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와 감세 정책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로 인해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단계 강등시켰다. 회색코뿔소 주의보가 내려졌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우면서 미국 47대 대통령에 당선한 트럼프의 대선 주요공약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벌어들인 돈으로 국내 세금을 감면하면서 미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사탕발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취임 4개월 만에 미국은 신용등급 하락을 겪으면서 어쩌면 미 행정부의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 등급으로 한단계 강등시켰다.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킨 것은 역사 이래 처음으로서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평가를 실시한 지 108년 만의 강등이다.

무디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용평가사로서 권위 역시 최고로 알려졌다. 1909년 설립한 후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왔을 때 당시 무디스가 투자적격으로 판정한 기업만 살아남고 나머지 대부분 기업들이 망하면서 무디스의 정확한 평가는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악연이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의 신용등급을 A1에서 Baa1까지 4단계를 한꺼번에 내려 국가 부도사태를 낳게 했고, IMF 자금이 들어온 이후에도 Baa2에서 Ba2로 두 단계를 다시 내려 한국의 신용등급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불과 두 달만에 6단계를 내려 우리에게는 저승사자 역할을 한 신평사다.

무디스는 이미 지난 2023년 11월에 미국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기 때문에 이번 등급 강등은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 미국의 상황으로 볼 때 회복이 쉽지 않아 보여 이 후 미국 증시를 비롯해 글로벌 증시와 환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과거 두 번 있었는데, 2021년 8월 5일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AAA에서 AA1으로 낮췄다. 당시는 미국 신용등급의 첫 강등이라는 측면에서 시장의 충격은 엄청났다. 하루만에 미국 주가는 6.7% 폭락했고, 하락세는 10여일 이어졌다. 그 외 글로벌 주식시장 역시 똑같이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두번째는 2023년 8월 1일 피치가 AAA를 AA+로 강등시켰다. S&P의 강등 2년만이었는데 당시는 시장에 대한 충격이 별로 없이 지나갔었다.

그러나 이번 무디스의 강등은 2021년 때보다 데미지가 커지고 장기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리스크는 재정적자다.

무디스는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시킨 이유로 첫째 미국 국가부채 36조달러, 둘째 부채축소 및 적자해소 시스템 부재, 셋째 트럼프 감세법안 등 3가지를 들었다.

미국은 5월 현재 3조2200억달러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는 미국 GDP의 100%를 훨씬 넘는 규모로서 2024년 기준 123%보다 현재는 더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 이자로만 6천840억달러가 들어가며 이는 2025회계연도 정부 지출의 16%를 차지하는 규모다.

무디스는 이러한 과도한 부채와 이자에도 불구하고 현재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볼 때 부채 축소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관세폭탄 성과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적자해소 방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오히려 감세법안을 제출해 재정악화가 더욱 심화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트럼프 대표적인 대선공약 중 하나는 감세였다. 감세공약을 내놓으면서 공화당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고, 상하 양원도 모두 다수당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보니 공화당은 현재 감세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공화당이 발의한 세제법안은 향후 10년 간 3조8000억달러의 세금을 감면하는 것이다. 이 경우 특별한 재원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미국 부채는 2조5000억달러 더 늘어나게 된다.

무디스는 트럼프 관세정책 관련 합의를 본 나라는 모양 갖추기의 영국 이외에 어느 나라와도 협상이 종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회는 감세안을 강행하고 있어 미국의 신용을 낮출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뉴욕증시 채권시장에선 안전 자산 선호 심리가 발동하면서 미국 국채로 투자자들이 몰려 미국 국채 가격이 오르고 채권 금리는 하락하는 현상이 시작됐다. 자칫 오늘 밤 미국 증권시장은 블랙먼데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태는 상당기간에 걸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강을 넘을 길은 딱 한가지다. 트럼프가 지금이라도 무리한 관세전쟁을 포기하고 무역질서를 정상화하면서 감세안을 철회하고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면서 국채 발행을 자제하는 것이다. 트럼프 MAGA 공약과 반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경우 2026년 11월 미국 대통령 임기 중간에 갖는 중간선거에서 패하면서 지금과는 반대로 여소야대 국면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100명 중 34명 그리고 주지사 50명 중 36명을 선출한다. 그야말로 대규모 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현재의 고율관세와 감세를 고집해 국가위기 상황이 더 심해질 경우 어차피 트럼프의 공화당은 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패할 거면 나라 재정 파산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경제학에서 회색코뿔소란 말이 있다. 세계정책연구소의 미셸 부커가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언급한 용어로 거대한 위험을 알면서도 대처하지 않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지금 미국의 재정상황은 수 톤에 이르는 거대한 회색코뿔소가 자리를 틀고 앉아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험한 코뿔소가 몸을 뒤틀기라도 하면 미국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에 있어서 회색코뿔소는 엄청난 규모의 국채다. 지금이라도 국채를 줄이고 감세를 포기하고 무역을 정상화시켜 회색코뿔소를 조용히 잠자게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급소가 국채인 것을 알고 있는 중국은 이미 미국 국채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관세전쟁을 겪은 중국은 트럼프 2기 들어 관세폭탄이 시작되기 전인 3월에 이미 189억달러를 팔아 미 국채 보유국 2위에서 3위로 내려갔다.

중국은 이미 트럼프가 관세폭탄을 내세우기 전부터 트럼프 정책의 한계를 알고 미리 엄포를 놓은 것으로 보인다.

대선공약은 그만큼 중요하다. 트럼프의 MAGA에 현혹돼 표를 몰아준 미국민들이 자칫 빚의 공포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기 대선을 치르고 있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