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안철수 죽이기' 조작질이 또 시작됐다"며 여론조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실시한 범보수 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 안철수 후보가 아예 빠진 데 대한 문제제기였다.
선거철마다 쏟아지는 여론조사 결과, 얼마나 신뢰하시나요? 지지율 40%, 찬성 73%와 같은 숫자 뒤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심리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질문에 먼저 답했느냐에 따라 의견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이를 '공정성 규범(The Norm of Even-Handedness)'이라 부릅니다. 이 현상은 여론조사 결과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정성 규범: 일상에 깊숙이 뿌리내린 심리적 원칙
‘양쪽을 다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적 규칙입니다. 이 규범은 가정에서부터 국제 관계까지 광범위하게 작용합니다.
가정에서의 사례를 생각해보세요.
● 엄마: "첫째야, 너 축구공 사줄까?"
● 첫째: "네! 사주세요!"
● 둘째: "그럼 저는요?"
● 엄마: "그래, 둘째도 사줘야겠네."
이처럼 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면 다른 아이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공정성 규범입니다. 여론조사에서도 이와 동일한 심리가 작동합니다.
여론조사에서 발견된 충격적 사실
1950년 냉전 시대, 미국에서 실시된 한 설문조사는 이 현상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1950년대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 시기로, 양국 간 긴장이 높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인들에게 기자 취재 허용에 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두 그룹의 응답자에게 동일한 두 질문을 했지만 순서만 바꿨습니다.
A그룹(미국 기자 질문 → 러시아 기자 질문)
- 미국 기자들이 러시아에서 취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요? - 90% 찬성
- 러시아 기자들이 미국에서 취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요? - 36% 찬성
B그룹(러시아 기자 질문 → 미국 기자 질문)
- 러시아 기자들이 미국에서 취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요? - 73% 찬성
- 미국 기자들이 러시아에서 취재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요?" - 66% 찬성
놀랍게도 러시아 기자 취재 허용에 대한 찬성률이 36%에서 73%로 무려 37%포인트 급증했습니다. 단지 질문 순서만 바꿨을 뿐인데 말입니다. 미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자국 기자들이 러시아에서 취재하는 것은 찬성하고, 러시아 기자들이 미국에서 취재하는 것은 덜 찬성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기자의 미국 취재 허용"을 먼저 물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의 취재를 허용한다면, 그들도 우리의 취재를 허용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공정성 심리가 작동했습니다.
노사 관계에서도 확인된 공정성 효과
노동 문제에 관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노동자의 파업권과 회사의 공장 폐쇄권에 대한 질문을 다른 순서로 물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질문했을 때
- 노동자들이 파업할 권리가 있나요? - 66% 찬성
- 회사가 공장 문을 닫을 권리가 있나요? - 47% 찬성 (차이: 19%포인트)
질문 순서를 바꿨을 때
- 회사가 공장 문을 닫을 권리가 있나요?" - 52% 찬성
- 노동자들이 파업할 권리가 있나요? - 61% 찬성(차이: 9%포인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노동자의 파업권에는 더 찬성하고, 회사의 공장 폐쇄권에는 덜 찬성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공장 폐쇄권"을 먼저 물었을 때, 공정성 규범이 작동했습니다. 많은 응답자들이 "회사에 공장을 닫을 권리가 있다면, 노동자에게도 파업할 권리가 있어야 공평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행동할까?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 처음에는 자기 선호나 이익에 따라 응답합니다.
● 상대측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공평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 결과적으로 처음 답변보다 더 중립적인 방향으로 의견이 변화합니다.
이 공정성 규범이 작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 두 당사자가 명확한 경쟁 관계에 있을 것
● 당사자들의 행동이나 권리에 대한 판단이 포함될 것
● 더 큰 규범적 프레임워크 안에서 두 당사자가 사회적으로 위치할 것
연구에 따르면, 이런 공정성 규범의 영향력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질문 순서에 더 크게 영향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정보 처리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론조사 결과는 불변의 진실이 아니라 특정 맥락에서 얻어진 사회적 반응입니다. 질문의 순서와 맥락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다음에 ‘국민 60%가 찬성’이라는 헤드라인을 볼 때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질문을, 어떤 순서로, 어떤 맥락에서 물었을지.
독립신문
<참고문헌>
Schuman, H., & Ludwig, J. (1983). The Norm of Even-Handedness in Surveys as in Life.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48(1), 11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