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현대에서 가장 저명한 정치철학자이자 하버드대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현자이다. 그가 2010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 는 한국에서만 2백만권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로 대부분의 집에 한 권쯤은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내심 있게 끝까지 읽은 독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다른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트롤리(기차) 이야기"는 책을 사지 않은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었을 에피소드이다. 트롤리가 브레이크의 고장으로 직진을 하면 5명의 인부가, 방향을 틀면 1명의 인부가 죽게 된다는 걸 예로 들고 당신이라면 어느 길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그러지 말고 육교 위에 있는 뚱뚱한 사람을 밀어 떨어뜨려 트롤리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이른바 "선택의 딜레마"이다.
사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마이클 샌델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이 생각하는 "정의"의 개념에 대해서는 명확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정의란 공리나 행복의 극대화라고 하는 공리주의나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하는 자유(지상, 평등)주의를 비판하면서 어떤 이는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하면서 샌델은 이 방식을 좋아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의 내용 중 샌델이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문제점과 이의 해결방안으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 경기도와 GH경기주택도시공사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간복지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원문에 충실하게 해당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내 빈부격차는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1930년대 이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런데도 불평등은 정치문제로 확대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정치가 불평등에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철학자들도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치철학 논쟁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공리나 합의라는 맥락에서 바라보는 성향이 있고, 그런 탓에 정치 청문회를 열고도 남을 도덕과 시민성 회복의 핵심인 불평등에 반대하는 주장을 간과하고 만다.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자를 도우려는 일부 철학자들은 부자에게 100달러를 가져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면 부자의 행복은 아주 조금 줄지만 가난한 자의 행복은 훨씬 더 커진다고 공리라는 이름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존 롤스도 재분배를 옹호하지만, 그 근거는 가언합의다.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가언적 사회계약을 생각해 본다면 누구라도 재분배 원칙에 동의하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인의 삶에서 불평등 심화를 걱정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빈부격차가 지나치면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 의식을 약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왜그럴까? 불평등이 깊어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점점 더 괴리된다.
풍족한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그 결과 도심 공립학교에는 대안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만 남는다. 학교뿐 아니라 다른 공공 제도나 시설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사설 헬스클럽이 시에서 운영하는 체력단련장과 수영장을 대체한다. 상류층 지역에서는 경찰에 의존하기 보다는 사설 경비업체와 계약한다. 자동차도 한 집에 두세 대가 되다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처럼 부유층이 공공장소나 공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되면서, 그것들은 달리 대신할 수단이 없는 서민들만의 몫이 되어버린다.
이 때 두 가지 악영향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재정문제이고 ,또 하나는 시민의식문제이다. 우선 공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납세를 꺼리게 되면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둘째,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곳에 학교, 공원, 운동장, 시민회관 같은 공공시설이 들어서지 않는다. 한 때 사람들이 모이고 시민의 미덕을 가르치는 비공식 학교 구실을 했던 공공시설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공적 영역이 비어버리면 민주 시민 의식의 토대가 되는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불평등은 공리나 합의에 미치는 영향과는 별개로 시민의 미덕을 좀먹는다. 시장에 매료된 보수주의자들과 재분배에 주목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손실을 간과한다.
공적 영역이 잠식되는 것이 문제라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시민 삶에 기반이 되는 시설들을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시설의 소비를 늘리기 위한 재분배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세금을 걷어 공공기관과 공공서비스를 다시 일으킴으로써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똑같이 그것을 이용할 마음이 생기게 할 수 있다.
앞선 세대는 연방정부의 고속도로 정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고, 그 덕에 미국인들은 전에 없던 개인적 기동성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자가용, 도시팽창, 환경문제, 공동체를 좀먹는 생활방식에 의존하게 되었다. 우리세대도 시민의 삶을 개선하는 주요한 기반시설에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공립학교, 상류층 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 체계, 그리고 보건소, 운동장, 공원, 체력단련장, 도서관, 박물관처럼 사람들을 닫힌 공동체에서 끌어내 민주시민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시설 등이 그것이다.
불평등이 시민에게 미치는 결과와 그것을 바로잡을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면, 비슷한 소득 재분배 주장으로는 불가능한 바람직한 정책을 찾아내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분배정의와 공동선의 연관성을 강조할 수 있다(이상, 367-369p).』
이상의 내용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바꾸어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물론 본문에 나오는 공원, 보건소, 체력단련장, 도서관 등이 공간복지시설이라는 것을 마이클 샌델은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간복지를 생각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2024.12.9)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10%의 순자산 점유율은 44.4%로 2023년에 비해 1% 상승했다. 그에 비해 9분위와 8분위는 각각 0.2%, 0.3% 감소한 걸로 조사되었다. 또한 전체가구의 56.9%가 3억원 미만의 순자산을 보유하며, 10억원 이상인 가구는 10.9%로 조사되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불평등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마이클 샌델이 주장하는 연대의식, 공동선, 시민의 미덕, 시민의식 등을 시민사회에서 구현하고, 갈수록 확대되는 소득 및 자산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소득을 조정하는 방식보다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복지를 구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 Michael J. Sandel, 2010년, 김영사)에서 주요내용을 발췌해서 작성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