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이번 현대엔지니어링의 서울세종고속도로 붕괴사고와 관련해 정 회장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결국 경영진 인사 잘못이 기업의 사건 사고 등 재앙으로 연결됐다는 시각이다.

지난 25일 발생한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산-용인 구간 교량 붕괴사고는 현재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안전에 대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건설현장에서 끊임없이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에 대해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을 내놓으면서 안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 사고를 낸 건설사 대표이사에 대한 처벌사례가 없다보니 법이 유명무실해진 것이 이유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공사의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불과 9개월 전인 지난해 5월에는 전남 무안군에서 건설한 ‘힐스테이트 오룡’ 아파트의 부실공사로 인해 당시 대표인 홍현성 사장이 사과 입장문을 발표한 적도 있다.

이 아파트는 입주자 사전점검에서 약 5만8000여 건의 하자가 발견됐는데, 건물 외부와 내부 벽면의 균열, 기울어진 바닥, 휘어진 콘크리트 골조 등 심각한 하자로 인해 입주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월 2024년 실적 발표에서 1조2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공한 플랜트 공사에서의 하자와 공기지연에 따른 손실이었다.

결국 많은 인명사고를 낸 이번 고속도로 붕괴사고로 인해 현대엔지니어링은 플랜트의 부실, 주택의 부실에 이어 토목의 부실까지 3박자를 갖춘 셈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고속도로 붕괴사고는 이미 예고된 사고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총체적 부실 이면에는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스타일이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해외 플랜트에서 발생한 플랜트 공사들은 대부분 전임 대표인 홍현성 사장이 플랜트본부장과 사장으로 근무할 당시 벌어진 일인데, 홍 사장은 플랜트와는 관계가 없는 토목공학 전공자였다. 정밀한 공정을 다루는 플랜트사업의 지휘를 토목전공자가 맡았던 것이다.

이번 고속도로 붕괴사고의 배경 역시 정의선 회장의 재무담당자 중심의 그룹 경영진 인사가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15일 현대엔지니어링은 CEO(최고경영책임자)와 CFO(최고재무책임자)가 한꺼번에 교체됐는데, 두사람 모두 재무전문가들이다.

CEO인 주우정 대표와 CFO인 박희동 전무 모두 현대기아차에서 재무를 담당하다가 현대엔지니어링으로 같은 날 넘어왔다. 두 사람 모두 경제학과 출신이다.

CEO와 CFO가 모두 재무 출신이다 보니 현대엔지니어링 힘의 중심은 재무라인에 가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재무적 이슈 중심으로 경영구도가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술, 시공, 영업을 비롯해서 안전 등 임원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없다.

재무전문가 두 사람이 투톱을 맡으면서 2024년 실적 발표에서도 해외 플랜트 공사에서 발생한 손실을 한꺼번에 털어내는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해 부실을 전임자에게 떠넘겼다는 얘기도 나왔다.

일반적으로 CEO와 CFO는 견제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지적도 하면서 사각지대를 없애 기업의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역할을 나눠서 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재무가 전공이다 보니 최고경영 및 재무책임자 둘이 같은 방향을 보고 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CEO는 기술을 전공했거나 영업력이 뛰어난 사람을 앉히고 CFO는 재무적으로 견제를 하면서 기업을 건전하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 역할론이다.

특히 이번 사고는 현대엔지니어링이라는 플랜트 전문 기업이 토목에는 경험이 적은 상황에서 협력업체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감시와 점검을 소홀히 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여 경영자의 관리능력 부족이 큰 원인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과거 플랜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해왔는데, 언제부턴가 플랜트에서 재미를 보지 못하면서 주택사업 비중을 늘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토목공사에까지 경험 없이 뛰어들면서 결국은 대형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재무전문 CEO가 현장 안전이나 기술 점검을 나간다 한들 어떠한 문제점이나 개선점이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된다. 더구나 건설이 아닌 자동차 용어에 익숙한 재무전문가가 건설 기술이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영자는 실력을 바탕으로 하는 지적으로 조직을 꾸려나가야 한다. 실력은 고사하고 용어도 모른다면 어떻게 지적을 할 수 있겠는가?

현재 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인, 과거 동부건설을 이끌었던 이순병 부회장은 현장 지적의 달인으로 통했다. 매월 진행하는 안전점건의날 행사는 필참한 것에 더해, 지방 출장 시 반드시 주변 현장을 임의로 선정해 불시에 방문해 공사현장 곳곳을 이잡듯이 뒤져 현장소장들을 긴장시켰다.

이 부회장의 현장 방문 원칙이 있다고 하는데, 부회장 방문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놓은 현장은 절대 방문하지 않고, 준비가 안된 평상시처럼 운영하는 현장을 골라서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점이 보이고 개선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을 방문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현장 식구들과 식사도 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부회장 접대에 신경을 뺏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약 10년 간 동부건설의 CEO 자리를 지켰다. 동부건설은 경영상 어려움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현재는 한국토지신탁에 넘어가있지만, 지금도 건설업계에서 동부건설인들은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인사가 만사란 말이 있는데, 결국 현대엔지니어링은 잘못된 인사로 인해 만사가 어긋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인사를 한 정의선 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의 일련의 사건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인사원칙은 ‘꺼진불도 다시보자’였다고 한다. 임원진을 수시로 내보냈다가, 느닷없이 “그친구 왜 안오지?” 하면 서둘러 인사팀에서 다시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인사시스템을 아들 정의선 회장이 전수받아 인사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