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엔지니링 건설현장에서의 잇따른 사망사고로 최근 보름 간에 5명이 사망하는 등 대형사고와 관련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출석은 정 회장이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엔지니어링 건설현장에서 보름 간격으로 일어난 총 5명의 근로자 사망사고와 관련, 과연 대표이사 취임 100여일 된 주우정 사장이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지 아니면,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2%를 가진 정의선 그룹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대표는 지난해 11월 15일 기아차에서 CFO(재무최고책임자)를 하다가 현대엔지니어링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재무전문가다. 정의선 그룹회장의 재무담당자에 대한 특별한 애착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의 대표이사에 올랐지만, 기술·시공·안전 등에 경험이 없고 특히 안전에 대한 이해가 얕아 지난달 일어난 세종-안성고속도로 붕괴사고는 예고된 사고였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그러나 세종-안성고속도로 붕괴사고로 4명이 사망한 지 보름만에 평택아파트 현장에서 1명이 추락사 하는 겹사망사고가 발생하자, 이것은 단순히 전문경영인의 자질을 떠나 그룹 회장인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의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 대표는 오는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국회의원들로부터 세종-안성고속도로 사고 관련 현안 질의를 받기로 돼있지만, 과연 건설은 고사하고 안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는 주 대표가 어떤 답과 방지책을 내놓을 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면서 출석 대상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름 간격으로 대형 사망사고가 일어날 정도라면 단순한 안전사고를 넘어 현대엔지니어링 기반의 근본적인 문제이고 이 문제의 중심에는 정의선 그룹회장이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연구원 3명의 질식사 사고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사고 원인조사가 지난 11일 발표됐는데, 현대차에서 산업안전보건법령 62개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밝혀졌고, 과태료 5억4528만원을 부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부분은 현재 수사중이다.

이런 정도면 현대차그룹의 안전불감증 풍조는 어느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그룹 전체의 문제로 봐야하고 후계구도가 시급한 정 회장 입장에서는 임직원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지주사 지분확보를 위한 자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 회장은 현재 후계구도 완성을 위한 지분 정리가 아직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룹의 지주사격인 현대모비스의 지분 확대를 위한 자금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그렇다보니 현재 정 회장의 지분이 들어간 계열사 가운데 비상장사면서 지분이 높은 현대엔지니어링을 서둘러 IPO 시켜 자금 확보를 통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한편, 정몽구 명예회장의 지분상속에 필요한 상속세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정의선 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11.72%로 특수관계인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그룹 지주사격인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이 38.62% 지분으로 부자관계에 있고, 정 회장이 2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글로비스가 11.67%로 정 회장 다음으로 3번째 지분이 높다. 이어서 기아차 9.35%, 현대모비스 9.35%이고 정몽구 명예회장도 4.6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IPO를 서두르기 위해 CEO와 CFO 모두를 재무전문가들로 포진시켰고, 오히려 이것이 화근이 돼 건설경기 찬바람 속에 건설사 안전불감증이라는 국민 불신까지 만들어놨다는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미 IPO를 위한 준비로 현대엔지니어링의 2024년 실적에서 1조2000억원을 손실 처리하는 빅배스(Big Bath)를 단행해 회사를 깨끗하게 목욕시켜놨지만, 공사부실과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잇따른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IPO 전선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IPO를 위해 투입한 재무전문가들이 오히려 정 회장의 큰 그림을 망친 결과가 된 것이라고 볼 수있다.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13일 주우정 대표이사 사장의 국회 출석은 말 그대로 모양 갖추기일 가능성이 높고 국회의원들의 고함장에 불과한 무늬만 청문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및 산업현장에서의 인명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호법이니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엄격한 집행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 관련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다 보니 기업의 오너나 대표들이 적당히 넘어가는 경향이 만연돼있는 상황이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산업현장 사망 근로자는 지난해 3분기까지 1685명이었는데, 경영 책임자가 재판에 넘겨진 사례는 70여 건에 불과하고, 지난해 말까지 1심 판결은 불과 31건에 그쳤다.

더구나 이 31건 가운데서 경영자에 대한 실형은 고작 4건이었고, 이 4건도 안전사고 관련 전과가 있는 경우 가중처벌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대법원까지 가서 실형이 떨어진 것은 2023년 12월 한국제강 대표의 징역 1년 실형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솜방망이 처벌로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름만 거창한 무늬만 처벌법이란 말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 기업의 어느 대주주나 대표이사가 작업장 근로자 사망사고를 두려워하겠는가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13일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만을 대상으로 국회의원들이 질타를 해봐야 별 의미가 없고, 정의선 그룹 회장이 함께 출석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고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내놔야 현다차그룹의 인명경시 풍조가 어느정도라도 해소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대엔지니어링의 보름동안 2번의 사고로 5명이 사망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로서, 지난해 11월 3명의 연구원이 자동차 안에서 질식사 한 현대자동차의 사망사고와 종합하면 현대차그룹 전체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면서 “정의선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고, 국회는 내용도 모르는 주우정 대표보다는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정 회장을 불러서 현대차그룹 전반의 안전 부분을 짚어보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