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협의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일행이 29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협상 휴전 기간이 다시 90일 연장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양국간의 무역전쟁이 재개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재개될 경우 그동안 무역협상 합의를 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비롯해 최근 합의에 이른 일본, EU등과의 협상 내용에도 변화 가능성이 높고, 협상 시한을 이틀 남겨둔 한국과 미국간의 협상 내용에도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폭탄이란 무기를 들고 나온 가장 큰 배경은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개선과 글로벌 패권전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 내용은 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베센트 재무장관은 중국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틀에 걸쳐 벌인 무역협상에서 8월 11일 만료되는 관세유예조치를 90일 간 추가로 연장하기로 합의하고, 트럼프의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이번 스톡홀름 협상은 양국간의 세 번째 협상으로서 유예기간을 보름 남긴 시점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인 협상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됐지만, 기대와는 달리 서로간의 이견만 확인한 채 실질적으로는 협상 결렬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 관영통신은 이날 “미중 양국의 당초 합의에 따라 미국 상호관세 24% 부분과 중국의 반격 조치에 계속 유예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대표단 일원인 리청강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부부장(차관)의 말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양국 경제·무역팀은 양국 정상이 6월 5일 통화에서 만든 공동인식에 따라 미중 경제·무역 협상 메커니즘의 가동됐고, 양국간 중대한 의제와 관련 심도있는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인 중국측과는 달리 미국측 참석자였던 그리어 USTR(백악관 무역대표부) 대표는 현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는 워싱턴 DC로 돌아가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중 협상팀 간에 잠정 합의한 사항이) 원하는 바인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현재까지의 협의 내용에 대해 트럼프의 결심이 필요하다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미국은 스톡홀름 회담을 비롯한 그동안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당초 얻어내려던 것을 별로 확보하지 못하고, 중국에게 오히려 칼자루를 뺏긴 모습을 보이면서 트럼프의 행보가 꼬이게 됐다.

미중 협상 대표자들은 지난 5월 10∼11일 스위스 제네바 회담, 6월 9∼10일 영국 런던 회담에 이어 이번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번째 고위급 무역협상을 열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앞으로 90일 간의 지루한 공방이 계속 이어지면서 글로벌 금융 및 무역시장은 혼선이 지속되게 됐다.

앞서 양국은 1차 협상을 통해 서로 100% 넘게 부과하던 관세(미국은 중국에 145%, 중국은 미국에 125%)를 각각 115% 포인트씩 대폭 낮추기로 합의했다.

양국간의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트럼프의 복심인 베센트 재무장관의 발언을 통해 읽혀진다. 베센트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하지 않을 경우 대중 관세는 4월 2일 수준인 34%로 되돌아가거나 별도의 관세가 정해질 수 있다”고 말해 협상이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이어 일본과 EU에 ‘관세 폭탄’으로 협박하며 대규모 투자와 수출시장 개방, 그리고 비관세장벽 철폐를 관철시켜온 트럼프가 가장 중요한 중국과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앞으로 글로벌 금융시장과 무역 질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협상 마감시한 이틀을 남기고 최종 협상을 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과 불안에 휩싸이게 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요구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25% 상호관세를 낮춰주는 대신 미국에 대한 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 참여, 미국 LNG 등 석유 수입 확대, 미군 주둔 비용 부담 증액, 30개월 이상 된 소고기, 쌀 등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에 더해, 미국 내 조선산업 이전 등이다. 여기에 비관세장벽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데, 환율 인하, 디지털규제 철폐, 고정밀지도 반출 등등 수많은 청구서가 협상 테이블 위에 놓여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의 협상에서 밀린 트럼프가 위상 회복을 위해 애꿎은 한국을 때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자칫 트럼프에게 종자돈까지 뺏길 가능성도 생겼다.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는 우려가 서서히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일본과 같은 수준인 최대 15%까지는 상호관세를 낮춰야 하는데, 트럼프는 협상 조건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15% 이상 20%대까지 올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을 희생양으로 중국과의 패배를 만회하려는 트럼프를 상대하기에 우리나라가 쓸 무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조기 대통령 선거로 인해 협상 시기를 놓치면서 막판에 몰린 상태에서 미중간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그 불똥이 고스란히 우리나라로 튀어버린 것이다.

일단 오늘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혼조 속에 보합권에 머물렀지만, 여차 하면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은 열려있다. 오늘(30일) 코스피는 0.74% 오른 3254.47, 코스닥은 0.10% 하락한 803.67로 마감했다.

현재 구윤철 기획재정부장관과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간의 최종 협상이 워싱턴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중국 허위펑에게 패배하고 돌아온 베센트가 어떤 무기로 구 장관을 공격하고, 구 장관은 어떤 무기로 방어할 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