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정의선 회장이 새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의 재무라인 중심의 경영진 포진 인사로 인해 기술과 안전 등에 소홀하다는 지적 속에 리스크가 나타나는 등 겹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차그룹이 국내외 커다란 악재를 한꺼번에 만나 위기를 맞은 가운데, 회장 취임 5년차를 맞은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이 정조준하고 있는 자동차 관세 25% 부과에 따라 당장 수조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그룹사의 잇따른 사망사고, 거기에 현대제철의 파업까지 악재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트리플 악재에 빠졌다. 산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재무담당자 편향 인사가 원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주우정 CEO 박희동 CFO 모두 경제학과 출신 재무전문가

지난 25일 어처구니 없는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현장의 다리 붕괴로 4명의 사망사고를 낸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5월 전남 무안군에서 건설한 ‘힐스테이트 오룡’ 아파트의 5만8000건에 달하는 부실공사로 인해 곤욕을 치른 지 9개월 여 만에 토목현장에서 대참사 사고를 내는 관리와 기술력 부재의 모습을 보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실적발표에서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플랜트공사에서의 부실 1조2000억원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하면서 전임 사장에게 부실을 떠넘기는 조치도 취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결국 이번 도로공사 붕괴로 인한 토목부실과 지난해 5월 아파트 부실, 그리고 해외 플랜트 부실 등 부실 3종세트를 갖추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번 도로 붕괴에서는 귀중한 4명의 목숨도 희생이 돼 그룹 차원의 비상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도로공사 붕괴사고의 원인으로 정의선 회장의 인사부실을 꼽는다. 지난해 11월 함께 동반 취임한 CEO(최고경영책임자)인 주우정 대표와 CFO(최고재무책임자)인 박희동 전무 모두 대학교 경제학과 출신들로서 그동안 기아차에서 재무를 담당해왔던 재무 전문가로 분류된다.

현대엔지니어링 안팎에서는 재무전문가들 중심으로 경영라인이 형성되다 보니 기술이나 영업 등은 뒷전이고 안전에 대한 의식 역시 소홀해지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평가한다.

결국 주우정 신임 대표는 사장 취임 100여일만에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자로 수사를 받을 입장에 섰다.

■현대자동차 이동석 CEO 경제학과 출신 재무전문가

지난해 1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연구원 3명의 질식 사망사고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차 울산4공장 전동화 품질사업부의 차량 성능 테스트 공간(체임버)에서 현대차 남양연구소 소속 책임연구원 2명과 협력업체 소속 연구원 1명이 질식사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연구원들이 밀폐된 체임버에서 차량 주행 테스트를 하던 중 배기가스가 외부로 배출되지 않아 질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사고로 이동석 현대차 대표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대상이 됐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회장, 이동석 사장, 무뇨스 바르셀로 호세안토니오 사장 등 3인 각자대표 체제인데, 이동석 사장의 직책이 현대자동차 사장 겸 국내 생산담당 및 안전보건 최고책임자여서 사망사고에 대한 최고책임은 이 사장이 질 가능성이 높지만, 엄밀히 보면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회장 겸 기아차 회장으로 등재되어있어서 정의선 회장 역시 책임에서 비켜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동석 현대차 사장 역시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재무가 전문이다. 정의선 회장의 재무전문가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건에 대해 전국금속노조와 더불어민주당 울산시당, 진보당 등에서 성명 및 입장문을 내고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에 대한 명확한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연구원 3명의 사망사고 10여일 전에도 작업중이던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공장에서는 2023년 7월에도 30대 후반 노동자가 엔진 가공설비 정비 작업 중 갑자기 내려온 가공설비 상부 로더에 충격을 받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불과 2년 만에 한 공장에서 3번에 걸쳐 5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재무전문가로서 기술과 안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수 있는 이동석 대표의 종합적인 경영자질이 당연히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재무담당자에 대한 편애에 빠진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이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현대제철 서강현 CEO 역시 경제학과 전공의 재무전문가

현대제철은 노조와의 성과급 갈등으로 파업이 일자 경영자가 공장을 폐쇄하는 조치를 단행해, 중국산 저가 철강공격과 미국 철강 관세에 더해 직장폐쇄라는 겹악재를 만났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지난해 9월부터 임단협 교섭을 이어오다가 성과급에 대한 합의가 결렬되면서 노조의 부분 및 일시 파업 등 쟁의에 대해 지난 2월 24일 서강현 현대제철 대표가 냉연공장을 폐쇄하는 결정을 하면서 냉연 생산이 중단됐다.

당진제철소 냉연공장은 연 4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현대제철 총 매출의 17%를 담당하는 공장으로서 현대제철의 직장폐쇄는 1953년 창사 이래 첫 사례로 기록되는 강수를 둔 것이다.

현대제철 역시 근로자 사망사고로 얼룩져있다. 국내에서 노동자들 사이에서 '중대재해 다발기업'으로 불리는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충남 당진공장에서 홀로 주름관 보수 부위 점검을 나갔다가 가스 누출로 50대 근로자가 사망했다. 이어 불과 두 달여 뒤인 지난 11일에는 해당 공장에서 또다른 50대의 근로자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조와의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근로자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현대제철은 2023년 12월에도 50대 근로자 추락사가 발생했고, 2022년 3월에는 50대 근로자가 금속을 녹이는 대형 용기에 추락사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제철의 대표인 서강현 사장 역시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사장에 오르기 전에 재무본부장을 맡았었다. 기술이나 안전 등 전문 분야와 거리가 있는 재무전문가다.

역시 정의선 회장의 재무전문가 중심 경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아차 최준영 경영학·송호성 불문과, 모비스 이규석 경영학 전공 등

이 외에도 주요 계열사들의 대표이사들 대부분이 경제, 경영 등 문과 출신들로서 재무, 관리, 구매 등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다.

기아차의 최준영 대표는 경영학 전공자로서 경영지원본부장을 지냈고, 역시 기아차의 각자대표인 송호성 사장은 불문과 출신으로 프랑스 법인장을 지냈다.

주력계열사 중 하나인 현대모비스의 이규석 사장은 경영학과 출신으로 구매업무를 주로 담당해왔고, 현대로템 이용배 사장도 경영학과 출신으로 재무 및 경영지원을 주로 담당해왔다.

이와 같은 재무 및 관리 중심의 경영진 포진에 대해 현대차그룹에서는 정의선 회장이 경영학을 전공하다보니 대화가 잘 되는 경제·경영 출신의 재무 및 관리 담당 경력자들을 중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재무마피아란 말까지 돈다.

현대건설 역시 지난해 11월 사장 인사가 있었는데, 신임 사장에 건축학과 출신의 이한우 부사장이 대표이사에 올랐다. 건설업계에서는 1970년생 비교적 젊은 나이의 대표라는 이례적인 평가인데, 현재 현대건설의 CFO인 1973년생 경제학과 출신 김도형 전무와 케미가 맞는 인물을 골라 젊은 부사장을 대표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는 AI 경쟁 속에서 이제는 양자컴퓨팅 선점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의 정의선회장은 관리와 재무 중심의 경영라인을 고집하면서 자칫 기술경쟁에서 뒤쳐질 우려를 낳고 있다. 여기에 안전에 대한 소홀로 인명사고까지 이어지면서 인명경시 기업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게 됐다.

산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명에회장은 그래도 대학에서 공업경영학을 전공해 기술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많은 공학도를 중용했는데, 정의선 회장은 이상하게도 재무라인에 대한 편애가 심해 그룹의 주요 보직자들 상당수가 재무전문가들로 포진돼있어서 기술과 안전 리스크에 노출된 분위기다”고 우려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