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으로 이어진 캐스케이드 레인지 모습

북부 캘리포니아부터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 그리고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에 이르는 '태평양 북서권(Pacific Northwest)' 지역은 험준하고 아름다운 산간 생태계로 연결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샤스타 산(Mt. Shasta)부터 오리건 주와 워싱턴 주의 유명한 높은 산은 캐나다 뱅쿠버의 산간 지대로 이어지는데, 이를 캐스케이드 레인지(Cascade Range)라고 부른다. 태평양 화산대에 자리 잡은 이들 높은 산은 과거에 폭발한 적이 있는 화산들이다. 가장 최근인 1980년에 세인트 헬렌스(Mt. St, Helens)가 대폭발을 일으켜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이 지역은 높은 산과 아름다룬 해안, 그리고 울창한 산림 때문에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Nature Lovers' Paradise)이라고 할 만한데, 이 지역을 ‘캐스캐디아 바이오 지역(Cascadia Bio-Region)’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북미 대륙 북동부에 정착한 영국인과 미국 식민에게는 매우 먼 오지(奧地)였다. 토착민들이 살던 지역에 모피 교역 등을 위해 영국인과 미국 식민들이 모여들었는데, 영국령 캐나다와 미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이 지역을 미국은 ‘오리건 칸트리(Oregon Country)'라고 불렀다. 이 지역에 정착한 백인들은 1843년에 자기들끼리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영국과 미국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결국 1846년 조약으로 북위 49도를 경계로 영국과 미국이 주권을 행사하게 됐고 북위 49도 남쪽은 1849년에 오리건 영토(Oregon Territory)로 미국에 속하게 됐다. 이렇게 해서 독립국가를 세우려던 시도는 실패하고 오늘날 워싱턴 주와 오리건 주를 포함하는 광활한 지역이 미국에 속하게 됐다.

오늘날 뱅쿠버, 시애틀, 포틀랜드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화적으로 정체성을 같이 하고 있다. 뱅쿠버 사람들은 토론토와 오타와 보다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더욱 가까이 느끼고, 시애틀과 포틀랜드 사람들은 뉴욕과 워싱턴 보다 뱅쿠버를 더욱 가깝게 느끼는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로컬 커피숍에서 고급 커피를 즐기고 정치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다. 워싱턴 주는 인구가 800만 명인데, 시애틀과 그 주변에 400만 명이 모여 살고 있으며, 백인이 65%, 히스패닉/라틴계가 15%, 아시아계가 12%, 흑인이 5%를 차지한다. 오리건 주는 인구가 430만 명이며, 포틀랜드와 그 주변에 250만 명이 살고 있으며, 백인이 72%, 히스패닉이 12%, 아시이계가 5%, 흑인이 5%를 차지한다.

1980년대 들어서 ‘캐스케디아 운동(Cascadia Movement)’이 일어나서 그것을 상징하는 깃발(사진 5)을 내건 모임이 생겼고, 일단의 운동가들은 오타와와 워싱턴 DC로부터 독립된 자치정부를 만들자는 주장까지 내걸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정치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정도는 결코 아니지만 지역정서를 상당히 반영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에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계속 등장해서 사회적 분열이 심해진다면 차라리 캐나다로 귀속되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나올 수 있다.

오리건 주는 최근에 또 다른 진통을 겪고 있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에 위치한 13개 카운티가 자신들은 포틀랜드 메트로 지역과 오리건 대학이 있는 유진(Eugene)과는 문화적, 경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자신들과 동질적인 동쪽의 아이다호 주로 편입시켜 달라고 나선 것이다. 오리건 주는 포틀랜드와 유진에 인구가 많고 이 지역은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공화당을 지지하는 캐스케이드 동쪽 지역은 오리건 정부에 의해 소외되고 있으니까 자신들과 비슷하게 농업과 목축이 주요 산업인 아이다호 주로 편입시켜서 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미 13개 카운티가 주민투표에 이 문제를 회부하겠다고 결정했으며 몇몇 카운티도 더 동조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Greater Idaho movement’라고 부른다. 10여개 카운티가 아이다호 주로 넘어가면 오리건 주의 면적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된다. 오리건 주에서 이탈하려는 카운티의 주민들은 주로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들은 일회용품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카페에서 고급 커피나 마시는 포틀랜드와 유진의 ‘먹물’들과는 기분 나빠서 같이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 헌법은 이런 문제에 대해 별다른 조항이 없어서 과연 이런 것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말았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통합’이 도무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우리도 솔직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