바란다. 밸류업 벤치마크를 뛰어넘는 것은 한국 기관 투자자들에게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홍콩계 투자은행 CLSA도 ‘밸류 다운?(Value-dow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구성 종목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구성 종목을 바꾸지 않는다면 (밸류업) ETF로 자금 유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종목 선정에서 실패한 밸류업 지수가 당초의 좋은 의도를 완전히 평가절하시킨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외국인들이 빠져나가면서 주가지수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밸류업 지수를 발표한 2024년 9월 24일 코스피는 2631.68이었는데, 하루 다음날인 25일 주가는 2596.32로 35.36%p 하락했다. 이 후 코스피는 연말까지 꾸준히 미끄러져 12월 30일 장 마지막날 2399.49로 끝났다. 232.19%p 빠진 것이다.
물론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비상계엄의 영향도 컸다. 비상계엄 당일 코스피는 2500.10이었지만 당일 밤 비상계엄 선포 이후인 다음날 2464.0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12월 내내 하락했다.
윤 정부가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종목 선정이 잘못됐다고 외신이 지적한 이유는 종목 선정에 있어서 실제 밸류와는 거리가 먼 기어들이 상당수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배당 안하기로 유명한 삼성전자, 주주환원에 대표적으로 소극적인 엔씨소프트, 에스엠, JYPEnt 등, 물적분할 등으로 소액주주와 분쟁을 벌인 DB하이텍, 두산밥캣 등, PBR 고평가주인 한미반도체, 포스코DX 등이 종목에 편입됐던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 은행 중에서 횡령 1위, 회수율 꼴찌에다 전 은행장의 700억원 대 부당대출을 저지른 우리금융지주가 편입돼 지수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렸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없애든지 아니면 대 수술을 하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를 방문해 공정한 증권시장 조성을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의 배당에 대한 ‘과감한 인센티브’로 배당성향을 높이고, 배당에 대한 분리과세를 할 것인지도 고민하겠다는 등 호재성 발언을 내놨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내놓은 증권시장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주가조작세력 척결’과 상법개정 등을 통한 ‘대주주의 횡포 근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반 주식투자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공정하고 건전한 운동장을 만들어 시장의 체력을 키우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외국인들 자금이 들어오게 된 계기는 아마 ‘상법 개정안’ 재추진 기대 때문일 것이다.
주가가 오를만하면 느닷없이 기업 쪼개기를 해서 개미투자자들의 쌈지돈을 뺏어가고, 우량기업을 맘대로 다른 기업 밑으로 붙이면서 기업 가치를 왜곡시켜 또 개미들 눈물을 짜내고, 자본금의 상당비중을 기습적으로 증자해 주가를 떨어트리고 하는 대주주 횡포가 앞으로는 어느 정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외국 자금을 다시 돌아오게 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불법 부정거래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어지는 이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서, 대한민국 주식시장에서 장난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첫날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우리 국민께서 이제는 주식 투자를 통해서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할 수 있게,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면 기업이 자본 조달도 쉬울 것이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 할 것”이라며 “그 핵심 축에 증권시장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모든 정부는 주가 부양을 위해 연기금 등을 동원해 억지로 주가를 붙드는 일종의 모르핀 처방을 해왔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를 냈을 뿐이었다. 증권시장 자체가 건전하면 기업의 가치에 따라 주가는 당연히 오르게 돼있고, 그 밸류를 투자자들이 공유하면서 시장은 활기를 찾게 된다.
이 대통령의 증권시장 체력 보강을 위한 구상이 결실을 맺어, 그동안의 밸류다운이 진정한 밸류업으로 바뀌는 변곡점을 맞길 바란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