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2일 경제원로 4인들을 초청해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경제원로에게 묻다'라는 주제로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 정세균 전 총리, 이헌재 전 장관, 윤증현 전 장관, 유일호 전 장관 등 4인으로부터 경제위기 해법에 대해 의견을 듣고 토론을 이어갔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이한 겹 악재 속에 대한민국 대표적인 경제단체인장인 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회장이 정치 및 경제계 원로들을 모셔 향후 경제계 현안에 대한 해법을 듣는 자리를 만들어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정치계가 협치는 입으로만 떠들고 밥그릇 싸움에만 열중하는 가운데 최 회장이 여야 구분없이 원로들과 한자리에서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만들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원로 초청 간담회’의 주제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경제원로에게 묻다’ 였다.
최태원 회장이 마련한 이 자리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참석해 현재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에 대한 각자의 해법을 제시한 데 이어 비공개 토론도 이어갔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문재인 정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김대중 정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명박 정부,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경제 정책을 다룬 인물들로서 이번 자리는 여당 측과 야당 측 각각 2명씩 함께 했다.
최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우리 경제에 닥친 4개의 폭풍으로 무역전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고 "이럴 때일수록 경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의사결정이 모여서 길을 잘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열심히 듣고 공부해서 기업이 실천해야 할 부분을 과감하게 시작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부분을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고 협력해 긍정적인 힘을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경제원로들은 한국경제가 복합적인 위기에 빠졌다는 현실에 대해 인식을 함께 하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단체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책에 따른 대응전략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 악재와는 달리 호재 부분도 있으니 그런 기회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에 더해, 정부가 컨트롤하기에 경제규모가 커진 만큼 민간주도 신성장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반도체 위기와 관련해서는 국회가 정신차리고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 자리에 참석한 원로들은 모두 정치 활동을 한 인물들이지만, 각 정부에서의 경제정책의 한 축을 담당했던 주역들이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
■ 4인 경제원로들의 과거 발자취
대통령 빼고는 다 해봤다는 정세균 전 총리는 15대부터 20대까지 연이어 6선을 해 문재인 정부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매 선거때마다 50% 이상의 득표를 자랑하는 인기를 몰고다닌 정치인으로서, 국회 출입기자들이 신사적이고 언행과 리더십이 모범적인 의원을 뽑는 백봉신사상을 15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산업자원부 장관도 역임해 산업통상 분야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고,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 국회의장을 맡아 탄핵소추의결서를 청와대로 보내 박 전 대통령 업무를 정지시킨 장본인이다.
국회의장 시절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정례화시켜 여야에서 ‘중재자’라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장관은 1998년 초대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당시 IMF외환위기와 함께 출범한 김대중 정부의 기업개선작업을 진두지휘 한 인물로 유명하다.
1999년 금융감독원장 시절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대우그룹 해체의 배경으로 이 전 장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지금도 돌고 있다. 당시 재무부(현재의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과장 시절 율산그룹 사태에 휘말려 공직을 떠난 후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이 전장관을 경기고등학교 선배인 김우중 회장이 대우그룹으로 픽업해 반도체 부문 대표를 맡겼지만, 성과가 없자 내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복수를 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어쨌든 1999년 말 자금상황이 어려워진 김우중 회장이 당시 금감원위원장이던 이 전 장관에게 편한 말투로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자 “회장님 옛날의 이헌재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고 난 후 대우그룹 자금 융통이 막혔다는 것이 전직 대우그룹 인사들의 의견이다.
윤증현 전 장관은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정권을 넘나들면서 경제 수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2011년 한나라당 당무위원을 통해 정당활동도 한 경험이 있다. 2011년 만든 윤경제연구소 소장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삼성생명 상장시 상장차익에서 보험계약자 몫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려,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이 약 4조6000억원의 상장차익을 챙겨갈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일호 전 장관은 유치송 민주한국당 총재의 외아들로 태어나 2008년 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시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냈고 이 후 2015년 국토교통부장관, 2016년 최경환 장관에 이어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선임됐다.
기획재정부장관 시절 LTV, DTI 완화, 종부세 완화, 저금리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3법을 펼쳐 최경환 전임 장관에 이어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편 것으로 유명하다. 이 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문 정권의 집값 폭등의 원인은 바로 박 정권의 부동산 부양책 때문이라는 핑계의 빌미를 제공한 인물이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지난해 8월부터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장관급)을 맡고있다.
최태원 회장의 말대로 무역전쟁,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 정치적 불확실성 등 4개의 폭풍을 헤쳐나가기 위해 나라 전체가 단합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다툼에 몰입돼 경제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의 해법 찾기 노력에 대해 호평이 나오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 김 모 소장은 “외교적인 방향이나 바람막이를 해줘야 하는 정치권이 온통 권력투쟁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경제단체의 이와 같은 노력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고, 이러한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뉴스를 많은 국민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 “경륜 있는 더 많은 전문가들의 가르침이 절실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