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한국과의 관세유예 관련 협상조건으로 내건 알래스카 LNG 사업이 자칫 대한민국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릴 가능성이 높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자료사진

지난밤 트럼프가 자동차부품 기업에 대한 관세유예 방침을 발표해 또 하나의 갈지자로 걷는 듯한 모습을 보여, 관련 기업들의 기대감을 올렸다. 그는 “본인은 유연한 사람으로서 얼마든지 협상을 통해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해, 세계 모든 나라들 그리고 미국과 상대하는 기업들을 협상 대열에 동참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은 트럼프가 기침만 한 상황에서 이미 백기를 들고 백악관으로 찾아갔지만,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인 만큼 앞으로 우리나라가 내놔야 할 협상카드를 생각하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높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 정책당국자들과 기업들이 트럼프의 제스처에 너무 몰입이 돼 오판의 여지가 있어 자칫 우리 종자돈까지 트럼프에게 다 털릴까 걱정이 앞선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협상의 유연성이란 미국의 이익을 전제로 하는 유연성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한 이후 90일 간 유예를 하면서 협상시간을 갖기로 한 것은 다분히 상대국 입장을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 기업들과 미국의 이익을 위한 협상이라는 것이다.

IEEPA(경제비상사태수권법)에 따른 상호관세 외의 품목관세는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것으로, 이것은 미국 기업들을 본격적으로 보호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 품목별 관세가 바로 트럼프가 얘기하는 유연성의 근거인데, 이로 인해 미국과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공격을 당하는 결과를 맞을 것이다.

14일(현지시간) 백악관 NEC(국가경제위원회) 케빈 해신 위원장의 발언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이 상호관세 90일 유예를 밝힌 후 협상 여지를 열어놓자 10여 개국이 놀라운 거래를 제안해왔다”면서 “그 중에 특별히 우수한 제안을 해 온 한국, 일본, 영국, 호주, 인도 등 5개 나라를 최우선 협상대상국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우선협상국으로 한국을 포함시켰다고 하니까 우리 기업들이나 일부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동맹국으로 대접해준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해신 위원장이 말한 놀라운 거래를 제안한 일종의 호구(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호랑이 입 속에 있는 처지)들 명단 톱 5에 한국이 들어갔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단 미국이 보는 호구 5곳 중 하나인 한국은 방위비분담금을 비롯해서 알래스카 LNG 사업에 끌어들이고, 일본 역시 방위비 분담금에 더해 1조598억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팔지 말고 오히려 대미무역흑자 규모만큼 미 국채를 매입해달라는 것일 것이다. 영국 역시 미국 국채를 7227억달러 세계 3위 보유국으로서 미 국채 매도보다는 매입을 원할 것으로 보인다. 호주는 중국이 결정적으로 미국 압박 카드로 사용할 수 있는 희토류 수출금지에 대비해 중국 다음으로 희토류를 생산하는 호주와의 희토류 협상을 할 것으로 보이고, 인도는 중국과의 장기전에 대비한 생산기지화 관련 협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다분히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부채를 줄이고, 달러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협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 8일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어느 점에서 어떻게 협상을 진행해 갈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세히 설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만족해했다"고 본인에게 유리한 측면으로 밝혔지만, 대화 이후 백악관이 발표한 한 대행과의 협상 내용은 6가지로 트럼프는 이미 구체적인 청구서를 내놓은 상태다.

그 6가지는 ①미국산 LNG 매입 확대 ②미국 조선사업에 참여 ③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 ④군사보호비용 증액 ⑤관세 협상 ⑥무역불균형 해소 등이다.

결국 한 대행과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구체적인 청구서를 받아든 꼴이 됐다. 그냥 지나가는 말로 “이번 대선에 출마하냐”는 트럼프의 말을 강조하면서 대화의 본질을 왜곡시킨 한 대행의 저의도 의심스럽다.

이 6가지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방위비 재협상과 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 부분이다. 방위비는 현재 연간 10억 달러 수준인데, 트럼프가 요구하는 100억달러 수준을 요구할 것이고, 알래스카 LNG 사업은 지난 20년 간 사업성이 없어서 추진이 중단된 것으로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엑슨모빌도 손을 들고 나간 프로젝트다.

알래스카 LNG 사업 투자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달 미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가 방한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만났고, 다음주에 한·미 간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발을 담갔다.

여기에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그동안 대미 무역흑자액 중 어느정도를 미국 국채를 사달라고 할 것이고, 그러한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관세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조선 분야에 있어서의 협력 부분도 결코 우리 기대와는 다를 것이다. 미국은 1920년에 제정된 선박 존스법에 따라 미국 내 선박 운항은 미국 내에서 건조된 배에 한한다고 규정돼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내에서 건조하고, 미국인 지분이 75% 이상이어야 하고, 미국 선원이 75%여야 한다는 규정이다.

여기에 1968년 제정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따르면, 미국 국사기밀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군함 및 부품은 미국 내 조선소에서만 건조하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취임 이후 지난 2월 미 의회가 시급한 미국 내 낙후 선박 수리 및 건조를 위해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했지만, 통과여부는 아직 미지수이고, 통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조건이 까다롭다. 특히 미국 조선소보다 저렴해야 하는데, 현재 한국 기업들 건조비용의 50%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배를 만들수록 손해를 보지만, 자칫 트럼프 협박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배를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을 지도 모른다. 더 우려되는 것은 현재 한국 조선기업들이 이미 물량확보를 너무 많이 해놓은 상황에서 미국 군함 등 수리와 건조를 할 여력이 없는 가운데, 트럼프가 물량처리를 요구할 경우 새로운 쟁점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발 관세폭탄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상황을 바라고는 것은 아닌 지 너무나 염려스럽다. 미국은 이미 우리를 우방으로 보지 않고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미국의 상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약하다 싶으면 가차없이 뜯어가서 자국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경서인 역경(易經)에 자강불식(自彊不息)이란 말이 있다. 자신을 강하게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것이 성장과 생존의 기본 힘이 된다는 의미다. 현재 트럼프에 맞서는 중국의 시진핑은 그동안 자강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트럼프를 정확히 알고,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강에 나설 때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