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월 3일 임기를 마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한국거래소
윤석열 대통령 시절 실질적인 경제 핵심 역할을 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오는 6월 5일 임기를 마친다. 대통령 선거 이틀 뒤니까 이래저래 물러나게 된 것이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호가호위 해온 것으로 평가 받는 만큼 당분간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임기 내내 정제되지 않은 섣부른 발언으로 시장의 혼란을 야기시켰고, 우리은행의 고질적인 비리를 근절시키지 못한 채 물러나게 돼 외화내빈이란 평가를 남기고 떠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내내 금융권에서는 경제 전반에 걸쳐 “대통령의 복심은 이복현이다”란 말이 있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은 경제 현안과 관련해 경제수석이나 금융위원장은 물론 기획재정부장관보다 이복현 금간원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독립적인 금융 감독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위원회 산하 조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금융위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데, 이 원장 재임 중에는 오히려 금융위가 금감원의 눈치를 보는 역전현상이 벌어져 혼선을 빚은 경우가 많았다.
전 금융위원장인 김주현 위원장은 아예 이복현 원장의 지시를 받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해 김주현 허수아비설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역시 다르지 않다. 다음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실질적으로 마지막 월례기자간담회라고 할 수 있는 지난 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좌충우돌 발언’에 대해 상급기관장으로서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 대응을 그렇게 느꼈다면 리더십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문제점은 금융위와 금감원의 명확하지 않은 업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체계는 금융위는 정책을 금감원은 집행을 각각 담당하는 이원구조로 돼있지만, 실제 업무에들어가면 중복기능이 허다하고 업무분장이 명확하지 않은 데서 오는 업무 사각지대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금융위는 국무총리 산하 중앙행정기관으로서 금융산업정책 수립, 법령 제·개정, 금융기관 인허가 및 제재 최종 결정을 담당하는 등 거시적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금감원을 지휘 및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금감원은 비영리특수법인으로서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및 감독, 불공정 거래 감시, 회계감독, 민원 및 분쟁조절 등 실제 집행업무를 담당한다.
문제는 법적으로 제재권한은 금감원이 아닌 금융위에 있고, 감사 결과에 따른 처분 역시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야 해 금감원이 사실상 금융위에 소속돼있지만 실제로는 금감원이 결정을 내리고 금융위는 행정절차만 밟는 서류상 권한에 그쳐 비정상적인 업무절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지휘계통이 중복되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고, 금융정책을 내놓는 자리에서는 각자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혼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업무분장에 더해 윤 전 대통령이 사적 감정으로 측근인 이 원장에게 힘을 실어줬으니 금융 및 경제 전반의 정책에 혼선이 생겼고, 일종의 관치금융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점이 문제점으로 대두되면서 지난 5월 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금융감독체계 개혁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 날 논의된 내용을 큰 틀에서 보면 현재 금융위 기능은 기획재정부 소속으로 넘기고 금융감독원은 금융시장감독원으로 이름을 바꿔, 실질적인 독립기구로서 권한을 보장해 관치금융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복현 원장의 업무영역을 넘나드는 오지랖으로 금융시장 질서에 혼선이 생기고 그에 따라 정작 해결돼야 할 문제들은 그대로 방치되면서 조직과 기능 모두 손을 봐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원장은 최근에도 국회가 통과시킨 상법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에 대해서도 “직을 걸고 상법개정안 재의요구권 행사를 막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한덕수 전 대통령권한대행은 재의요구권을 행사했고, 상법개정안은 폐기됐다.
직을 걸었던 이 원장은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면서 임기인 6월 5일까지 금감원장 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원장은 그동안 오락가락 발언으로 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가계대출 정책에 대한 말바꾸기, 공매도 재개 시점에 대한 섣부른 발언에 대해 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대통령실이 서둘러 진화하는 등 그의 갈지자 걸음에 시장은 갈팡질팡 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원장의 가장 큰 실패작은 국내 은행 가운데 비리가 가장 많은 우리은행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10년 간 횡령 등 금융사고 1위, 횡령사고자 1위, 회수율 꼴찌란 오명을 쓴 우리금융그룹이 급기야 전직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액 730억원 발생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더구나 임종룡 현 회장 재임시에 부당대출의 60% 이상이 이뤄졌는데도 임 회장을 교체하지도 못하고 특별한 개선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오히려 올 2월에는 임종룡 회장을 향해 “회장이 그만두면 거버넌스와 관련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임기를 채우는 게 좋겠다”고 발언해 임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등 헷갈리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금융계에서는 이복현과 임종룡 싸움에서 임종룡이 완승을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다. 임 회장은 직을 유지함은 물론, 지난 5월 2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우리금융지주에 대해 동양생명보험과 ABL생명보험 인수를 승인해주면서 임종룡 회장은 오히려 날개를 달았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 원장은 검사 출신 첫 금감원장을 맡으면서 기대도 있었지만 역시 전문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오락가락 요란함을 뒤로 한 채 물러나게 됐다. 다음 대통령은 자신을 위한 인사가 아닌 국민을 위한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