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지난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안 장관의 어설픈 발언이 트럼프의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매일매일 트럼프가 쏟아내는 간보기 식 발언에 해당 국가들이 나름대로 강력 대응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사전 준비 없이 허술한 대응에 나선 한국이 자칫 트럼프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등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무임승차하는 나라라는 트럼프의 인식이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5일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후 가진 첫 의회 발언에서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크게 두가지 부분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 두가지 모두 일종의 트럼프 트릭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배경에 한국 정부의 어리숙한 대응이 있는 것으로 보여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날 트럼프는 한국 관세와 관련 미국의 4배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의 미국에 대한 4배 높은 관세는 매우 불공정하며, 미국이 (미군 주둔 등) 한국을 많이 도와주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에 한국이 수조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라고 발언하면서 엄청난 투자금이 소요되는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관련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발언 모두 근거가 약하고 특히 한국이 미국에 대해 4배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는 부분은 명백한 가짜뉴스여서, 트럼프가 왜 이런 엉터리 수치를 가지고 의회에서 한국을 공격하게 만들었는 지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가 주장하고 있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관세 4배 근거는 현대 미국은 WTO회원국들에 대해 평균 3.3%의 관세를 부과하는 데 반해 한국은 13.4%의 관세를 부과해 단순 계산으로 보면 4배의 차이가 맞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현재 자유무역협정(FTA)가 맺어져 있어서 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에 대해 평균 0.79%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이 마저도 사후 환급을 받게 돼 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실질적으로 ‘0’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한국이 WTO 회원국에 부과하는 평균관세 수치를 들고나온 것에 대해, 트럼프가 알고도 그 숫자를 들고나왔다면 몰라도 진짜 13.4% 수치로 알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대한민국 정부의 업무태만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퉁상산업자원부, 주미한국대사관, 무역협회 등 미국 교역과 관련한 정부부처나 관련 기관들의 책임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수조달러가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 알래스카의 가스관 사업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는 트럼프의 발언도 한국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낳은 참사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지난 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을 다녀온 이후의 발언이고, 안 장관이 미국 방문 중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더그 버검 백악관 국가에너지위원회 위원장 겸 내무장관을 만나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나온 트럼프의 발언이어서 주목이 된다.

특히 안 장관이 미국 방문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사업에 대해 언급하면서 트럼프는 한국이 진짜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안 장관은 의례적인 관심 표명일 수 있겠지만, 트럼프에게는 빌미로 작용한 것이고 결국 트럼프의 압박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알래스카 LNG 가스관 사업은 북극해 노스슬로프에서 앵커리지 니키스키까지의 1300Km 송유관을 건설하는 사업으로 초기 사업비만 64조원이 들고 공사기간도 최소 10년 이상 들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해당 지역이 완전히 얼어있는 북극 바다 한가운데여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 공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인 악조건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에너지기업인 엑슨모빌도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철수한 바 있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포기한 사업이다.

결국 이러한 빌미들을 통해 한국은 향후 관세협상과 방위비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연일 쏟아내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다음날이면 말 바꾸기를 수시로 반복하면서 세계 무역질서를 흔들고 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당장 관세를 부과하되 자동차에 대해서만은 4월 2일까지 관세부과를 유예한다고 했다가, 다음날인 6일(현지시간) 곧바로 자동차 외의 모든 품목에 대해서까지 부과를 유예한다는 행정명령에 사인하는 등 행정명령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의 갈지자 행보에 대해 AP는 “동맹국들이 이제 트럼프가 실제로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 명백히 알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할 정도다.

트럼프가 내놓는 상당수의 수치 역시 가짜임도 밝혀지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그동안 350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유럽은 1000억달러만 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의회가 승인한 금액은 1740억달러이고 이 중 1220억달러만 집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유럽은 미국보다 많은 1450억달러를 지원해 실제는 유럽이 미국보다 많은 금액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트럼프의 발언과 압박에 대해 우리 정부가 우왕좌왕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기업들과 국민들이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시점이다.

트럼프의 1차 공략 대상은 중국, 멕시코, 캐나다였고, 두번째 대상이 유럽과 우크라이나였다. 다음은 한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섣부른 대응은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동맹국이라는 것에 앞서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강한 트럼프에 대한 대응은 철저한 득실 계산과 정확한 수치를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이유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