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호반그룹과의 경영권 싸움 속에서 자사주 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해 의결권을 부활시켜 지분 20.66%로 늘리는 꼼수를 부렸지만, 오는 6월 3일 대선 결과에 따라 10.58%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의 입장 변화가 예상되면서 경영권 향방이 안개속으로 접어들게 됐다. 사진=한진그룹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호반그룹 간의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자사주 44만44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기로 해 조 회장의 꼼수 지분확대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에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한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 보통주 기준 0.66%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 회장 측 지분은 이번 출연으로 의결권이 부활돼 기존 19.96%에서 20.66%로 늘어나 지분 경쟁에 나선 호반그룹이 가지고 있는 지분 18.46%와의 지분율 격차를 1.5%에서 2.16%p로 벌렸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자사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해 지분율을 높인 것에 대해 자사주의 일반적인 성격을 왜곡시켜 꼼수로 경영권을 지키려는 행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사주는 기본적으로 소각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성격으로서 주주가치를 지키는 밸류업 차원에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조 회장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복지기금으로 성격을 바꿔 의결권 있는 지분으로 둔갑시킨 것은 자기 돈을 들이지 않고 벌인 경영권 방어를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다.
현재 한진칼의 지분구조를 보면, 이번에 자사주의 의결권을 부활시키면서 조원태 회장 측이 20.66%가 됐고, 이어서 호반그룹 18.46%, 델타항공 14.90%, 산업은행 10.58%, 소액주주 16.52%, 기타 18.92%로 돼있다.
일단 지분구조상으로 조 회장 측 지분이 많지만, 호반그룹과 격차가 미미해 호반그룹이 추가로 지분을 취득할 경우 본격적인 지분경쟁과 함께 호반그룹이 한진그룹을 인수할 가능성도 열려있는 상황이다.
관건은 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10.58%의 향방이다. 산업은행은 2020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당시 8000억원 규모로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10.58%를 취득하고, 조 회장 측의 우호지분이 됐다.
■한진그룹의 1차 경영권 분쟁…백기사 산업은행 도움으로 조 회장 경영권 확보
한진그룹의 1차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2018년 11월 ‘행동주의 펀드’인 케이씨지아이(강성부펀드)가 한진칼 지분 9%를 가지고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시작됐었다.
당시 강성부펀드의 강성부 대표는 한진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논란과 후진적 지배구조를 비판하면서 투명 및 도덕경영을 요구하며 경영 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2014년 조현아 당시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은 대표적인 오너일가의 갑질행태 사례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비난에 휩싸였다. 조원태 회장은 2000년 교통법규 위반을 하고는 단속하던 경찰관을 치고 도주하다 시민에게 붙잡히고, 2005년에는 70대 할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고, 2012년에는 인하대에서 1인시위를 하던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재벌 3세로서의 갑질행태를 벌였다.
조현민 한진 사장은 2018년 당시 전무 신분으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광고시안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물세례를 퍼부어 국민 공분을 샀다. 3남매의 일탈에 더해 조양호 회장과 부인 이명희 부부의 갑질도 국민감정을 건드렸었다.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은 운전기사에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얼굴에 침을 뱉고 물컵을 머리에 던지고, 가사도우미에게는 무릎을 꿇리고 책을 집어던지고, 플라스틱 삼각자를 던져 턱에 맞히는 등 수많은 폭행과 함께 입에 담기 어려운 쌍욕을 일삼아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은 바 있다.
2019년 3월 27일 주주총회에서는 조 회장 일가가 에이전트 회사를 끼워서 중간 수수료를 챙기고 회사에 196억 원이 넘는 손해를 입힌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조양호 회장을 사내이사에서 해임해 조 회장은 20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사내이사 해임 결정 2주 만에 폐 질환이 악화돼 사망했다.
강성부펀드는 조양호 회장 사망 이후인 2020년 경영권 싸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형제간 경영권 싸움을 하고 있는 조현아 전 사장, 반도건설과 주주연합을 결성해 조원태 측과 지분경쟁을 벌였다.
당시 주주연합 지분이 47.71%, 조원태 측이 41.3%로 주주연합이 유리했지만, 갑자기 산업은행이 8000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 10.58%를 취득하고 조원태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권 분쟁은 2021년 4월 조원태의 승리로 끝났다.
■한진그룹의 2차 경영권 분쟁...6·3 대선 이후 차기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될 듯
그러나 조원태 회장 체제 4년 만에 호반그룹이 한진칼의 지분을 늘리면서 경영권 분쟁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호반그룹은 조원태 회장이 승리한 1년 후인 2022년 3월 처음 17.43% 지분을 확보한 이후 수차례 지분을 매도·매수 한 끝에 지난 15일 한진칼 지분 1.01%를 추가해 18.46%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경영권 싸움의 결과는 지난 1차 경영권 분쟁 때와 마찬가지로 산업은행의 결정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2020년 한진칼 유상증자에 참여해 조원태 회장에게 힘을 몰아줬지만, 보호예수가 끝난 2021년 12월 이후인 지금까지 지분을 들고 있으면서 조 회장 백기사 노릇을 하고 있다. 결국 한진그룹의 조원태 회장 체제는 현재 정부가 백기사 노릇을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정부의 돈이 투입된 만큼, 적정 이익이 났을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지분 매각에 나서야 하는 입장인데 여전히 들고있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을 인수한 2020년 11월 시점의 주가는 평균 7만원대였지만, 현재는 12만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산업은행이 투입한 8000억원은 현재 주식가치로 1조3000억원이 넘는다.
산업은행의 입장은 이번 6월 3일 열리는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산업은행의 판단이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미 보호예수기간이 3년 반이나 넘었기 때문에 언제든 지분 매각을 통해 정부 예산을 회수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차기 정부의 입장에 따라 산업은행 지분을 누구에게 매각할 지가 결정될 것이고, 그에 따라 한진그룹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한진그룹 경영권 향방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마당에 이번 조원태 회장의 0.66%에 불과한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 시도는 꼼수 이상은 될 수 없다는 비난만 받게 됐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